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무던한 사람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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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무던한 사람 둘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2.28(수) 13:37
임효경 교장
휴우~~!!! 2월 끄트머리 3일간 새 학년 집중 준비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찾아온 침묵의 세계. 때 늦은 겨울비인가, 때 이른 봄비인가. 일주일 내내 내리는 비 맞으며 우리 학교 교정에 피어있는 동백꽃도 검붉은 꽃송이를 황토 땅에 피우고 사위는 조용하다. 학교 뒷산 서망산에 깃든 박새들도 사뭇 조용하다. 방학 내내 더 깨끗한 공간 조성을 위해 공사를 하느라 앵앵거리던 기계 소리도 이제 사라지고 본관동 전체가 고요하다.

갑자기 쓸쓸하다. 학생들도 없고, 교사들도 이제 다시 봄방학에 들어갔다. 늘 내 곁에 계시던 교감선생님도 정년퇴직 위로 휴가 중이시다. 교장실 앞 동백꽃이 슬그머니 내 마음을 건드린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나, 엄청 둔감한 사람이야. 괜찮아.

나의 둔감함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릴 때, 막내딸 하나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느니, 어전 꼴뚜기 장사 아줌마가 너의 엄마라느니, 온 식구들이 놀려대어도 난 울지 않았다. 세 살 많은 언니가 물려 준 엉덩이가 반질반질해 진 교복 바지도 조금 신경 쓰일 뿐, 그냥 잘 입고 학교 잘 다녔다. 바쁘고 힘든 엄마가 통학 버스비를 주지 않았어도, 10킬로 넘는 거리를 3년간 잘 걸어 다녔고 그것으로 징징대지 않았다. 좋다 싫다 말하지 않고 그냥 수용하는 마음 자세는 옳은가, 좋은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1980년 5월 나의 고3 시절, 대학생이던 언니는 민주화를 외치며, 충장로로 금남로로 뛰쳐나가고, 아버지가 금족령 내리니 악다구니 쓰며 아버지 세대는 비겁하다고 울며불며 싸우는 중에도 난 눈만 멀끔멀끔 뜨고 있었다. 어린 교사 시절, 이리저리 떼 지어 몰려다니며 뒷담화하는 선배 선생님들이 싫었어도 밀어내지 못하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중견 부장 교사 시절, 고등학교 관리자가 고용직 기숙사 사감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해고하는 것을 보았지만 행정실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하니 나도 그냥 슬그머니 끈을 놓았다. 참 부끄럽고 무던한 사람이었다.

무던하지 않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인생살이와 늘 역동적인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잡는 교사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둔감하지 않고, 강압적인 선배들의 불합리한 지시와 횡포를 어떻게 받아 내며 견딜 수 있었겠는가? 무심하지 않고, 실속만 챙기며 등을 치는 후배 교사들을 어떻게 받아 낼 수 있었겠는가? 허무하고 허무한 인생이라 치부하지 않고, 매년 헤어지는 정든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어떻게 눈물 흘리지 않고 떠나보낼 수 있었겠는가? 38년 버텨내느라, 참 무심하고 무뎌졌다.

그런데, 그 여러 해 단련된 나의 둔감함이 순간 무너졌다. 이번 2월 완도중 졸업식장에서 졸업생과 재학생들 앞에서, 38년 교직 생활을 마감하시는 교감선생님께 정년퇴직 송공패(誦功牌)를 읽어드려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이건 아니야! 하는데 눈앞이 더 흐려졌다. 어린 선생님들도 이런 나와 공감했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눈물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난감함이란. 다 교감선생님 탓이다.

나보다 더 무던하신 교감선생님이었다. 당신보다 8개월 어린 나를 1년간 ‘교장선생님으로’ 극진하게 ‘모셔’ 편안하게 해 주셨다. 체육과 레슬링 선수, 코치, 교사로 지내시며,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시며, 다부진 체격만큼 마음도 단단하고 묵직하셨다. 레슬러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 여기저기 상처와 으깨진 흔적이 남아있건만, 선생님은 함평 촌놈이 최고로 성공했다며 특유의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힘들어하는 후배 교사들을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품고, 모두 공평하게 대해 주셨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출근하셔서 교무실 문 여시고, 창문 열고, 찻물 끓여 놓으셨다. 8시 정각이면 교문 지도하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셨다.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고, 나보다 더 키 크고 힘센 상대와 싸워 이긴 사람의 무게감으로 교문을 지키시니 등교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지켜보시는 학부모들 모두 복장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지 않았을까? 작년 한 해 우리 학교의 평안과 안정감은 다 교감선생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분과 이별하느라 여러 번 저녁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헤어진다는 허전함이 조금씩 옅어지도록.

난 무심하게 무던하게 이 쓸쓸함도 곧 이겨낼 것이다. 궂은 비에 동백이 지금은 꽃을 떨구고 있지만, 또 3월이 되면 햇빛 받으며 다시 붉은 꽃을 피워내겠지. 새 학기, 신입생 귀여운 아이들이 저 황량한 운동장을 시끌벅적 활기로 채워 주겠지. 새내기 선생님들도 교실 안팎에서 그동안 벼려왔던 가르침의 기량을 목청 높여 씩씩하게 펼쳐 나가겠지. 기대된다.

그렇지만 입학식에서 묵묵하게 지켜봐 주시다가 슬그머니 옆으로 와서 ‘역시, 우리 교장선생님 최고이십니다!’ 해 주시던 교감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가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