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6월 16일(현지시각) 스위스 오뷔르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이번 정상회의에서 대다수 국가가 ‘영토 보전’과 ‘전쟁 규탄’에 동의했으며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10여 국가는 공동성명에 서명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
영어 버전에서는 스위스 외교관들은 이를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이라고 부르고, 독일어 버전에서는 ‘고위급 회의’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세계 평화정상회의’로 언급하고 있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평화정상회의 목표는 러시아의 고립을 보여주고 서방 밖 국가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결집하는 것이었다.
나토(NATO) 대서양위원회 유라시아 센터 부소장인 셸비 마지드는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싸움은 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외교적 참여, 세계 여론, 국제적 관심 모두가 러시아의 침략에 계속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평화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와 그 동맹국들이 세계적인 연대를 보여주고 전쟁과 러시아 범죄가 우크라이나 너머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이다”라고 했다.
이번 평화정상회의에는 92개국(코소보 포함)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수준의 8개 국제기구 대표도 참석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의 파트너이자 동맹국이다. 이 숫자는 초청국 수(160개 이상)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유럽, 미국, 일본은 물론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도 대표를 파견했다. 이번 평화정상회의에 참여한 국가들은 모두가 선언문에 서명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평화정상회의 선언문에 서명한 국가는 78개국에 그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메니아, 바레인, 브라질, 바티칸, 인도, 인도네시아, 리비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아랍에미리트가 서명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라크와 요르단도 서명을 철회했다.
사실 평화정상회의는 이탈리아에서 6월 13-15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일치하도록 특별히 시기가 맞춰져 있었다. G7의 유일한 비유럽 국가는 캐나다와 일본뿐이지만 많은 인도, 브라질,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등 비서구 국가의 지도자들이 이탈리아 정상회의에 초대되었다.
첫째, 평화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주최 측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평화정상회의 최종 선언문은 실효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러시아는 “스위스 회의는 어떤 종류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협상 플랫폼도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하고 있는 동안 어떤 평화 협상이나 긍정적인 결과에도 관심이 없다. 이것은 미국인들의 노력을 통해 일종의 최후통첩 요구에 서명해야 하는 위성 국가들을 모으기로 결정한 특정 통로였다”라고 말했다. 평화정상회의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의제에서도 식량 안보 문제는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서방은 식량 안보, 국가 개발 목표 등을 놓고 싸우는 결과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남반구 국가들과 그들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상회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계획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세계 공동체의 관심이 집중될 수 없었다. 갈등은 평화 및 영토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갈등은 남게 되었다. 진정한 평화 협상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분쟁 해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둘째, 이번 평화정상회의의 참여와 합의 등 이 모든 것은 국제관계의 외교 게임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직접 협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대리외교인 셈이었다. 회의는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의 논리와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형성되는 세계 질서의 복잡한 과정에서 주요 비서구 국가들은 추가적인 위치 결정을 해야 했다. 대부분 이들은 서방과 러시아 모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평화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는 동맹국의 약화되는 의지를 동원하고 개발도상국 국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이는 러시아 군대가 소진되고 모스크바가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우크라이나의 전투를 계속 지원을 받으려는 시도였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의 2024년 2월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73%가 필요한 한 계속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2023년 12월 키이우 국제 사회학 연구소(KIIS)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4분의 3은 평화를 위해 영토를 포기하는 데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19%였다.
이번 평화정상회의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대신 숄츠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의 평화 계획의 주요 목표는 서방 동맹국들이 휴전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숄츠는 평화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휴전에 반대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평화의 기초가 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화정상회의 참가자 대다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회의를 주최한 비올라 아메아르 스위스 대통령은 6월 15일 개회 연설에서 “러시아 없이는 평화 프로세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에르막 대통령실장은 평화정상회의에서 “러시아와의 협상도 배제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다음 평화정상회의에 러시아를 초대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서방 언론은 회의 주최 측이 남반구의 가능한 한 많은 국가를 참여시키기를 원한다고 썼다. 그래서 러시아 외교가 어떻게 작동할지, 러시아가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결정되지 않은 지도자들에게 이 평화정상회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확신시킬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했다.
그동안 베를린 재건 회의, 이탈리아 풀리아 G7 정상회의, 스위스 평화정상회의 등 고위급 회의는 우크라이나를 평화에 더 가깝게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회의에 서방만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반구, 중동, 중국, 러시아 등 영향력 있는 국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문제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시도로 이 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에 중국, 브라질이 포함된 영향력 있는 브릭스(BRICS) 회원국도 평화정상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번 평화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도모하고 있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아,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한 어려움도 눈에 띄었다. 중립을 주장하면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중국은 평화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모든 평화 계획을 논의하는 평화정상회의를 제안하였다.
유럽과 미국은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싸울 수 있는 러시아의 능력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시진핑 주석 지도부는 남반구(Global South)로 알려진 개발도상국과의 연대를 호소해 자국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브라질은 평화정상회의의 최종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브라질은 평화정상회의 이틀 전 대통령이 스위스에 있었으나 옵서버만 참가했다. 룰라 대통령은 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참석할 때만 평화정상회의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스 회원국인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고위 관리와 특사만 파견했다. 인도는 전 러시아 대사를 파견했으며 최종 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
남반구 국가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여러 국가에서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반서구 입장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남반구의 많은 국가에서는 2급 및 3급 관리 대표단을 회의에 보냈다. 따라서 그들은 서방과 대결하지 않지만 동시에 러시아가 평화정상회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평화정상회의에서 남반구의 지지를 얻으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평화정상회의에서 스위스와 우크라이나의 목표 중 하나는 남반구 국가와 우크라이나의 동맹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최대 참석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구 언론은 남반구 국가들이 최종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였다. 이처럼 여러 국가가 최종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것은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남반구 국가들을 이기지 못한 것은 러시아가 아직 고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지난 2년 동안 우크라이나 외교 의제의 핵심이었던 광범위한 글로벌 동맹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었다.
셋째, 평화정상회의는 분쟁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평화정상회의는 평화로운 목표를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하원 콘스탄틴 자툴린은 “이번 회의는 평화회의가 아니라 전쟁 회의이다. 이른바 평화정상회의에 양측을 모두 초대하지 않는다면 초대받지 않은 측과 싸우는 이들의 대열만 검토하는 셈이다”라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바실리 네벤자는 “이번 정상회의를 부가가치가 없는 유사 평화회의라고 불렀다. 서방은 팔 비틀기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남반구 국가들을 반러시아 모임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평화정상회의에서 최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비효율성에 대해 말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평화정상회의가 협상의 발전이나 평화 계획 실행 가능성은 낮았지만 우크라이나에게 상징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보았다.
한편, 6월 14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외무부 지도부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 군대는 도네츠크,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 헤르손 및 자포로제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NATO 가입 계획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 후 휴전하고 협상을 시작한다. 먼저 군대를 실질적으로 철수한 다음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인과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네 번째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권의 지도자는 정당성을 잃었으며 회복될 수 없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의 미래 운명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이 6월 14일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5일부터 16일까지 스위스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기에, 이곳에서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함께 평화 조건을 논의하기에 위해 러시아가 미리 제안한 계획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제안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남반구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서구의 이중 잣대 정책에 눈을 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평화정상회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외교의 기술이다. 외교는 군사·정치적 도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목표 달성을 크게 촉진하고 가속화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평화 조건 제시는 스위스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를 무력화시킨 또 하나의 뛰어난 외교 게임이었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