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5일 고 전두환씨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뉴시스. |
7일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전두환은 쿠데타로 정권을 이뤘기 때문에 사후에도 그의 직함을 비롯한 모든 예우를 박탈당한 상황이다. 국민들 여론 역시 마찬가지”라며 “이제 와서 다시 그런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양 회장은 “국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영방송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개탄스럽다”며 “전두환에 ‘전 대통령’ 호칭을 붙이는 건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관련해 유족회 차원에서 성명서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대수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총괄위원장은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와 동떨어진 처사”라며 “언론 장악 기조에서 이뤄진 일련의 행위가 아닐까 본다. 일선 기자들의 생각각과도 상반된 방침을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아직 진상규명과 전두환 추징금 환수 등 미해결 과제들이 많은데, 이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전두환을 미화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일 KBS ‘뉴스9’ 앵커는 단신을 보도하며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땅 매각 대금 55억원이 국고로 환수됩니다”라고 멘트했다. 그동안 KBS는 ‘전두환씨’라고 칭해왔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바꿔 불렀다.
이는 4일 오후 KBS 보도국의 뉴스 책임자인 김성진 통합뉴스룸 방송뉴스주간이 “전두환의 호칭은 앞으로 ‘씨’가 아니라 ‘전 대통령’으로 통일해달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한 데에 따른 것.
김 주간은 전날 사내 보도 정보(기사 작성 시스템)에 전체 부서 공지로 고인의 관련 호칭을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통일하라고 지시했다. 이 공지에서 “‘전 대통령’은 존칭이 아니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에 대한 지칭일 뿐”이라며 “김일성을 주석으로 부르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부르고 김정은도 국무위원장으로 부르는데 전두환만 씨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KBS는 2018년 여름 무렵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후 2020년 보도본부 기자들 사이 논의를 거쳐 ‘전두환 씨’ 호칭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간은 평기자 시절이던 2021년에도 사내 게시판에 전두환 호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김 주간은 사내 게시판에 “전두환씨,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일성 주석, 이순자씨, 이설주 여사. 우리 뉴스에서 쓰는 호칭입니다. 이런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책임있는 분의 답변을 요청드립니다”라고 쓴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호칭 변경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5일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 브이로그로 전락한 박민 사장의 KBS가 ‘땡윤뉴스’로도 부족해 5공 시절 ‘땡전뉴스’를 틀겠다고 한다”며 “전씨는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이며 1997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가내란죄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박탈당한 자”라며 비판했다.
광주지역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송갑석 의원은 “호칭은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담고 있다”며 “대통령을 지냈다는 것이 국민을 학살한 사실보다 우선하는 가치인가. 수신료 가치를 증명해야 할 공영방송이 극우의 가치를 좇고 있다”고 질타했다.
조오섭 의원도 “KBS가 윤 대통령의 ‘하청방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로 되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며 “민감한 인물의 호칭을 어떻게 기재할 것이냐는 기자의 편집권 문제로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는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구성원 간 논의와 합의 없이 권력이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리다니 다시 서울은 여전히 ‘겨울’”이라고 말했다.
송민섭·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