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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무안학 심포지움을 열었다. 무안군 후원 무안문화원 주최 프로그램이다. 우후죽순 지방학이 생겨나는 와중에 아마도 꼴찌로 이름을 올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2년여 두 번의 기획과 섭외 등을 맡아 진행해서가 아니라, 향후 지역학을 고민하고 구성해나갈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페이스북에 간략한 성과를 공유하였고, 오프라인의 독자들을 위해 다시 풀어쓰는 셈이다. 그동안 몇 차례 무안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와 토론이 있었지만 등 지역연구의 맥락을 넘어서는 지역학 화두를 내걸었다. 무안문화원 이...
편집에디터2022.09.15 17:10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근데 그때는 뭐, 광대 뭐, 딴따라 뭐, 이럴 때지(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4)." "그러니까 떠돌이들은, 유랑극을 하는 사람들은 조심을 해야된다. 이래가 부모들이 말렸어요(한국영화사연구소, 2010)." "영화 한다고 그러께네 뭐 뭐 기생 사람 된다카고 뭐. 그때 영화라는 게 인정도 안 했지, 그래께 내가 몰래 나왔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7)." "어어, 그리니까 완고하지요. 그니까 풍각쟁이한테 누가 딸을 주겠느냐(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아, 보나 마나 그런 딴따라니까, 이혼했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9)." 이승연의 '서사를 통해서 본 1950~60년대 대중문화 예술인의 정체성-예술관과 직업관을 중심으로(인문사회 21)'라는 글의 인용문들이다. 광대, 딴따라, 떠돌이, 풍각쟁이는 물론이요, 각설이, ...
편집에디터2022.09.01 16:242001년 진도 소포마을 상가에서 열린, 고 정숙자의 씻김굿 중 손님굿. 이윤선 "경상도는 대풀이요/ 전라도는 중천의 풀이란다/ 잔도 잔도 새로 속잎이 났네/에라 만수야 에라 대신이야/ 많이 흠향하고 평안히 돌아가소서"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 씻김굿의 대표적인 마무리곡이다. 시나위나 굿거리 연주를 하다가 당골 혹은 음악의 리더격인 누군가가 이 노래를 꺼내면 모두 합창하며 해당 거리를 끝내게 된다. 이 곡을 꼭 집어 이름을 붙인 예는 없다. 어떤 굿거리를 마무리하는 곡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나는 '갈무리조'란 이름을 쓴다.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한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조(調)'는 시가나 노래의 음수에 의한 리듬 단위라는 의미로 차용한 것이다. 부언하자면 하나의 굿판을 이루는 십수 개의 하위 굿거리들이 있다. 대개 열두 개 정도로 구성된다. 그 중 중요한 하위 굿...
편집에디터2022.08.25 16:15"해모수와 사통한 뒤 버림받은 유화를 이상하게 여긴 동부여의 왕 금와가 그녀를 방에 가두었는데 햇빛(日光)이 비추니 몸을 이끌어 이를 피하고 해그늘(日影)이 좇아와 비추니 받아들여 이로 인해 잉태했고 하나의 알을 낳았다." '삼국유사' 「고구려조」 주몽 탄생 기사를 김지하가 인용한 대목이다. 흰그늘이란 작명의 출처를 엿보게 해준다. 이렇게 설명한다. "햇빛(日光)과 해그늘(日影)이 분명히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각각 '햇빛'으로 번역했으니 '해그늘' 곧 흰 '그늘'의 깊고 무궁한 신화적, 신비적, 미학적 의미, 그 창조적 ...
편집에디터2022.08.18 16:56임실필봉농악-블로그 후니의 감성기행에서 인용 "수컷 굴뚝새는 영토를 얻게 되면 흔히 있기 마련인 침입자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음악상자 리토르넬로'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 나서 영토 안에 직접 집을 짓는다. 심지어 12개씩이나 지을 때도 있다. 암컷이 다가오면 한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집 속을 들여다보는 암컷에게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꼬리를 낮추고 노랫소리를 점차 약하게 한다.(중략) '구애'의 기능 역시 영토화되어 있다. 하지만 영토의 리토르넬로를 매혹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도를 바꾸기 때문에 그 정도는 집짓기보다 덜하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이하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설명이다. 오래전 소리의 영토와 재영토화에 대해 소개하면서 인용해둔 대목이다. 리토르넬로에서 공명(共鳴)까지란 부제를 붙였던 이유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ᄆᆞᆷ톨로지'와 수렴 및 확장...
