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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죽마을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마을과 돌담이 아름답다. 이돈삼 마을에서 본 삼각산 풍경. 바위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돈삼 손죽도는 거문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지리적으로는 고흥에 가깝다. 손죽도는 본디 고흥 땅이었다. 1896년 돌산군이 새로 생기면서 관할이 바뀌었다. 돌산군이 여수로 편입되면서, 손죽도도 여수의 품에 안겼다. 여수바다가 품은 353개 섬 가운데 하나다. 손죽도로 가는 배편은 넉넉하지 않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을 타야 한다. 이 배가 고흥 외나로도 축정항을 거쳐 손죽도에 들른다. 고흥 녹동신항에서 차도선형 여객선도 오간다. 손죽도에는 주민등록상 130가구 190여 명이 살고 있다. 실제는 100여 명이 산다. 마을 앞, 유려하게 구부러진 포구에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편집에디터2021.07.15 15:05모정마을-겉보기에 전형적인 농촌이다. 하지만 속은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이돈삼 나도 모르게 '순간이동'을 한다. 어렸을 때, 수박 서리의 현장으로. 달빛마저도 흐릿한 여름날 밤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산자락에 있는 수박밭으로 향했다. 밭이랑을 따라 슬금슬금 기어가서, 수박 한 덩이씩 얼른 따서 들고 오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숙련이 된 덕이었다. 혹여 밭주인이 눈치를 채고 "어떤 놈들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 땐 줄행랑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박 한 덩이를 옆구리에 끼고 도망쳐 나올 때엔 스릴마저 느껴졌다. 그 수박은 더 맛있었다. 꿀맛, 그것이었다. 수박과 참외 서리뿐 아니다. 깊은 밤에 토끼와 닭·오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왔던 기억도 소환한다. '거사'를 함께 했던 일행에는 밭이나 동물의 주인집 아들이 끼어있기 일쑤였다. 수박 서리를...
편집에디터2021.07.01 16:44난장기-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다. 이돈삼 바닷가의 숲으로 간다. 영광 진성마을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와 법성리를 합해서 이름 붙였다. 법성면에 있는 여러 마을 가운데 가장 컸다. 옛 법성진의 치소도 106년(1789∼1895) 동안 자리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군사의 중심지였다. 지난 6월 14일이 음력 5월 5일 단오였다. 옛날에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 정월대보름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큰 행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영광 법성포는, 동해안 강릉과 함께 단오제의 전통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돼 있다. 법성포 단오제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법성포 단오제가 열릴 때는 조기 떼가 영광 칠산바다로 알을 낳으려고 찾아드는 즈음이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면서 파시가 열렸다. 어부들 손에도 돈뭉치가 쥐어졌다. 단오제의 규모...
편집에디터2021.06.17 15:06나산마을 풍경. 이돈삼 담양엔 누정이 많다.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소쇄원이 맨 앞자리에 선다. 식영정, 송강정, 독수정, 면앙정도 있다.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의 사림들은 이 누정에서 주옥같은 시와 글을 지었다. '가사문학(歌辭文學)'이다. 자연스레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이 됐다. 담양의 누정 가운데 관어정(觀魚亭)이 있다. 식영정, 송강정에 비해 지명도는 낮지만, 손에 꼽히는 누정이다. 이른바 '담양 10정자(亭子)'에 속한다. 10정자는 담양군이 지난 2011년 선정했다. 1945년 해방 이전에 세워진 것 가운데 현존하는 정자를 대상으로 주민과 공무원,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발표했다. 담양 10정자에는 관어정 외에도 식영정, 소쇄원 제월당·광풍각,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남극루가 포함됐...
편집에디터2021.06.03 15:22백운산 성불계곡. 하조마을 앞으로 흐르는 명물 계곡이다. 이돈삼 백운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이 도솔봉과 형제봉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성불계곡과 반월계곡의 물줄기도 시원하게 흐른다. 연녹색의 숲에 눈이 시원해진다. 마음속 깊은 데까지도 청량해진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하조마을이다. 마을의 형세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한다. 예전엔 다랑이 논이 많았다. '산달뱅이마을'로도 불린다. 산달뱅이는 다랑이를 일컫는 지역말이다.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장수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가을엔 백운산 단풍을 보려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겨울 산행객들도 많다. 새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찾아온다. 사철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골이다. 마을에 둘레길도 있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면서 만나는...
