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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임사 강당_저존재著存_ 백옥연 1547년 9월21일, 조용하던 나주 송현동 마을 어느 집에 갑자기 금부도사가 들이닥친다. 그 집은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호걸 임형수의 집. 마치 손님을 맞이하듯, 그는 놀라는 기색도 없다. 사약을 들고 자신을 죽이러 온 금부도사를 누가 이처럼 태연자약하게 맞이했던가. 임형수는 안뜰에 들어가 부모님에게 두 번 절을 하고 나왔다. 채 열 살이 안 된 아들을 불러 그 와중에 경계를 하였다. "구야, 울지 말고 아비의 얼굴을 잘 보아라. 이 아비는 나쁜 짓을 한 일이 없는데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너는 앞으로 과거에 응시하지 말거라"라고 일렀다. 아들이 절하고 돌아서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몇 걸음 걸어가자, "나 좀 보아라" 하며 아들을 다시 돌려 세웠다. "글을 아니 읽으면 무식한 사람이 될 터이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편집에디터2019.09.26 13:05죽림마을 앞에서 바라본 겸천서원, 상호정, 영모재 전경(백옥연) 처서(處暑), 더위가 멈춘다는 뜻이니, 여름은 여기서 정지한다. 짱짱하던 볕의 기운이 한풀 꺾이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때. 만물은 겉으로 그만 크고, 속으로 여문다. 사람도 키가 부쩍 크다가 어느 때 멈추고 철이 드는 것처럼, 외형보다는 내면이 살찌는 시기이다. 마지막 노염(老炎)은 오곡이 여물고 과일에 단맛이 스미도록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깐깐 5월, 미끈 6월, 어정 7월, 동동 8월'(음력)이라 한다. 오뉴월 모내기 김매기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8월 추수를 앞둔 지금이 좀 어정쩡하다는 말이다. 어정은 말을 그래 붙여놓은 것이지, 사실은 기다림이다. 무엇이 완성되기 까지 기다림 없는 것은 없으니까. 그래서 8월 보름 추석 앞에 7월 보름 백중(百中)이 있다. 백중은 실컷 노는 날. 호미...
편집에디터2019.08.29 12:431.관리사에서 바라본 미천서원_전라남도 기념물 제29호(백옥연) 예기(禮記)'곡례상편'에 '대부는 나이 칠십이 되면 관직에서 물러난다(大夫七十而致事)'는 치사가 있다. 치사(致仕)는 요즘 정년퇴직제도와 같은 조선시대 가이드라인이다. 치사자에게는 해당 관아에서 술과 고기를 보내고, 사직(謝職)의 허락을 얻지 못하거나 업적이 큰 사람에게는 궤장(几杖)을 하사했다. 조선시대에 칠십이 넘도록 정승으로 재직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 인물이 조선 세종대의 명재상 황희. 64세에 우의정이 된 후 87세까지 영의정의 벼슬에 앉았다. 그러나 과거를 보지 않고 천거로 56세에 벼슬을 시작, 80세에 대사헌으로 특별 임용, 이조참판 우참찬 이조판서를 거쳐 81세 우의정으로 발탁된 파격적인 인사가 있었으니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3~1682)이 그 주인공이다. 보통 사...
편집에디터2019.07.25 13:51보성읍 우산리 소재 대계서원 영역 보성여중에서 좌로 꺾어 택촌마을 밑 굴다리 지나면 우산리(牛山里)다. 길이 좁아 경운기나 다닐 만하고, 굴다리가 낮아 버스는 못 들어갈 형편이다. 들에는 갓 모내기한 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반듯하지가 않고 지렁이 기어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못줄을 잡고 하던 모내기만 못하다. 하긴 그것이 직선인들 어떠하고 곡선인들 어떠하리. 가을 돼서 누렇게 잘 익으면 그만이지. 허리 펴고 멀리 보이는 끝에 검게 빛나는 기와지붕들, 대계서원이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유물관, 동재, 서재, 강당이 넓게 자리하고 내삼문 왼편에는 높지 않은 잠언비가 서 있다. 대계서원의 주인공 은봉 안방준(1573~1653)이 지은 '구잠(口箴)'이다. 잠(箴)은 바늘이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구잠은 말 조심, 주잠(酒箴)은 술 조심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말한 네 가지, ...
