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사이렌(Siren)이 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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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사이렌(Siren)이 또 울린다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4. 02.22(목) 13:35
정상연 교수
필자가 가끔 들리는 동네 커피숍이 있는데 그곳의 로고가 사이렌(Siren)이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사이렌은 절정(絶頂)의 노래 실력과 절대적인 미모의 인어공주로 알려져 있다. 선박이 섬 가까이에 다가오면 매혹적인 노래로 그들을 홀려 바다 깊숙이 끌어들인다. 사이렌의 노래는 한 번 들으면 결단코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수많은 뱃사람은 바닷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이렌은 기원전 700여 년에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Odysseia)’에도 등장한다. 오디세우스(Odyssey)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향길에 오르지만 거센 물살과 바위로 둘러싸인 섬들을 지날 때 사이렌들의 집요한 유혹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은 선원들의 지혜로 매우 급했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신화 속 사이렌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면서 유혹에 흔들리는 인간의 영원한 투쟁을 반영한다. 사이렌들의 강한 유혹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가끔 홀릭(holic) 됐다는 표현을 쓴다. 중독되었다는 뜻이다. 요즘 뉴스나 매스컴에서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면 마약과 관련된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약물 중독뿐만 아니라 과도한 인터넷 게임과 도박, 스마트폰, 음란물 등도 그 궤를 같이하면서 우리 가정과 지역사회에 크나큰 위협이 되고 있다.

문제는 위의 소재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아무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꾸며진다는 것이다. 또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조차 힘든 사건 사고들을 서로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작금의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올바른 상식 범위와 법적 기준마저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사건 사고들이 무의식중에 보편화 되고 상호 작용하면서 옳고 그름의 기준마저 무뎌지는 것이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정치인들의 눈꼴사나운 탈법과 부정행위를 시작으로 몇몇 사회지도층의 빗나간 처사와 불공정 문제들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중독된 것이다. 도덕(道德)의 기준이 지난 시간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마음에는 동심이, 어른들에게는 너그러움과 자애로움이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 물질에 길들어진 세태는 쉽게 사그라들진 않을 것만 같다. 어쩌면 그냥 이대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 인식의 발로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대안들이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다. 양심에서 올려오는 목소리를 마음에 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삶의 가치와 품위를 지키기 위한 실천들이 일상에 옮겨지고 있음이다. 품격있는 주체자로서의 나를 내보이기 위한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에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가기 위한 주권자로서 권리도 그렇고, 내가 맡은 또는 해야 할 자기만의 의무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기본이 되는 사소한 행위, 이러한 작은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예술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은 각각 다른 감동의 수치로 드러나고 그 아름다움에 홀릭되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가끔 ‘아름다운 노래에 홀렸다.’라는 표현을 쓴다. 멜로디를 비롯한 가사 말에 내포된 그 무엇인가에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다.

지금부터 사람만이 가능한, 존엄에서 묻어나는 향기와 예술적 행위에 중독되어 보자. 마치 사이렌에 홀린 것처럼. 예술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경고의 사이렌이 아닌 기쁨이 메아리로 넘치도록 하자. 품격과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는 예술을 즐기고 누려보자. 오늘의 내가 내일의 문화적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함께 마음을 다져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