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요리의 바이블이 전남 섬에 모두 있어요"… 전라도 섬 토속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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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행정
"해산물 요리의 바이블이 전남 섬에 모두 있어요"… 전라도 섬 토속 음식들
강제윤(사단법인 섬연구소장)
  • 입력 : 2019. 08.08(목) 14:34
  • 편집에디터

금오도성게찜

전복포, 성게찜, 꽃게회, 복어곰국, 문어김치, 백년손님 밥상, 피굴, 냉연포탕, 시금치꽃동회무침, 산도랏건민어탕.... 이 생소한 음식들은 결코 특급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특별 메뉴들이 아니다. 궁중 음식도 아니다. 오랜 세월 일상적으로 요리되었고 여전히 전승되는 전라도 섬의 음식들이다. 요리학교도 나오지 않은 섬 여인들이 쓱쓱 만들어 내는 음식들은 유명 쉐프들의 음식 못지않게 화려하고 격조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한국 음식들은 그저 평범하다. 새로 개발된 메뉴라는 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 과거에 비해 물산은 더욱 풍족해 졌는데 어째서 우리 음식문화는 진일보하지 못한 것일까! 전통을 계승하고 혁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청년들의 입맛은 이미 외국 음식들에 사로잡혀 버렸다. 도심에 가면 한 집 건너 한집이 일본 음식점이고 중국음식점 들이다. 문화의 기본인 음식 문화를 안방에서 빼앗기고서 한류 운운하는 것은 안타깝다.

그렇다고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다. 우리 밥상에서 사라진 고급스러운 토속 음식의 원형이 외딴 섬들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통은 변방을 통해 이어진다. 하지만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섬에서도 토속음식은 점차 소멸중이고 뭍의 음식과 차별성도 없어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섬. 가족을 통해 전승되던 음식문화도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섬 음식이 소중한 자산이란 사회적 인식도 없고 지원이나 관리도 없다. 전승되고 있는 섬 토속음식의 실태 파악도 어려운 상황이다. 섬 토속음식의 맥이 끊기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보물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선 남아 있는 레시피라도 서둘러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섬에 남은 노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승되어온 섬의 토속 음식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섬 토속 음식은 결코 섬만의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의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섬 어머니들의 토속 음식 레시피는 가히 우리 해산물 음식의 바이블이라 자부할만하다. 우리에게 이처럼 뛰어난 음식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하나 하나가 더없이 귀한 음식들이다. 음식 하나가 쇠락해 가는 섬을 살리고, 지역을 살릴 수도 있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한식 현대화니 뭐니 하면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겠다고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성공한 것은 거의 없다. 실패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자꾸 밖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없는 것 억지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안에서 찾아야 한다. 원형을 찾아내는데 투자해야 한다. 전승되는 토속 음식이야말로 우리 음식문화의 오래된 미래다. 대체 전남 섬에는 어떤 보석같은 음식들이 있을까. 곧 발간될 필자의 책 <전라도 섬맛기행>(21세기 북스)에 수록된 대표음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낙지연포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같은 복더위에 뜨거운 연포탕을 먹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만하지 않다. 그런데 하의도, 장산도 같은 신안의 섬에서는 지혜롭게도 뜨거운 연포탕이 아니라 냉연포탕을 해먹는다. 낙지 냉연포탕은 차가운 국물에 삶은 낙지와 야채를 곁들인 요리다. 낙지 살은 쫄깃하고 국물은 고소하고 감미롭다. 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해먹던 음식이다. 먼저 물에 낙지를 살짝 데쳐놓고 낙지 삶은 물은 식힌다. 낙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다시 낙지 삶은 물에 제철 야채를 넣는다. 거기에 소금 간을 하고 식초와 마늘, 풋고추와 참깨 등의 양념을 하면 완성된다.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백년손님 밥상을 아시는가? 과거 육지에서는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주기도 했었지만 모두가 가난했던 섬에서는 알을 얻어야 하는 씨암탉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위를 대접할 요량으로 갯가에 나가 온갖 해산물들을 따다가 차려주던 밥상이 바로 백년손님 밥상이다. 밥상에는 주로 배말, 군봇, 거북손 등 갯바위에 붙어서 살아가는 따개비 종류가 올라갔다. 깊은 바다에 살아 해녀만 딸 수 있는 해녀 배말같은 귀한 식재료도 있었다. 따개비 종류에 세모, 가사리, 미역 등의 해초와 상추 같은 텃밭의 제철 채소 등을 넣고 만든 비빔밥이 바로 백년손님 밥상이었다. 육류가 귀하던 섬에서 백년손님 밥상은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사위 접대뿐만 아니라 마을의 어느 집에 잔치가 있으면 서로들 품앗이로 함께 채취해 만들어 주었던 공동체 음식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소안도에는 항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다보니 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들을 위한 보양식이 발달했다. 독립운동가들이 형무소에서 출옥을 해 소안도로 돌아오면 어혈을 풀어주고 구타와 고문을 당해 생긴 장독을 빼주고 또 몸보신을 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민간 처방들이 행해졌다. 생지황으로 막걸리를 담아 먹이면 어혈이 풀렸다. 개머루 뿌리를 찧어서 고문으로 멍든 데 붙이면 푸른 물이 겉으로 다 빠져나왔다. 잎이 지네발 모양으로 생긴 지네초란 약초도 특효약이었다. 순사들에게 매 맞은 상처에도 지네초를 다려 먹이거나 생으로 짜서 먹이면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부러진 뼈도 금방 붙을 정도였다. 기력 회복을 위해서 보신탕이나 개소주를 먹이는 것은 기본이고 해산물로도 다양한 보양식을 만들어 먹였다.