편집에디터2022.08.11 15:182003년 덴마크 스톡홀룸 광장, 진도강강술래. 이윤선 "너를 어쩜 좋니/ 촉촉한 코를 내 얼굴에 대고/ 폭폭폭 숨을 쉬며 자는 너를(중략)/ 내가 뭐라고/ 나 같은 게 뭐라고/ 자그마한 생 전체를 맡겨두고/ 온몸으로 말을 걸어오는 너" 이토록 다정한 연인이라니. 대체 누구이길래 몸을 던져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맘을 던져 사랑하는 것일까? 그것도 오로지 화자 한 사람만을 말이다. 이런 사랑이라면 사람의 삶이 어떤 한순간인들 무슨 상관있으랴. 그 순간을 영원처럼 살면 되는 것을. 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한건희의 '고양이는 서른 살, 개는 세 살'(부크크)에 나오는 시다. 사람이었으면 더욱 좋을 뻔했으려나? 반려동물과의 이런 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깊고 넓다. 식용이 일반적이었던 복날 풍습의 정서와는 격세지감이다. 급류에 휩쓸린 차 안에서, 개를 먼저 구...
편집에디터2022.08.04 15:16씻김굿(이슬털이). 진도군 제공 몇주 전 조선일보 조용헌살롱에서 '씻김굿의 이슬털이는 술 만들기''는 내 이론을 다루어 주었다. 씻김굿의 핵심거리인 '이슬털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 시대가 장차 씻김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상재(上梓)한 글이다. 내 오랜 주장이기도 하지만, 비로소 내 생각들이 인용되는 듯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감사드린다. 이 언급을 기회로 다가오는 명절 백중을 빌미 삼아, 기왕의 설을 보충해 둔다. 진도뿐 아니라 남도 전역의 씻김굿 중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기도 하고 또 이 시대가 더불어 어깨 겯고 나가야 할 덕목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누룩과 솥뚜껑을 솔가지(근래는 빗자루)로 씻는 의례 이슬털이. 이윤선 남도씻김굿 이슬털이 방법과 유교적 맥락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의 씻김굿은 우리나라 남도 무속의례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사안마다 다른 이름을 붙...
편집에디터2022.07.28 14:42석양 깊은 골짜기, 헛간의 오래된 부삭(아궁이), 쇠여물 솥에 불을 '달멘다'. 덜 마른 '등걸'은 송진을 피식피식 토해내면서도 불을 품는 성정이 그윽하다. 웬만한 바람 따위로는 이 진득한 화염을 방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빼짝(바싹) 마른 '뜽컬'은 그리 진득하지 못하다. 그저 제 몸 하나 태울 화력이라고 할까. '등걸'을 켜켜이 쌓아 불을 지피는 것을 '달멘다'고 한다. 오래된 우리 고향 말이니 이 정도 설명은 해두어야겠다. 고사한 나무뿌리 땔감을 '뜽컬'이라 하고 일반적인 장작을 '등걸'이라 한다. 솔잎 땔감을 '소사리'라 한다...
편집에디터2022.07.21 15:12남원몽심재 안채. 이윤선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가 서울 단성사에서 공연할 때다. 여배우 이애리수(1910~2009)가 막간 무대로 나와 이 노래를 불렀다. 갑자기 객석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훗날 남인수가 불러 국민가요가 되었던 , 본래의 노래 제목은 이다. 전수린이 작곡하고 왕평이 작사하였다. '황폐한 도성의 흔적', 개성 만월대를 보고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망해버린 왕조 고려에 투사했으리라. 허물어진 성터가 주는 영감은 벼랑에 폭포수 쏟아지듯 망국의 조선사람들에게 번졌으니, 일제가 서둘러 금지곡으로 지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잡초 우거진 도성 터, 이것이 어디 개성의 만월대에 그치겠는가. 흥망성쇠의 왕조에 그치겠는가....
