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천년사 홈페이지 영상 캡쳐 |
전남도의회를 찾은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들 간담회-편찬위 제공 |
전라도 천년사 경과와 공방
공방은 2023년 7월 16일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대로, ‘식민사학’이라는 공격과 ‘고증 거쳤다’는 해명이 중심을 이루는 듯하다. 여러 차례의 설명회 및 토론회에서 이 주장들이 반복되었다. 몇 개만 거론해보면, 2023년 5월 31일 가야사학회 외 22개 사학회에서, ‘사이비 역사의 선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입장’이라는 성명서가 나오고, 같은 날 경향신문에, ‘<전라도천년사> 비난, 매도는 사이비 역사의 선동’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6월 8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외 16개의 연구소 등의 이름으로, ‘전라도천년사에 가하는 맹목적인 식민팔이식 비난을 중단하라’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2023년 6월 28일, “전라도천년사 편찬위, 문제 제기 단체와 제3차 공개토론”에 대한 편찬위의 보도자료는, ‘편찬위, <일본서기> 지명 중 상당수는 백제의 마한 및 가야지역 확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백제인의 기록임을 강조’, ‘한일 역사학계가 공식적으로 폐기한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을 도민 연대측이 한국 역사학계에 덮어씌우는 행위는 일본 극우를 돕는 반민족적 행위’, ‘도민 연대측이 따르는 이덕일 소장의 견해 중, 전남·나주를 왜의 본산지라 한 주장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응한 연대의 항의와 농성, 반박문들도 이어졌지만 여기 다 열거할 수도 없고 내가 다 알지도 못한다. 김상윤씨가 총 17회 동안 ‘<전라도천년사>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연재한 내용이 논쟁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너무 편협하게 보고 호남인 나아가 한국인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주장이다. 사이비 역사학자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 편찬위가 일본서기를 인용한 정도를 넘어서 고대사를 왜곡했다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여기에는 이른바 강단사학에 대한 권위 의식 비판과 더불어 식민사학의 앞잡이라고 하는 선험적 불신이 있다. 연대는 두 도지사와 광주시장을 압박하며 출판물 폐기를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해왔다. 논박을 주고받으며 해명성 보도를 이어가던 편찬위는 연말이 가까울수록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듯하다. 문제는 이 공방이 해를 넘겨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점에 있다. 이미 쓴 글이니 자기 손을 떠났다는 게 필진들의 입장인 듯하고, 기필코 이 책의 배부를 막아야겠다는 게 연대측의 입장인 듯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 지역을 토대 삼아 연구해 온 이들도, 이 지역의 어른이라는 이들도 애써 회피하는 형국이다. 곤혹스럽지만 누군가 방안을 마련하고 중재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공은 이미 전남북도지사와 광주시장에게 넘겨졌다. 불편하지만 일종의 정치적 수순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다. 발주 당사자인 전남북 도지사, 광주시장에게 호소한다. 지역의 소중한 힘들이 허투루 소진되지 않도록 당장 방안을 마련하라.
남도인문학팁
‘전라도천년사 논쟁’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이강래 교수는 지난 5월 19일 <전남매일> 기고를 통해, 구체적 사안별로 양측의 학술적 견해를 비교할 수 있는 장기적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답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편찬위에서 낸 2023년 5월 22일 보도자료에서도, 올바른 지역사 이해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라고 하였다. 이후 양측의 감정을 건드리는 언사들이 오가면서 극명한 대립을 이루게 되었지만, 아직 이 견해들은 유효하다. 편찬위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동안, 연대측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농성을 계속하는 등 천년사 폐기를 주장해왔다. 연로한 연대측 인사들이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도청 및 시청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무슨 일 날까 싶어 조마조마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금 상황으로 책이 배부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양측 모두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곤혹스러워 물러서는 것은 책임회피요 역사에 대한 방기다. 정도 천년을 기념하고자 시작한 충정과 에너지가 이런 방식으로 소진되게 내 버려둬서야 쓸 일인가. 전제해둬야 할 일이 있다. 역사서술을 기왕의 연구자들에 한정하여 논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방을 넘어 지역을 말하고, 구술사가 역사서술의 중요한 장르로 부상한 것들이 그 사례다. 혹여 역사서술이 역사 전문가 만의 몫이라거나, 기왕의 학계를 모조리 식민사학으로 내모는 주장이 있다면 이 기회에 새김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역 인구의 변화로 보면, 점차 다문화권 역사까지 포섭하는 역사서술이 보편화 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번 논쟁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본다. 장차 전국 아니 세계로 파급될 역사 기술의 선진 모델을 마련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편찬위와 연대측이 상호 머리를 맞대는 ‘전라도천년사 대책위원회’ 정도의 기구를 마련하라. 여기서 향후 1년간, 배부 혹은 폐기, 수정 보완 혹은 수정 집필 등의 논의를 수행할 수 있게 하고 편찬위와 연대는 이 기구의 결정을 존중하라. 비용은 물론 전남북도지사, 광주시장이 마련하라. 나라가 혼란할 때마다 떨쳐 일어나 균형을 잡고 미래를 견인해왔던 땅 남도에서, 그 충정의 에너지들이 이리 소모되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정도 천년 전라도의 이번 논란이 새 시대를 열어젖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