복쟁이(복어) 요리도 옥살이 한 이들의 보양식이었다. 말린 복어에 찹쌀을 넣고 끓인 복어 곰국은 기력 회복에 그만이었다. 잘 말려둔 참복찜도 입맛을 회복 시켜주는데 특효였다. 복어는 내장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담가 핏기를 아주 깨끗이 뺀 뒤 말린다. 잘 마른 복어(참복) 사이에 된장, 고추장, 깨소금을 넣은 양념을 바른 뒤 갈라진 배를 덮고 몸통을 볏짚으로 묶은 뒤 떡 시루에 넣고 떡을 쪄내듯이 찐다. 2시간 남짓 불을 때면 알맞게 잘 익는다. 잘 쪄낸 복어 위에 참기름을 발라서 밥상에 올린다. 지금은 압력솥으로 찌면 그만이다. 보양으로도 좋고 맛으로도 따라 올 음식이 없다.

신안의 대기점도, 소기점도에는 아주 특별한 고구마 요리가 있다. 도토리묵, 메밀묵, 청포묵, 우무, 바옷묵, 벌버리묵(박대 껍질묵) 등 세상의 많은 묵들을 먹어봤지만 고구마묵은 대기점도에서 처음 맛봤다. 묵은 고구마전분으로 만든다. 고구마전분과 물의 비율은 1:5. 고구마 전분과 물을 잘 섞은 뒤 불에 올리고 눌지 않게 계속 저어주다가 끓기 시작하면 3-5분정도 더 저어준 뒤 불을 끈다. 눌러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을 끄고서도 한동안 더 저어준다. 다른 그릇에 옮겨 붓고 식혀주면 묵이 완성된다. 예외도 있지만 흔히 접하는 일반적인 묵들은 대체로 잘 부서진다. 입안에서 씹는 맛도 별로 없다. 하지만 고구마묵은 다르다. 쫄깃쫄깃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다.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맛. 식감도 좋은데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혀끝을 자극해서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대기점도에서는 고구마묵은 물론 고구마 수제비나 고구마 팥 칼국수를 해먹기도 한다.

그밖에도 보길도에서는 전복을 말려서 포로 먹는 전복포와 소라를 말려먹는 소라 패랍도 있고 진도에는 꽃게를 찜이나 탕이 아니라 회로 먹는 꽃게 초회도 있다. 옛날에는 그 귀한 꽃게 알로 만든 꽃게 알포도 있었다. 흑산도 홍어껍질묵과 장어간국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을 불문하고 압해도, 가란도, 보길도, 노화도를 비롯한 전남지역의 모든 섬들에서 즐겨먹는 대표 음식 중 하나는 물김요리다. 마른 김 밖에 모르는 육지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지만 물 김국, 물김 덖음, 물김 전, 물김 청국장 같은 음식은 최고의 별미다. 섬 토속음식은 무궁무진하다. 섬은 그야말로 해산물 요리의 천국이고 전라도 섬 어머니들의 토속 음식은 가히 해산물 요리의 바이블이라 해도 손색없다. 원형이 사라지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섬 토속 음식들에 대한 채록 작업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강제윤(사단법인 섬연구소장)

노화도전복요리

대기점도고구마묵

대마도황칠보양탕

댁점도낙지국

도초도감성돔젓국

보길도전복포

소안도마른복어곰국

안도백년손님밥상

안도해물요리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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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물김청국장

진도꽃게회

찰감태무침

하의도 냉연포탕

하의도냉연포탕

흑산도홍어껍질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