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하늘도 땅도 바다도 모두 황톳빛인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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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하늘도 땅도 바다도 모두 황톳빛인 남도
391)황토로 그린 섬, 황토에 담은 남도
“통영에는 전혁림이 있고 목포에는 원을지가 있다. 통영의 바다는 하늘을 사모해 맑고 푸르지만, 목포의 바다는 가도 가도 황톳길 붉은 흙을 사모해 웅숭깊고 감칠맛 난다. ”
  • 입력 : 2024. 04.18(목) 11:16
그 섬에 가고싶다 시리즈, 섬마을의 봄, 원을지 작
그 섬에 가고싶다 시리즈, 원을지 작
동해의 하늘은 바다를 사모해 쪽빛이 되었고 바다는 하늘을 사모해 쪽빛이 되었다. 성경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이런저런 창조 후에 이윽고 사람을 짓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의 생령이 된지라.” 동양에서는 천지창조와 인류의 기원 신화로 여와(女媧)와 복희(伏羲)를 등장시킨다. 마치 머리 둘 달린 하나의 뱀처럼 두 개의 가닥이 비비 꼬인 형상을 하고 있다. 후한 시대의 응소라는 사람이 지은 『풍속통의』에 이런 묘사가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사람이 없었다. 여신 여와(女媧)가 황토를 뭉쳐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을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힘이 들었다. 새끼줄을 진흙탕 속에 담갔다가 꺼내 사방으로 흩뿌렸다. 흩어진 진흙들이 모두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기원이 흙이라는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본래 지은 대로 사람은 흙색을 띠고 바다는 쪽빛을 띠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눈길을 돌리면 바다도 하늘도 모두 흙빛인 곳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흙만 두드러지는 곳, 논밭과 언덕과 얕은 구릉지를 덮고 마침내 황토물 온몸으로 받아들여 바다까지 물들인 땅, 남도가 바로 그곳이다. 그래서다. 바다는 남도땅을 사모해 황톳빛이 되었다. 땅도 바다를 사모해 황톳빛이 되었다. 바다와 땅이 서로 사모하는 것은 필경 시원(始原)을 흠모해서이리라. 나는 이 바다를 고려도경의 저자 서긍의 작명방식을 빌려 토수양(土水洋)이라 명명하고 그 속살들을 추적해왔다. 동해안처럼 맑고 푸른 바다가 아니라, 곰삭은 김치처럼 불그죽죽하고 깊디깊은 황톳빛 바다다. 남도 사람들은 이곳을 ‘갱번’이라고 불렀다. 내륙의 강변(江邊)에서 비롯된 용어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바다 모두를 총칭하는 호명 방식이다. 내가 ‘갱번론’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있음과 없음을 교직하는 변주 공간으로 남도를 설파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하루에 두 번씩, 한번은 땅이 되었다가 한번은 바다가 되는 공간, 아담과 하와가, 여와와 복희가 본래 한 몸의 황토였듯이 물아래 궁창과 물 위의 궁창으로 넘나들며 현현하는 카오스의 공간이다.



