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일본 국민배우 코지의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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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일본 국민배우 코지의 ‘아름다운 삶’
빔 벤더스 감독 ‘퍼펙트 데이즈’
  • 입력 : 2024. 07.15(월) 17:41
빔 벤더스 감독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티캐스트 제공
빔 벤더스 감독 ‘퍼펙트 데이즈’. ㈜티캐스트 제공
언젠가 어느 택시 기사님에게서 들은 얘기다. 개인택시를 몰기 시작하면서 정성스레 차 청소를 하고 나름대로 시트를 깨끗하게 하려 애쓰고 다녔는데, 그게 되레 불편하다는 승객의 소리를 접한 후부터 칼각보다는 약간의 흐트러짐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투 머치’를 꺼려 하거나 불편해 하기는 하다. 과하지 않은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는 디지털 시대에 첨단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기보다는 때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도 챙겨가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감독은 여기에 주목했던 듯, 일본 대도시에 있을 법한 두드러지지 않는 레트로 감성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도쿄 시부야에서 어느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이 펼쳐진다. 이른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빗질 소리에 히라야마(배우 야쿠쇼 코지)는 잠이 깬다. 출근준비를 마친 그가 문을열고 나오면 맨 먼저 하는 일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다. 날씨를 체크하는 걸까, 그러기에는 눈빛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하늘이라는 자연과의 짧은 굿모닝 인사일지도 모른다. 작은 트럭에 오르면 카세트 테이프를 넣어 출근길에 올드 팝이 흘러나오도록 한다. 오늘의 음악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그가 차창을 통해 쳐다보는 하늘에 도시의 상징인 스카이 트리가 비친다. 공중화장실 변기며 수전을 거울을 비춰가며 빈틈 없이 닦아내는 그를 두고 뒤늦게 출근한 젊은 동료 타카시는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타박이다. 땅거미가 어둑해지면 퇴근길에 오르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 잠이 든다. 미국의 문호 포크너의 소설을 읽는 그의 모습은 과거에도 그가 화장실 청소부였을까 의구심을 자아낸다.

평온한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는 있다. 데이트 자금 때문에 시무룩해진 타카시는 히라야마의 카세트 테이프에 눈독을 들이고 가격을 물어보러 나서는데 뜻밖에도 귀한 테이프라 1만 2000엔이라는 시세를 듣자 팔자고 조른다. 히라야마는 자신의 일상의 한부분인 이 테이프를 팔 리가 없다. 결국 호주머니를 털어 지폐 몇 장을 타카시에게 건네는 것으로 상황을 끝낸다. 휴일이 오면 그의 루틴은 좀 더 색달라진다. 필름 가게를 들러 현상을 맡기고 새필름을 산다. 맑은 날씨와 하늘, 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사진을 정리한다. 한 주일 동안 읽을 책도 헌책방에 가서 골라온다. 해가 지면 단골 이자카야에 가서 한잔을 기울이는 재미도 즐긴다.

그의 일상을 주욱 따라가며 관찰을 하다보면 그에게 일상은 피곤하거나 귀찮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일이 아니라 마치 귀중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 뭔지 모르게 존경스러워진다. 영화는 그를 좀 더 보여주기 위해 가출한 조카 니코가 찾아오는 시퀀스로 이어진다. 영화는 설명도 없고 대사도 별로 없다. 특히, 히라야마의 대사는 매우 적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일상, 곧 시간의 흐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임이 읽혀진다. 오래된 물건, 노이즈가 섞인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필름 카메라에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담으며 중고 문고판을 읽는 작은 행복에는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일상에 대한 감사의식인 양 겸허함이 느껴진다. 담담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디테일한 레트로 결의 아름다움은 어느덧 객석에 스며든다. 히라야마가 등을 돌리고 온 과거에 내가 속해 있는 건 아닐까 점검해보거나 현재의 일상이 새삼 소중하고 행복한 것임을 곱씹게 할는지도….

별다른 설명 없이 과묵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관객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어 생각할 여지가 따른다. 그러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상을 긍정하는 일은 어쩌면 삶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애초에 독일의 거장 감독으로 알려진 빔 벤더스 감독에게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기념 단편영화 제작이 의뢰되었다. 도쿄 시부야구의 17개 공중화장실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새롭게 단장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감독은 이를 스토리가 있는 장편으로 만들어 보겠다 역제안을 했다 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2023 칸 영화제에 진출했고 배우 야쿠쇼 코지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송강호 배우처럼 일본의 국민배우인 야쿠쇼 코지는 우리에게는 ‘쉘 위댄스’(2000)로 알려진 배우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이력이 영화에 녹아든 것처럼 찰떡이었던 배역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에서도 다른 히라야마는 상상이 안 갈 만큼 히라야마로서 변신이 되어 있어 국민배우 답다는 생각이다. 7월 3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