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사 진료 허용 ‘초강수’… 시민 불안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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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건강
외국의사 진료 허용 ‘초강수’… 시민 불안 고조
정부, 의료법 개정안 입법예고
'의료 공백 대응’ 취지 밝혔지만
시민 "의료사고 누가 책임" 걱정
지역보건 “의료 질 하락 없어야”
급조 해결 지적도…"근본책 필요"
  • 입력 : 2024. 05.09(목) 18:17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최근 전남대병원 본관 진료실 앞에 진료 지연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전남대병원 의료진들은 지난 3일부터 지속적인 의정 갈등으로 극심한 피로로 인한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며 ‘주 1회 휴진’ 하기로 밝혔다. 나건호 기자
정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대책으로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의 환자 진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민들은 ‘믿고 진료를 봐도 되느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고, 의료 전문가들은 “비상시기를 타파하기 위한 급조 대책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빠른 사태 봉합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9일 정부·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심각’ 단계의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사람도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 예고는 20일까지며,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바로 공포·시행할 수 있다. ‘심각’ 단계가 유지될 경우 이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부터 외국 면허 의사의 진료가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외국 의사가 국내에서 의사를 하려면 한국 의사 면허 국가고시까지 봐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건의료 재난 경보 심각 단계 동안 국가, 학교 제한 없이 의사 면허만 갖고 있으면 국내에서 의사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지난 2월 의대 입학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떠난 후 공보의·군의관·진료보조(PA) 등을 투입했음에도 좀처럼 의료대란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 부족에 따른 공백에 대응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민들은 ‘난데없는 외국 의사 진료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올여름 대학병원에서 출산 예정인 임산부 양모씨는 “담당 주치의가 최선을 다해주긴 했지만 길고 긴 의료대란 속 ‘갑작스레 분만 수술이 취소되진 않을까’ 불안했다”며 “하루빨리 사태를 봉합하려는 정부 입장은 공감하지만, 외국 의사를 수입하는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특히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 분야에서 한국은 다른나라와 상당히 다르다. 한국인의 신체적, 정서적 특성에 맞춰진 의료시스템을 외국 의사가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걱정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타국에서 의료 진료를 받기 위해 국내를 찾는 이들의 우려도 크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한국에는 의료 비자가 있다. 의료 기술이 선도적이라 비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와서 진료받는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내로 들어온 많은 동포가 한국 의료에 감탄했다. 다른 나라서 살다 온 사람들은 ‘외국 의사 진료’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안다. 여기에 의료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책임질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환자와 의사 간 불소통은 덤”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심사를 거친 인원을 전문의 지도 하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사리에 맞지 않는 처사’라는 입장이다.

지역 공공의료 관계자는 “의료선진국 의사들이 국내로 들어와 공공의료·기피과 근무 등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이는 몹시 이상적인 일”이라며 “낮은 수가·과로 등 실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로 들어오는 의사들은 대부분 의술을 배우러 오거나 자국에서 자리 잡지 못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이들을 지도·관리할 전문의들은 또 어디서 구할지도 문제다. 의료 질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의료분쟁 시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더욱이 중증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은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실을 책임지고 감수해 줄 교수·병원이 있을까”라며 “(젓갈, 김치 등) 음식에서부터 한국인은 체질이 다르다. 기초 배경지식이 없는 의사가 와서 진료를 보는 것은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되레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말하는 ‘보건의료 위기’는 코로나19 등과 같은 것이 아닌 당국 스스로 초래한 사태”라며 “의료 행위는 쉽사리 외국 의사 면허자에게 맡길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의사는 질병 치료뿐 아니라 환자와 소통하며 마음마저 치료하고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급조된 지금 대책은 국민들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럴거면 정부는 외국 의사를 수입하지 왜 10년 후에나 효과가 나타나는 의대정원을 강제로 늘리려하느냐”며 “스스로 촉발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탁상행정을 거두고 결자해지 자세로 (근본적 대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