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항일운동충혼탑, 왼쪽 석비에 이기홍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국 근·현대사 산증인, 학생독립운동 주역 이기홍 이기홍의 부친, 이사열 백지동맹의 주역, 퇴학을 당하다 이기홍(李基洪, 1912~1996)은 전남 완도군 고금면에서 이사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부친 이사열은 한성외국어학교 일어과를 다닌 엘리트였지만, 1910년 8월 국권을 빼앗기는 비참함과 일진회 등 친일파의 망동(妄動)을 보고, 보장된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낙향, 고금도 청용리에 정착한다. 이사열은 고금도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경성에서 경험했던 망국 전후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등을 통해 습득한 국제정세를 나누었다. 외진 섬마을에서 접할 수 없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아이들은 민족의식에 눈을 떴고, 의식 있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아들 이기홍도 그중 하나였다. 고금...
편집에디터2021.10.20 16:17사전에서는 항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도록 강가나 바닷가에 부두 따위를 설비한 곳'. 포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언제부터 이런 용어들이 사용된 것일까? 조선시대까지 '부두(埠頭)'를 항구(港口)로 표기한 예는 거의 없다. 고종 이후에야 무안항(務安港) 등의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의 목포항이다. 1897년 10월 개항한 이후 무안항이었다가 1910년 목포부로 개칭하면서 목포항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배를 대어 사람과 짐이 뭍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편집에디터2021.10.14 17:03나뭇가지를 두 발로 밟고 그 사이로 끼워넣은 길다란 등나무 껍질을 좌우로 힘껏 당기는 것을 아주 빠르게 반복했다. 숨이 차는 가 싶을 때 연기가 피어나더니 그만 줄이 끊어져버렸다. 실패인가 했는데 잽싸게 입김을 불어 넣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다가 거친 손 안에서 병아리 갓 태어나듯 불씨의 탄생을 알렸다. 아직도 원시가 살아 숨쉬는 곳들이 있다. 파푸아의 열대 우림 속에는 지금도 발가벗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며, 20미터가 넘는 곧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돌도끼를 사용하며 생활의 모든 것을 자연속에서 구한다. 현대...
편집에디터2021.10.14 15:12한국최초 성경전래지. 서천군청 제공 6월 25일 어느 나라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죽선(三帆竹船)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하였는데,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하였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하였는데…. 1832년, 「순조실록」 32권 7월 21일 기사 내용이다. 지난 칼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전래자로 알려진 귀츨라프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이것을 이양선의 출몰과 관련하여 풀어본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경을 전래한 사람이 귀츨라프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른바 대항해시대로 불리는 격동의 시기,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유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양을 침탈하던 때이다. 무역을 빌미 ...
편집에디터2021.10.07 17:17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어렸을 때, 누비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비이불은 푹신했다.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이불이 무거운 게 흠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누비이불은 형제들의 도화지였다. 돌아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곧잘 그렸다. 하지만 칭찬을 받지 못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동냥을 나가야 했다. 그 시절, 목화가 지천이었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다. 딸자식이 많은 집은 더 심었다. 당시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첫손가락에 꼽는 혼수품이었다. 목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다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도 아름다웠다.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처음 만난...
편집에디터2021.10.07 17:16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 차노휘 1)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설문대할망에게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다. 할망은 어느 날 아들들을 위해서 큰 가마솥에 죽을 끓이고 있었다. 워낙 솥이 커서 나무 주걱을 크게 휘젓는다는 것이 부뚜막에 손을 짚고 중심을 잡고 있던 팔목을 쳐버렸다. 그만 할망이 솥에 빠져버렸다. 일을 하고 돌아온 아들들은 여느 때보다 더 죽을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에 귀가한 막내는 솥에 남은 뼈를 보고는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다. 막내는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형들과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 차귀도로 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형들은 한라산 영실로 올라가서 돌이 되었다. 형들이 돌이 된 그곳을 영실 기암, 즉 '오백장군' 혹은 '오백나한'이라고 부른다. 올레를 걷다보면 이색적인 풍광뿐만 아니라 독특한 전설도 많이 접한다. 그 중에서 한라산과...
편집에디터2021.10.07 14:59장석천 출옥기사(동아일보 1933년 11월 16일자) 수감번호 451번 장석천의 모습 신지 항일운동기념탑 1920년대는 사회주의가 수용되면서 민족운동 방략이 다변화되었다. 이에 노동·농민·청년·여성·형평운동 등 대중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조직 기반을 갖추고 활발히 전개된 것은 청년운동이었다. 특히 광주·전남의 경우 청년운동과 학생운동이 결합하였고, 그 결과물이 3·1운동 이후 최대 항일독립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이었다. 1920년대 후반 전남지역 청년운동의 핵심 인물은 장석천이었다. 전남청년동맹 집행위원, 전남청년연맹 상무집행위원장, 조선공산청년회 전라도 책임자, 신간회 전남지회 상무감사 등의 직함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장석천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학생투쟁본부를 결성했고, 조선 청년 총동맹 및 신간회와 협...