편집에디터2021.05.20 16:20변이중의 충절을 기리는 봉암서원. 변이중을 주향, 윤진 변윤중 변경윤 변덕윤 변휴 변치명을 종향으로 모시고 있다.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때 3대 전투로 행주대첩을 꼽는다. 1593년 2월 12일 권율 장군이 이끈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다. 부녀자들이 치마를 이용해 돌을 옮기고, 그 돌로 일본군과 투석전을 벌이며 이겼다는 싸움이다. '행주치마'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선 투석전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을까? 사람이 던지는 돌팔매가 조총보다 더 효율적이었다는 말인가? 군인의 수도 일본군이 조선군보다 10배 남짓 많았다는데…. 자료에 의하면 당시 조선군은 2300여 명, 일본군은 3만여 명이었다. 행주산성은 돌로 쌓은 튼튼한 성도 아니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한강변 구릉...
편집에디터2021.05.06 16:37해동문화예술촌 전경. 옛 주조장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양의 도시재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곡창고도, 정미소도, 주조장도, 공판장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담빛예술창고와 해동문화예술촌이 담양의 도시재생을 대표한다. 담빛예술창고는 정부양곡 보관창고에 예술의 옷을 입혔다. 복합전시실, 문예카페, 문화체험실로 꾸며져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항아리에서 뽀글뽀글 술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던 술공장이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쓰지 않던 해동주조장이 예술공간으로 부활한 것이다. 부지 6600㎡에 이른다. 전시 공간은 주(主)·조(造)·장(場) 3개 테마로 이뤄져 있다. 갤러리와 아카이브실, 교육실도 갖추고 있다. 맛이 다른 예술마을이다. 해동문화예술촌을 찾아간다. 실내전시관. 해동주조장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막걸리,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막걸리와 술 이야기 등을 보여준다 ...
편집에디터2021.04.22 12:54삼학도 공원마당에 흐드러진 튤립.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봄꽃의 향연이 계속되고 있다. 주연이 산수유꽃과 매화, 벚꽃에서 배꽃, 복사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꽃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과 함께 꽃말을 지니고 있다. 샛노란 개나리는 희망, 순백의 백합은 순결,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꽃말로 삼고 있다. 같은 꽃이라도,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른 것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튤립이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도 사랑 나름이다. 빨강색 튤립의 꽃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고백이다.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빨강과 보라색 튤립의 사랑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다른 색깔의 꽃말은 아니다. 노란색은 헛되거나 가망 없는 사랑을 가리킨다. 하얀색은 실연, 검정색 튤립은 짝사랑을 꽃말로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는 튤립이라면 노란색과 흰색, ...
편집에디터2021.04.08 11:07관매도해수욕장. 모래가 떡처럼 단단하다고, 떡모래밭으로 불린다 . 햇살 좋은 봄날이다. 신선과 선녀도 풍경에 반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걸 깜박했다는 곳으로 간다. 국립공원공단이 '명품마을'로, 전라남도가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한 진도 관매도다. 관매도는 풍광 빼어난 섬이다. 해안이 아름답고, 해송 숲이 울창하다. 이야기거리도 풍성하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슬픔의 섬으로 변해 버렸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주민들의 삶이 버거워졌고, 지역경제도 활력을 잃었다. 시나브로 회복되고 있다지만,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아직도 상처가 크기만 하다. 남도의 꽃봄이 절정을 향하는 이때, 다시 관매도로 가는 이유다. 관매도와 세월호는 떼고 생각할 수 없다. 관매도로 가는 배를 진도항(팽목항)에서 타야 한다. 관매도의 돈대산 정상에 서면, 세월호를 삼켜버린 동거차도 부근 ...
편집에디터2021.03.25 11:09오지호기념관과 독상마을-면소재지 들녘에서 본 풍경이다. 화순 동복으로 가는 길, 날씨가 좋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가 봄물을 가득 머금었다.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도 보인다. 다사로운 봄햇살에 봄꽃도 여기저기서 벙글어진다. 꽃이 만든 그림자가 짙고 깊다. 빛깔도 저마다 다르다. 마치 오지호(1905∼1982)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오지호는 기존의 풍경화에다 빛과 그림자를 더했다. 나아가 빛과 그림자를 그림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여수 출신의 김홍식(1897∼1966), 신안 출신 김환기(1913∼1974)와 함께 한국 서양화단의 1세대로 통한다. '회화는 광(光)의 예술이다. 태양에서 난(生) 예술이다. 회화는 태양과 생명과의 관계요, 태양과 생명과의 융합이다. 그것은 광을 통하여 온 생명이요, 광에 의하여 약동하는 생명의 자태다. …(중간생략)… 회화는 환희의 예술...