편집에디터2019.06.27 14:38매월동에 위치한 전평제_회재 박광옥이 44세에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_사진 백옥연벽진서원_회재 선생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필자 회재로(懷齋路). 나주에서 광주 가는 길. 남평 사거리에서 출발하여 40리 길이니 꽤 멀다. 길은 거울에 비친 기역자처럼 북향하다 동쪽으로 꺾어진다. 사거리에서 올라가면 고싸움 놀이공원을 지나 대촌교차로에 이른다. 거기서 교차하는 사거리가 포충사(褒忠祠) 가는 길, 포충로다. 충을 기리는 곳, 누구의 충인가. 충렬공 고경명의 충이다. 때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성을 점령하고 강토를 휩쓸어 버리던 풍전등화의 시절.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은 관군 5만명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겨우 수천의 왜군에게 어이없게 패하고 말았다. 고경명은 분연히 일어선다. 격문을 돌려 6천명의 의병을...
편집에디터2019.05.28 15:390-0.용산재 가는길 압록역 앞 섬진강_백옥연신숭겸을 찾아 가는 길. 덕양서원을 나와 용산재로 가고 있다. 덕양서원은 곡성군 오곡면에 있고, 용산재는 목사동면에 있다. 50리 남짓, 그리 멀지는 않은 길이다. 거기 가는 길이 셋 있다. 하나는 찻길이고, 하나는 기찻길이고, 또 하나는 물길(뱃길)이다. 셋은 나란히 흘러간다. 찻길은 구례 가는 국도 17호선이고, 기찻길은 익산에서 여수로 가는 전라선이다. 물길은 섬진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압록에서 보성강으로 우회전하여 흐른다. 강이 흐르고 큰 버스들이 달리고,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올 때, 셋이 함께 갈 때가 아름답다. 봄이 깊어 백화난만하였던 길에, 동백, 산수유, 목련, 철쭉, 살구, 자두, 복사, 앵두, 헤아릴 것 없이 지천에 피었더니만, 차가 지나는 바람결에 아직 남은 벚꽃 잎들이 눈처럼 휘날리는 것은, 어느 상춘이 이만할까 ...
편집에디터2019.04.25 12:58'강천(剛泉)의 맑은 물은 동쪽으로 우렁차게 흘러가고/ 온릉의 울창한 나무는 북쪽을 바라보며 푸르고 푸르네/ 비석은 닳아 없어져도 선생들의 이름은 끝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순창 강천산 '삼인대(三印臺)' 얘기다. 삼인대는 도장 3개를 걸어둔 누대라는 뜻이니, 비석은 닳아 없어져도 이름은 끝내 남을 것이라는 그 사연이 자못 비장하다.때는 바야흐로, 조선 중기 중종반정 무렵이다.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반정공신들은 중종의 본부인(元妃) 신씨를 폐출한다. 신씨의 아비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다. 새 왕비로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씨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장경왕후가 된 윤씨는 10년만에 원자를 낳고 사망한다. 연산군의 폭정과 두 번의 사화와 반정이라는 대정변을 겪고서, 공신들의 발호로 왕권은 미약하고 민심은 안정되지 않았는데 장경왕후의 죽음과 잦은 재해가...
