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결 국립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사학과 23학번 |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경 윤석열 대통령이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을 선포했다. 늘 평화로웠던 일상을 한순간에 망가뜨릴 수도 있는 포고령이었다. 하지만 비상계엄령 자체가 우리에게는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재난문자는 발송되지도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 선포 명분을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현 정치 세력 중에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함”이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근간을 흔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삼권분립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 윤대통령이 그렇게 외치는 자유민주주의입니까? 비상계엄의 요건인 전시, 사변에 준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대통령은 그저 본인의 안위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48년 이곳 순천대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령(심지어 계엄령 관련 법이 제정되기 전이었다)으로 인해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전라도 및 경상도 지역의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1980년 광주에서 흘린 피는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 물론 필자를 비롯한 동 세대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라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13번의 비상계엄으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에 행여 총소리가 날까, 피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무기력함을 느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소식을 접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제 제가 직접 느낀 바로는 그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제 필자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한창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던 분위기에서 비상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당장 지금 옆에 있는 내 친구, 선배, 후배가 내일이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나 또한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그 불안감. 내일의 안위를 서로 걱정하며 술자리를 파한 후, 집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그저 TV 뉴스에서 비춰주는 국회의사당만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무력감과 공포를 둘 다 느꼈다. 지방이라는 이유로 직접 현장에 가서 도움을 못 준다는 무력감. 그리고 계엄군 철수 약속 후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던 역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그것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 국회의원을 무력으로 체포 후 감금시킨 뒤 계엄령을 다시 선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슴 졸이며 미디어를 붙잡고 있었던 게 대다수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이렇게 지금 닥친 상황이 무섭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제 비상계엄 소식을 접한 후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릴 때, 어머니께서는 ‘당분간은 몸조심, 말조심하고 나서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저는 차마 어머니의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땅 위의, 대한민국의 대학생이라면 마땅히 불의에 맞서 싸우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게 옳으니까, 나는 나의 방식으로 투쟁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알겠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할 것인가요? 저는 여러분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길 바란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이 사태에 대해서 묵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의 손으로 얻는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투쟁의 결과와 승리의 흐름에 편승해 누리지 말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주도적으로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를 지켰으면 한다. 이것이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대학에서 배우는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