편집에디터2022.07.14 15:312022. 6. 20_22. 통신사선 탐사, 홍도의 해무 -이윤선 유월 중순을 넘긴 바다는 깊고 아득했다. 한 치 앞을 열어주지 않는 시계(視界)였다. 틈새로 간혹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난 6월 20일부터 3일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복원통신사선이 공식적인 첫 탐사(단장 진호신 연구관)에 나선 길이다. 항구에 접안 하기는 했지만 묘박(錨泊)에 준한 일정이었다. 배에서 먹고 자고 사흘 밤낮을 보냈다. 시험탐사 때도 합류하여 본 지면에 감상을 남긴 바 있다(2022. 1. 14). 새벽부터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곧게 한 후에야 승선할 수 있었다. 고대로부터 배를 타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러하다. 제사장이 큰 제사를 지낼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스치는 바람 한 조각, 지나는 날짐승 하나에도 일진과 기후의 조짐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임에도 이 심리...
편집에디터2022.07.07 15:00'2021 세계 한국어 한마당' 개회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이날치밴드. 뉴시스 경기소리는 이희문에게 보존해야 할, 혹은 발전시켜야 할 그 무엇으로서 가창자에게 의무와 당위를 부과하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 성악의 음악적 텍스트는 '만들어진 전통'이 빚어낸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원형으로서의 경기소리와 그 텍스트가 꽃핀 문화와 물적 토대, 환경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지난 6월 24일 한국민요학회 제75차 정기학술대회, 이소영 교수(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가 발표한 '민요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희문의 경기소리를 중심으로'의 한 대목이다. 이소영은 이 발표에서 이희문의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실험들이 역설적으로 경기소리라는 민요의 ...
편집에디터2022.06.30 16:12발리 오고오고 행진. 정지태 제공 6월 초 한국 최초로 도깨비학회를 결성하고 소소한 국제학술포럼을 열었다. 도깨비가 한국 고유의 호명법이라 세계 최초의 학회라 해도 무리는 없겠다. 영광스럽게도 이 몸이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어 당분간 학회를 이끌 처지가 되었다. 학회원들에게 보낸 성료 감사의 인사말 중 해외발표문에 대한 논평 일부를 옮겨두고 그 의미를 새겨둘까 한다. 참고로 조자용의 왕도깨비 유산에 대한 김영균(도깨비학회 고문)박사의 기조발표 및 세계의 가면에 대한 김정환(도깨비학회 고문)소장의 기조발표 등 흥미진진한 국내의 발표가 있었다. 지면 활용상 이 발표들은 따로 기회를 만들어 소개해드리기로 하겠다. 뜻하지 않게 일본 및 해외 연구자들도 다수 가입신청을 해주어 고무적이었다. 미약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창대한 미래를 예비하는 듯하다. 윤열수 명예회장, 나승만 명예회장, 박전열 ...
편집에디터2022.06.23 15:47그날따라 짙은 해무가 끼었다. 여수 백도의 물목, 바로 앞에 있는 매바위가 보일 듯 말 듯 지척이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안개였다. 지상의 눈 달린 생물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닌 듯했다. 천길 물속도 안개가 스몄던 모양이다. 길 잃은 물고기들이 방황하다 벼릿줄을 보지 못하고 그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물의 멸치는 만선하고도 넘칠 만큼 풍족하였다. 아들은 신이 났다. 그물을 걷어 올리는 손에 힘이 넘쳤다. 그런데 이물칸에서 백도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불안한 듯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물을 거두어라! 돌아가야...
편집에디터2022.06.16 17:33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의 시, 인동차(忍冬茶)이다. 다 타지 않은 덩그럭 불, 물에 삶아 우려낸 인동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윽하다 못해 간절하다. 김 서린 흙냄새를 맡으며 바깥을 내다보니 눈바람 가득하다. 달력도 없는 어느 골짝 산중일 것이기에, 시간의 들고남이 무슨 상관이랴. 한겨울...
편집에디터2022.06.09 14:42"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脚)이 백호현무(白虎玄武)를 응하야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東南大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의 하나, 긴박한 장면이기에 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
편집에디터2022.06.02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