편집에디터2021.03.11 11:03옛 장좌리 당제-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주변을 돌며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정월대보름이다. 예전엔 정월대보름이 정말 큰 행사였다. 세시풍속도 많았다.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의 4분의 1이 정월대보름과 연관된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정월대보름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여러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쥐불을 놓고, 불깡통을 돌리고, 연을 날렸다. 달집태우기를 하고, 당제를 지내는 것도 이때였다. 지금은 달집태우기와 당제만 일부에서 행해질 뿐, 모두 추억 속의 풍경이 됐다. 정월대보름날 가장 큰 당제가 열린 곳이 완도였다. 완도의 당제는 해상왕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으로 알려진 장좌리에서 행해졌다. 풍물놀이로 새벽을 깨우고 동이 틀 무렵 당제를 지냈다. 우물굿과 당산굿, 지신밟기도 했다. 갯제도 지냈다. 장좌리 당제는 길굿을 하며, ...
편집에디터2021.02.25 13:12철암산에서 내려다 본 엄길마을 전경 매향비(埋香碑)는 대개 바닷가에서 나타난다. 다음 세상에서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바라면서 향나무를 바닷가 갯벌에 묻고 세웠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의 탄생을 바라던 민중의식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은 달랐다. 바위에 새겼다. 기록으로 봤을 때 1344년(충목왕 원년)에 세웠다. 조성연대와 목적, 장소, 매향을 한 집단과 발원자 등이 적혀 있다. 글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새겨진 점도 별나다. 서호보건지소에서 연결되는 철암산(120m) 중턱의 바위 한쪽에 새겨져 있다. 마을사람들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글자바위'라 불렀다. 전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옛날에 보물을 묻어두고, 그 장소를 바위에 적어뒀다. 하지만 나중에 해독할 수가 없었다.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물을 캐면, 액이 끼어 화를 당한다고 했다. 보물을 찾...
편집에디터2021.02.04 12:47영산포등대-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고, 배의 앞길까지 밝혔다 . 영산강이 품은 바다라고 '영산내해(榮山內海)'라 했다. 영산강이 바닷길과 통하던 시절의 얘기다. 그때 영산강은 자체로 바다였다. 그 바다를 통해 문물이 오가고, 다른 세계와 교류를 했다. 고려 때부터는 조창(漕倉)을 통해 물산이 한양으로 올라갔다. 일제강점기엔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빼앗기는 창구였다. 그곳이 영산포다. 지금의 나주시 영산동이다. 바닷길로 연결된 당시 영산포는 큰 포구였다. 일제가 나주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수탈해 가려고 목포, 군산과 함께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하루 수십 척의 배가 드나들었다. 자연스레 돈이 오가고 선창도 북적거렸다. 창고와 금융기관, 관공서, 요릿집이 즐비했다. 1972년 시작된 영산강유역 개발사업이 문제였다. 상류에 댐이 하나씩 생기면서 유량이 줄었다. 배가...
편집에디터2021.01.21 11:05땅끝 표지석과 땅끝전망대 '이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 길손이여/ 땅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중략)… 수천 년 지켜온 땅 끝에 서서/ 수만 년 지켜갈 땅 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 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손광은이 쓴 '땅끝탑비'의 일부분이다. 땅끝. 한반도의 최남단, 국토의 끝(土末)을 가리킨다. 북위 34도 17분, 동경 126도 30분에 좌표가 찍힌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에 속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땅끝이다. 땅끝은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국토를 종단하려는 사람들이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다. 무언가 큰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땅끝을 찾는 것도 매한가지다. 연말연시에 해넘이와 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도 줄을 잇는다. 땅끝에서는 한 자리에서 해넘이와 해...
편집에디터2021.01.07 11:21가내마을-전경 코로나19가 발길의 방향을 자주 바꾼다. 이번에도 산간 기슭이다. 외지인의 발길이 아주 드문 외딴 마을이다. 망일봉이 둘러싸고, 맑은 내가 흐르는 마을이다. 산속 마을이지만, 선각자가 많이 났다. 근현대에 27명의 박사가 나왔다. '박사마을'로 불린다.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이다. 독립신문을 펴낸 송재 서재필의 생가가 여기에 있다. 한말 의병장 이교문도 여기서 났다. 성주 이씨가 모여 살고 있다. '다정가(多情歌)'로 우리한테 익숙한 이조년(1269~1343)의 후손들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라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냥 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하얀 배꽃에 달이 밝게 비치고 은하수가 흐르는 깊은 밤에/ 꽃가지에 깃든 봄의 정서를 두견새가 알고 저리 ...
편집에디터2020.12.17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