황토물로 바림하고 오방색으로 조각 맞춤한 남도의 섬



목포 KR 갤러리에서 특별기획전이 열린다기에 한걸음에 찾았다. 원을지 작가의 ‘그 섬에 가고 싶다’ 작품전, 내걸린 작품들을 보고 나는 숨을 한참이나 가다듬어야 했다. 디테일이 현란해서도 아니고 묘사가 중후해서도 아니며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생소한 이름, 한 지역의 무명작가가 표현해낸 이 그림들을 보고 남도의 바다 ‘갱번’을 떠올렸고 가도 가도 천릿길 남도의 황톳길을 떠올렸으며 무엇보다 흙으로 빚어 창조한 남도의 바다 토수양(土水洋)을 떠올렸다. 원을지 작가에게 물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황토색이군요? 대답이 돌아왔다. 남도의 바다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조차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바다는 그렇다 치고 하늘까지 황토색이니까요. 남편이 황토 관련 건축업을 하는데, 결혼 전 어느 날이었던가 권유하더라고요. 황토로 색칠을 해보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황토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하늘까지 황토로 그리려 생각한 것은 아마 체화된 남도인의 기질이 있어서일 겁니다. 그런데 산과 집과 논과 밭들이 모두 오방색이네요?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 조각보를 생각하며 그렸어요. 조각보나 우리 전통의 민예 작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오방색이라는 표현은 솔롱고스의 색깔 무지개색이며 열두 줄 가얏고의 음색이며 조각조각 덧대고 이은 색감들을 모두 아우른다. 점과 선과 면들을 채운 오색들이 마치 씨실과 날실이 교직하여 옷감을 자아내듯 흙의 거친 질감과 교직하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양화가 아니라 우리의 민화 아닌가? 지난 전시회부터 붙인 제목이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점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황토물로 바림하고 오방색으로 조각 맞춤한 남도의 섬”.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인 통영의 전혁림과는 결이 다른 지점이다. 수년 여 한국민화협회 민화지도사 자격증 특강을 해오면서 내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전혁림이다. 김환기보다 더 먼저 우리나라에 추상화를 도입한 분이자 대표적인 서양화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민화 작가의 범주로 해석해오고 있다. 내가 전혁림을 민화 화가 혹은 민화적 세계관을 가진 화가로 분류하는 이유가 있다. 조수진은 「전혁림의 다른 추상: 한국성의 탈근대적 구현」(미술사학보 45, 2015)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혁림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1950년대 무렵, 추상은 범세계적인 미술의 양태였으며 한국의 미술가들은 이 추상 양식의 도입을 기점으로 국제 미술계에 편입되었다. 이 사실을 고려할 때 전혁림 추상회화의 ‘다른’ 성격은 더욱 유의미해지는데, 작가가 추상이라는 보편적 미술 형식을 ‘세계화’가 아닌 ‘지방화’와 ‘토착화’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전혁림은 일생을 서구에서 탄생한 미술인 추상을 ‘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전력한 작가였다.” 관련한 이야기는 중국의 어민화, 클림트 등과 더불어 차차 소개해나가겠다. 어쨌든 조수진의 언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원을지를 민화 화가 혹은 민화적 세계관을 가진 작가의 범주로 이해하는 내 시선은 명료하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작 그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화면의 거친 질감에서 어찌 야나기무네요시가 흠모했던 남도의 막사발 분청(粉靑)을 떠올리지 않겠으며, 조각보처럼 배치한 오방색에서 어찌 민화의 세계를 떠올리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통영에는 전혁림이 있고 목포에는 원을지가 있다. 통영의 바다는 하늘을 사모해 맑고 푸르지만, 목포의 바다는 가도 가도 황톳길 붉은 흙을 사모해 웅숭깊고 감칠맛 난다.



남도인문학팁

민중미술운동 이론가 원동석의 대를 이은 원을지의 개인전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작을 출품하고 있는 원을지는 목포 출신 서양화가다. 하지만 굳이 민화 작가로 분류하고 싶은 이유는, 부친 고 원동석(본명 원갑화)이 한국을 대표하는 민중미술운동 이론가로 활동해온 내력 때문이기도 하다. 미처 출판하지 못하고 지인들 몇 사람에게 복사본으로 전해진 유작 『우리 예술의 미학-서방을 넘어 자본을 넘어』를 보면, 남도의 철학이 깊게 스며있다. 원을지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원동석으로부터 민중미술뿐 아니라 남도의 철학을 듬뿍 세례받았고 그림에 대한 감각을 키워왔다. 종래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남도의 황토를 기반으로 미학적 세계관을 세우게 된 것도, 이런 일련의 맥락을 짚지 않고서는 해석하기 힘들다. 가계의 혈맥에 더하여 남도의 DNA를 상속받은 예술가라고나 할까. 2017년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짚풀박물관 흙조형 전시, 전남여성작가 단체전, 목포여성작가회원전을 거쳐 2022년 제4회 개인전을 열었다. 마침 2024년 5월 1일까지 목포 KR갤러리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으니, 하늘도 땅도 바다도 모두 황톳빛인 남도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관람하셔도 좋겠다. 아직 무명에 가깝고 더러는 미완이기도 하지만, 원을지가 장차 세워나갈 서남해의 섬, 캔버스에 투사될 남도의 세계가 기대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센인 한하운 시인이 혼을 녹여 노래했던 땅 가도 가도 한 서린 황톳길이 아니라 이제는 가고 싶은 섬, 살고 싶은 남도일 것이기에 그렇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