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심명자>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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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심명자>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이사장
  • 입력 : 2024. 01.16(화) 13:34
심명자 이사장
살아있는 모든 것은 늘 지금을 살아간다. 1~2분이 지나면 모두 과거가 되고, 다가오는 것은 곧 지금이 된다. 이것이 살아가는 것을 시간여행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여행의 이유’(문학동네,2019)의 김영하작가는 이 책에 여행과 삶이 유사한 점을 기술했다. 우선 여행이나 삶은 추구함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호메루스의 ‘오딧세이아’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계획과 다른 일들이 생기고 지연되는 일도 있지만 본인들이 궁금했던 것을 알아내고, 더불어 다른 것까지 얻은 것이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 그 추구함이 이끄는 것이 삶이고 여행이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고, 헤쳐 나가야 할 일도 생긴다. 어느 순간에 평생 함께 갈 인연을 맺기도 하고, 슬픈 이별도 겪는다. 이런 하나하나가 삶의 시간여행이다.

작가가 두 번째로 제시한 여행의 의미는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 집에서 나선다. 계획한 곳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돌아오는 곳은 집이다. 삶도 비슷하다. 우리는 그 어딘가에서 왔다.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고, 고유의 생명을 부여받았다. 각자가 주어진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누구나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이승으로 여행 왔다가 저승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이는 이승에 머무는 기간 동안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할 것인가의 질문이 따른다. 영화 ‘서울의 봄’의 주인공 전두광처럼 탐욕스럽고 괴물같은 시간을 살 것인지, 공익을 우선으로 하고 정의와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 이태신 같은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의 여행 목적에 따라 갈린다.

마지막으로 여행의 의미로 제시한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이다. 유럽 여행을 갈라치면 몇 달 전부터 여행 코스를 짜고, 묵을 곳을 찾고, 비행기 예약을 하고,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변수가 생겨 계획과는 다른 여행을 하기 일쑤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뭔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지만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고꾸라지기도 한다. 어쩔 땐 운이 따라 줘서 뜻하지 않게 소망을 이루기도 한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 물 건너가기도 하고,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계획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돌아올 때쯤에는 흡족해하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다 보면 삶의 마무리엔 자신의 길이 모두 정리된다.

그림책 ‘우리가 여행하는 법’(지은이 마리 꼬드, 다그림책출판사, 2023)에서는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인물의 삶과 여행하는 방식이 비교된다. 외향형인 페넬로페는 여행지를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경험을 하며, 다양한 형태의 만남을 이룬다. 반면, 내향형인 필레아스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책이나 화면을 통해서 세상을 만난다. 페넬로페를 통해 들은 것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고 혼자 있는 것이 그저 좋을 뿐이다. 다만, 친구인 페넬로페와 따로 있는 것을 원치 않아 페넬로페의 여행 가방 안에 몰래 숨어들어서 동행한다. 이 그림책을 보면 여행의 진정한 의미,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된다. 외향적이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페넬로페는 처음에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집 안에 있는 필레아스는 사람들과 접함이 없어서인지 옷을 입지 않고 있다. 산, 강, 바다, 사막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페넬로페의 마지막 모습은 ‘이제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서 침대에 눕는다. 이때는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이와 반대로 지금까지 집 안에만 있던 필레아스는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예매하러 적극적으로 밖에 나간다. 여행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동기를 제공한 셈이다.

시간여행이든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든 여기에 수반되는 것은 시간의 경과이다. 보고 느낌에 따라 성찰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게 하고, 너무나 어려웠던 것도 도전하게 한다.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다른 것일까?’ ‘왜 과거는 떠올릴 수 있고 미래는 떠올릴 수 없을까?….’ 라는 수많은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지은이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출판사, 2019)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현실에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세상일은 아주 복잡하고,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의 작은 일부인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세상을 본 것일 뿐이다고 했다.

시간여행에서 누구나 매일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다. 비록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의 연속성에서 타인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관용과, 상대에 대한 존중함과 자긍심을 잃지 않는다면 제법 괜찮은 삶의 여행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