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좋은 살인, 나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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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좋은 살인, 나쁜 살인
박성원 편집국장
  • 입력 : 2024. 09.29(일) 16:13
박성원 국장
영화 ‘베테랑2’를 봤다. 전작 ‘베테랑1’을 재밌게 본 터라 속편을 기다렸다. 1편의 감독 류승완이 다시 메가폰을 잡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며 재벌 3세의 악행을 파헤친 정의감 넘치는 경찰 서도철(황정민)을 비롯한 강력범죄수사대 식구들이 다시 등장해 반가움을 더했다.

영화는 ‘해치’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인데, 그에게 피살된 이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제자를 성폭행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대학교수, 사소한 시비 끝에 임산부를 넘어뜨려 숨지게 한 주취자 등이다. 이들은 각각 거짓말로 법의 심판을 피하고, 만취 상태였다는 점을 내세워 감형을 받는다. 해치는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을, 피해자가 숨지던 순간을 재연해 살해하는 인물이다. 범죄자를 개인이 응징하는 사적제재는 분명 범법행위이지만. 일부 유튜버는 해치를 의인으로 치켜세우고 응원한다.

‘비질란테’, ‘모범택시’, ‘살인자ㅇ난감’ 등 사적제재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베테랑2’는 결이 다르다. 영화는 사적제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도철은 “사람을 죽이는데 좋은 살인이 있고 나쁜 살인이 있어? 살인은 살인이야”라고 일침을 날린다.

사적제재를 다룬 콘텐츠가 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재벌 수장들의 재판은 항상 지지부진하고, 재벌 3세들의 마약 투약 혐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빵을 훔치고, 10만원을 훔친 절도범은 구속되고, 수백억원을 빼돌린 대기업 회장들과 부정부패를 저지른 유력 정치인들은 불구속 수사를 받거나 감옥에 갇혀도 곧장 보석으로 나온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행태에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의 통쾌한 ‘사이다 복수’에 대리 만족을 느끼고 열광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의 국민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지난해 발표한 ‘2023 번영지수’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지수는 조사대상국 167개국 중 바닥 수준인 155위에 그쳤다.

영화 ‘베테랑2’는 연쇄살인범 해치를 통해 사적제재가 이뤄진 배경을 상세히 보여주면서도 그 불법성과 위험성도 함께 다뤘다. 사적제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지한 고민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