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기업의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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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기업의 ‘바가지’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6.20(목) 17:06
이용환 논설실장
“세계 경제를 읽는 데 경제학은 필요 없다. 두 눈 크게 뜨고 보이는 것에 질문을 던지면 된다.” 지난 2009년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격변하는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 ‘시그널’을 출간했다. ‘모든 데이터가 물가 인상은 없다고 보여주는데 왜 사람들은 생활비 부담에 짓눌리는 것일까’에서 시작된 그의 의문은 연구 결과 기업이 가격은 놔둔 채 상품의 양이나 부피를 줄인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그해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공식 등재된 신조어였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기업이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꼼수’를 의미한다. 알음알음 진행됐던 ‘꼼수’가 사회·경제적 문제로 불거진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였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치솟는 물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업체들은 너도 나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나섰다. ‘초콜릿칩 아이스크림에 초콜릿은 보이지 않고, 베이글은 중간에 구멍이 더 커졌다. 용량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확연히 차이를 느낄 정도로 쪼그라든 제품들도 많았다’는 게 맘그렌의 설명이다. 그렇게 줄어든 비율이 최대 25%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슈링크플레이션’을 대중화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 친기업 정서가 강한 미국 대통령선거였다. 주인공은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업보다 소비자의 표를 더 의식했던 그는 과자 제조업체에 ‘슈링크플레이션’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바가지’이면서 국민들은 사기꾼에게 놀아나는 것에 지쳤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 이것 뿐일까. 성분이나 원산지, 인체유해 여부까지, 소비자는 많은 신호를 놓치고 결국 기업은 그만큼 많은 이익을 가져간다는 게 ‘시그널’의 결론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1분기 주요 유통업체 8개사의 상품정보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용량만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상품 33개를 확인했다. 내용물 용량이 최대 27.3%가 줄어든 제품도 있었다고 한다. 과자류부터 식육, 가공품, 주방세제 등 품목도 다양했다. 재료 값과 연료비 등이 올라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기업측 해명이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자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은 신뢰를 갉아먹는 기만행위라는 점이다. 꼼수와 사기로 만들어낸 기업의 ‘바가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 경제학자 맘그렌의 조언처럼 그 기만행위를 막기 위한 소비자의 관심과 변화가 필요한 때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