편집에디터2021.10.06 16:45"외기러기 날아가 쉬는 곳이 어디냐/ 구름아 물어보자 너만은 알고 있지/ 외기러기 날아가 앉을 곳이 어디냐/ 바람아 물어보자 너만은 알고 있지/ 어릴 적 옛친구 지금은 무엇할까/ 내 고향 앞산에는 뻐꾸기 울겠지" 잘 알려진 김정호의 노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이 노래를 떠올린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가을 우수(憂愁)와 자연의 섭리가 이 노래를 호출하는 모양이다. 기러기 노래는 미련의 정조(情操)를 반영한다. 찬바람 나는 계절, 이루지 못하거나 풀지 못한 심사를 기러기에 투사했다는 뜻이다. 기러기는 가을에 ...
편집에디터2021.09.30 17:03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하는 풍경이다.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초가집. 순복이 누나네 집이었는데 헐린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아침 일찍 헐리기 전에 가보고 싶었다. 벌써 이곳저곳이 손을 탔는지 폐가의 모습이다. 나의 추억도 있고해서 애잔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때만 해도 기록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할 때지만 그냥 말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변을 한동안 서성거렸다. 그 누나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얼마동안 혼자 이 집에서 지냈는데 그래도 항상 밝은 성격이라 동네 또래들의 사랑방이었다. 우리 머슴아들은 신발을 감추는 등 짓궂은 장난...
편집에디터2021.09.30 15:30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지역 주요 국공립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술관의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원 제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온라인 사전예약 실시 중 예약 경쟁, 매진사례, 전시실 앞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무료 관람임에도 15만원 상당의 암표거래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이슈에 세계적인 K팝 아티스트이자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BTS의 리더 RM의 이건희 컬렉션 관람 인증샷이 SNS상에 퍼지면서 해당 유영국 작가의 '산'(1970's) 시리즈 작품 앞은 포토존이 되었고, 연이어 팬들의 카피 인증샷이 올라오는 등 화제를 낳았다. 은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는 문화재 2만 1600여점 '세기의 기증'의 사례로 막대한 규모 작품 및 유물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이번 특별 전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주고 있나. 그 컬렉션에 담긴 사...
편집에디터2021.09.26 16:33"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9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행한 기조연설 중 한 대목이다. 각국의 언론들이 주목했다. 지지하거나 ...
편집에디터2021.09.23 16:44공동우물 '장수정'의 표지석. 상몽탄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물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 즉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산강변이 그랬다. 물고기가 강물에서 솟아오르고, 하늘엔 새들이 날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강변 풍경이다. 물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숭어가 강변의 정적을 깰 뿐이었다. 물결의 파장이 잔잔한 강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강변 둔치를 연녹색으로 덮은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도 눈길을 끈다. 고양이나 살쾡이가 속이 불편할 때 뜯어먹는다는 풀이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로도 불린다. 겉보기에 솜털 같지만 따끔한 가시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골탕 먹일 때 썼다는 이야기가 서려 있다. 부인성 질환과 피부병,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강변...
편집에디터2021.09.23 16:44오설록 녹차밭. 차노휘 1) 제주어 올레를 걷다보면 낯선 지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14코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저지예술정보화 마을에서 4,4km를 걷다보면 큰소낭숲길이 나온다. '낭'은 나무의 제주어로 제주올레에서 길을 개척하면서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큰소나무숲길을 따라 4km를 더 가면 돌멩이들과 이름 모를 잡초들로 어울려진,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구획된 길을 만날 수 있다. 오시록헌 농로이다. '오시록'은 호젓하고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는 뜻의 제주어이다.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14코스의 아늑한 비경인 '굴렁진 숲길(움푹 패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지다'라고 한다)'로 들어서게 된다. 지명도 낯설지만 그 풍경 또한 새롭다. 바닷가를 노닐다보면 막 물질을 끝낸 해녀들이 그녀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외부인이 뭔가 물어보면 산뜻한 표준어로 답변을 해준다. 이들은 ...
편집에디터2021.09.23 16:45명절 두부탕(소고기). 블로그 꾸니쑤니의 소확행에서 캡쳐 해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는 '밀백기'를 만드셨다. 추석과 설은 물론 유두 백중에도 빠짐없이 준비하셨다. 설날 필수적으로 장만하는 것이 조청(엿)이고 추석날 필수로 준비하는 것이 송편이라면 모든 명절을 통틀어 준비하는 음식이 '밀백기'다. 송편도 각각의 명절마다 준비하던 것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턴가 추석 음식으로 정착되었다는 점, 몇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설날 가래떡을 찍어 먹기 위해 조청을 준비한다는 점도 지난 칼럼에서 소개해두었다. 그렇다면 왜 명절에 밀백기를 해야만 했을까? '밀+백기'에서 '밀'은 명절을, '백기'는 두부조림 혹은 두부탕을 말한다. 진도, 해남 등 남도 일부 지역에서 명절을 '밀'이라 한다. '밀'이란 명칭의 분포권은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잔존지역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다. ...
편집에디터2021.09.16 16:18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우리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고,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만주지역을 떠돌다가 쉔양(瀋陽)의 북쪽에서 그럴싸한 조형물을 만나게 되었다. '9,18 만주사변역사관'의 상징물이다. 동북아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의 야욕과 더불어 '양세봉'을 비롯한 조선독립군의 활동도 엿볼 수 있어 꼭 들려봐야 할 곳이었다. 조선을 강탈하고 난 일본군은 대륙 침략에 대한 야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 시작의 단초가 된 사건이 1931년 9월18일 벌어진 '류타오후(柳條溝) 철도폭파사건'이다. ...
편집에디터2021.09.16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