편집에디터2019.03.28 14:11만수사와 해동사 전경그것이 왜 거기 서 있을까? 단지한 손을 들고 선생은 왜 바다를 바라보고 계실까? 사람들이 동으로, 해 뜨는 곳으로, 정동진하여 갈 때, 어느 날 나는 남으로 정남진하여, 국토의 남방 맨 끝에서 안중근을 만났다. 토요시장 갔다가 표고삼합 먹고 돌아오는 장흥, 거기서 회진으로 더 내려가 정남진 전망대에 들렀더니, 안중근 선생이 단지한 왼손을 들고 바다를 향해 서 계신 것이 아닌가. 무슨 연유로 황해도 해주 출신인 그의 동상이 멀고 먼 장흥 정남진에 우뚝 서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장흥군 장동면 만연리 만수마을에는 두 개의 사당이 나란히 있다. 만수사와 해동사. 만수사(전남문화재 71호)는 죽산안씨의 사우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과 조선시대 향학과 덕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안원형, 안면, 안정생, 주세붕, 안중묵 6인의 선현을 제향해 오고 있다. 선조들의...
편집에디터2019.02.28 14:32백옥연 광주 광산구 문화재활용팀 팀장 광산구 역사문화전문위원 "여보게, 이제 나갈 시간이 되었네. 오늘이 내 삼오 젯날이라 먹을 것이 푸짐할 거야""미안허이,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셔서 내 나갈 수가 없네. 자네나 귀한 음식 대접 잘 받고 오시게나"사람이 자기 삼오제에 나가서 젯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고, 귀신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대화는 귀신들끼리 주고받는 바람결의 말이다."아니 누가 왔단 말인가? 도대체 누구길래 걸신 들려 죽은 자네가 젯밥을 마다하나?""허허 천기누설이라 말하면 아니 되네. 훗날 조선의 어둠을 밝힐 한림학사가 오셨으니 그리 알아두게"소년은 글을 배우러 매일 십리 길을 왕복했다. 광양 옥룡 하운마을에서 숲골까지, 소년에겐 먼 길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해질 무렵 돌아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동무들 떠난 서당에 홀로 남아...
편집에디터2019.01.24 13:46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 설악을 거쳐 동해를 끼고 굽이치다가 태백에서 서향하여 지리산까지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 이 땅의 근골을 이루는 한반도 등뼈의 저 아래 꼭짓점이 지리산 천왕봉이다. 강을 건너지 않고, 끊기지 않고, 산맥으로만 이어지는 큰 줄기에서 1개의 장백정간과 13개 정맥들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온 산하로 펼쳐진다. 그 능선과 계곡의 주름 폭 사이사이에 철 따라 춘하추동이 깃들고, 때에 따라 우리들의 생로병사가 있다. 지금 찾아가는 길은 방산서원. 지리산의 주능선, 천왕봉-장터목-세석-벽소령-뱀사골-노루목-반야봉-노고단-성삼재로 이어지는 1백리 길을 지나, 구례를 향하여 서남방으로 내려간다. 기둥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내려가는 길에 산맥은 아름다운 견두산을 낳고, 그 꼬리에 왕봉을 물고 있다. 방산서원은 왕봉을 주산으로, 오산을 안산으로 하여 문효공 윤효손...
편집에디터2018.12.27 13:46경원문_해촌서원 외삼문(최부(崔溥), 임억령(林億齡), 류희춘(柳希春), 윤구(尹衢), 윤선도(尹善道), 박백응(朴伯凝) 등 6현을 배향) 미암사당 담양군 제공우슬재 넘으면 해남이다. 고개가 높아 소도 무릎을 꿇는다는 그 재 넘어 저수지 사이로 난 숲길을 따라, 해촌서원 가는 길이다. 초록도 지고, 단풍도 지고, 나무는 옷을 벗어버린 가을의 끝자락. 자리 잡지 못한 낙엽들이 바람 따라 쓸려 다니고 있다. 겨울과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실루엣 같은 시간들. 사랑이 사랑에 도착하기 전에 더 설레고 조바심 나는 것처럼, 500년 전 조선의 최고의 격조높은 로망스를 찾아가는 발길이 그러하다. 해촌서원에는 최부, 류희춘, 임억령, 윤선도 등 6현이 배향되어 있는데, 지금 이야기는 미암과 덕봉에 관한 것이다.미암(眉巖)은 류희춘(柳希春·1513~1577), 덕봉(德峰)은 송종개(宋種介·15...
편집에디터2018.12.09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