'해방 후 동아시아 노동운동 리더' 김일수, 추가 자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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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해방 후 동아시아 노동운동 리더' 김일수, 추가 자료 나왔다
전남과학대 김정훈 교수, 일본 후생성 강제징용자 명부 공개||강제입소년도부터 입소 경위, 직종, 퇴소 사유까지 기록돼
  • 입력 : 2019. 11.25(월) 16:42
  • 양가람 기자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25일 차타니 쥬로크 전 민족예술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공개했다. 메일에는 해방 직후 아키타현 도지사가 일본 후생성에 제출한 강제징용자 명부에 적힌 김일수에 대한 신상정보가 적혀 있었다. 양가람 기자
일제에 강제징용됐다 한·중·일 노동자들의 연대 활동을 주도한 조선인 '김일수'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나왔다.

25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본보에 해방 직후 아키타현 도지사가 일본 후생성에 제출한 강제징용자 명부에 적힌 김일수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김 교수가 차타니 쥬로크(茶谷十六) 전 민족예술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명부 내용 일부를 전달받은 자료다.

차타니 쥬로크 전 소장이 보내온 자료를 보면 김일수씨는 1942년 21세의 나이에 일본에 강제징용돼 아키타현 하나오카 광업소에 조선인 166번으로 입소했다. 경북 청도군 금천면 출신인 김일수 씨는 갱 내 운반부에 소속돼 일을 하다 '종전'을 이유로 퇴소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자료 공개는 당시 하나오카 자유노동조합 서기장이었던 이우봉씨의 증언록에 등장하는 김일수씨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 9월 이우봉의 증언록 '재일 1세가 증언한다'를 공개하며, 김일수씨를 세상에 소개했다.

자료에는 김일수씨가 하나오카 광산에 들어온 후 1947년 자유노동조합 설립 당시 다수 일본인들의 지지를 받아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실이 적혀있다. 김일수씨는 중국·일본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노동운동을 주도했고, 제국주의와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하나오카 광산에 끌려간 중국인 포로 986명 중 절반이 목숨을 잃은 '하나오카 사건'의 중국인 유족 대표도 맡았다. 그는 중국인 피해자 유골발굴·수습에 처음 착수해 유해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앞장섰다.

또 김일수는 1950년 일본의 양심적 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중국인과 함께 피해현장을 찾아 중국 피해자 유골수습을 할 때도 직접 안내 역할을 맡았다.

김정훈 교수는 "김일수는 해방 직후 동아시아 노동운동의 리더"였다며 "조선인 노동자가 한중일 노동자들을 연대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정훈 교수는 오는 29일 일본 도쿄 '나카노 예능소극장'에서 마쓰다 도키코의 사후 15주년 기념강연회에 초청받았다. 이날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가 작품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바라본 시선을 얘기하면서 조선인 김일수를 조명할 예정이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