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
명심아, 잘 지내? 明心, 밝은 마음, BRIGHT HEART, 너의 그 이름처럼 주변을 밝고 환하게 해 주던 너를 떠올려 봐. 아름다운 할머니 선생님으로 끝까지 남겠다던 너의 호기로운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떠도는 아름다운 선언 중 하나야. 그러나 너는 건강상 이유로 학교를 먼저 떠나야 했어. 아쉽고 안타까운 교육계의 손실이고 작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도 너의 등을 떠밀 수밖에 없었어. 어서 내려가.
너는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자 안간힘을 썼어. 아니, 멋진 선생님이었지. 우리가 40대 중견교사가 되어갈 때,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도 했었어. 이젠 학교에 있으면 무언가 가슴에서 외치는 명령이 있어. 무언가 해라. 선언보다 실행을 해라, 그러면서 너는 척박한 땅에 어린나무들을 키우는 심정이라고 했어. 잘만 키우면 저 나무들 중 어느 나무든 크게 자라서 가지를 뻗어 여름이면 얼마나 울창하게 이 땅을 덮어줄 것이냐 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날 그 그늘 밑에서 쉼을 얻겠느냐, 가을엔 그 열매로 배부를 것이냐, 겨울에도 희망을 갖겠느냐 했어. 겨울 그 맹추위 속에 의연하게 살아남아 봄이 되어 어린 초록 싹을 내미는 것을 보면, 아~~!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그래, 다시 시작하자 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 했어. 그 나무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하던 너의 모습은 아름다운 투사 같았지. 가녀린 몸에서 뿜는 기운은 독립군을 이끄는 야전 사령관 같았어.
그러나 땅은 너무 척박했어. 주변은 또 얼마나 혼란스러웠던지. 많은 어린 나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눈앞에서 말라비틀어져 가고, 죽어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 달떠있는 너를 만나곤 했어. 의욕에 넘쳐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컴퓨터 붙들고 더 나은 교수 학습 방법을 찾아 탐색하고, 도움이 될 만한 교육 관련 연수를 부지런히 찾아다녔지만,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그 땅이었지. 워낙 황폐했었지. 너는 더 말라갔고, 저러다 아프면 어쩌나 했지. 우려하던 일은 언제나 현실이 되는 걸까? 너의 마지막 쥐어짠 땀을 어느 나무에겐가 주고, 쓸쓸한 박수를 받으며, 너는 홀연히 그 땅을 떠나갔어.
네가 먼저 떠난 학교에 남은 나, 네가 가졌던 그 아름다운 교사로서의 선언을 마음에 새겼어. 그리고 네가 그리던 그 나무들의 성장을 기어코 보리라 다짐했어. 해마다 그들이 조금씩 가지를 더 뻗고 이파리를 내는 것을 도와줘야겠다고 힘을 냈어. 초록은 동색이라, 너를 친구로 둔 나, 그 밝음 마음을 내 가슴에 켜 두고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어. 사실, 교사로서 너의 선언을 내가 대신한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좀 더 기민하게 바른길로 가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의 나 됨에 너의 너 됨이 얼마간 들어있어. 그래서 난 너를 존중하고 네가 나의 친구인 것이 자랑스러워. 부와 명예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고귀한 성품이지.
명심아, 후회는 없지? 그때 조금이나마 남은 기운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벌써 5년째 자유로운 연(금)수(급)생(활자)으로 살아가니 어때? 아직도 꿈속에서 학교 교실을 헤매고 있어? 아직도 어두운 밤에 화상으로 호주 어느 학교와 국제 교류 수업을 이끌다가 인터넷이 꺼져버리니, 깜짝 놀라 잠에서 깨는 것은 아니지? 사실, 5개월 차 신참자인 내가 그러고 있거든. 명심아, 너로부터 세계시민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온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답게 이끌어 가고 있을 미래는 우리의 환상만은 아닐 거야. 우리, 참 애썼어.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애쓴 나를 위해 그동안 우리가 꿈꾸기만 했던 남미 5개국 여행을 먼저 다녀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우리가 대학도 같이 다니고, 20대 청춘을 함께 보내며 늘 꿈꾸던 것이 세계 여행이었지. 우리 늙어도 같이 다니자고 약속하던 날도 기억이 생생해. 어렵고 힘들 거라고 하도 야단들이라, 내가 먼저 남편과 함께 떠났으니, 용서하렴. 상황, 시간, 그리고 체력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한 달간 남미 여행이라 쉽지 않다고 너는 지금껏 미뤄 왔던 것을 알고 있어. 그래도 지금이 가장 젊을 때이니, 지금 떠나야 해. 고산병이 걱정이긴 하지만, 잘 준비하면 어려울 것 없더라고. 우리 여행 팀 중에 70대 어른 부부가 씩씩하게 잘 다니셨어. 명심아, 우린 아직 젊은 어른이더라. 너를 위한 상황, 시간을 만들고 바로 떠나길 바란다. 체력은 거기 가서 확인해 보면 돼. 우리 35년 넘게 학교라는 전장에서 야전 사령관이었잖아. 우린 얼마든지 해 낼 수 있어.
친구야, 가라. 떠나라. 더 넓고 아름답고 진기한 세상으로.
친구야, 가라. 떠나라. 더 넓고 아름답고 진기한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