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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장마
도선인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4. 07.10(수) 18:23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도선인 취재2부 기자.
며칠 사이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는 듯 하다. 시나브로 장마가 끝나가는 모양이다. 올해도 기록적 폭우로 마을과 도로가 물에 잠기고 집과 산이 무너져 목숨을 잃는 등 사건사고 소식에 심란한 마음이 잠기다가, 문득 윤흥길의 소설 ‘장마’를 생각한다. 소설 장마는 6·25전쟁 당시 이념으로 엇갈린 한 집안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분단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한(恨)으로 응어리진 ‘분단의 비극과 갈등’이 지난한 장마로 비유되는 것이, 꼭 여전히 이분법적 남녀갈등, 진영갈등으로 점철된 한국사회 일상과도 여태껏 맞물리는 듯하다.

소설은 좌우익 이념을 모르는 어린 소년 ‘나’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6·25전쟁으로 ‘나’의 외가 식구들이 주인공의 집에 피난을 온 상황에서, 사돈댁에 신세를 지고 있는 외할머니에게는 남한 국군 소위가 돼 전사한 아들이 있고, 집을 내어준 친할머니에게는 빨치산이 돼 현재 실종상태인 아들이 있다. 긴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던 어느날 외삼촌이 전사했다는 연락이 닿고 외할머니는 아들을 잃은 충격에 빨치산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산속에 숨어 지내는 빨치산 아들이 있는 친할머니는 크게 분노하는데…. 전쟁의 상황에서 상반된 이념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시대의 단상은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마무리 된다.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소설에서 장맛비를 이렇게 묘사한다. 장마를 생각하면, 더는 소설 어떤 은유적 표현이나 시원한 여름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의 장마는 이미 재난으로 변했다. 이상기후로 폭우가 내리는 날이 더욱 길어지고 있다. 몇 해 연속 시간당 100mm 안팎의 비를 쏟아내 ‘기록적 폭우’라는 말이 이젠 예삿일이 돼버렸다. 올해 역시 침수와 고립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장마 뒤 찾아올 폭염도 걱정이다. 인간이 자초한 자연재해에 한없는 무력감이 든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