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나만의 스타일, 새로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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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전일광장·정상연>나만의 스타일, 새로운 나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3. 09.25(월) 12:37
정상연 교수
의자에 앉으면 “특별히 하실 말씀” 이렇게 물으시고 필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은 가벼운 미소로 대신한다. 뒤통수 뒤로는 신문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본인들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 작은 이발관의 모습이다. 일흔이 넘은 어르신이 정성스레 손님의 머리를 다듬고 그의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45년 동안 수염을 깎는 일에 수고를 다 하는 인상 좋은 안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발관의 손님들은 약 30에서 40분이 지나면 곰이 사람으로 탈바꿈하듯이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된다. 손님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는 일에 평생을 다한 장인의 손길은 조금 전에 나를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거울에 비친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모양을 다시 매만지며 본인만의 스타일에 흡족해한다. 그리고 “건강히 지내십시오.” 인사를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스타일(style)이란 단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 가운데 가장 범용(汎用)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누구의 머리 스타일이 어쩌네, 올가을에는 이런저런 스타일의 청바지가 유행이라는 등 겉으로 드러난 형태나 유형을 뜻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스타일 구겼다.’ 또는 ‘스타일 구길 뻔했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여기서 스타일은 체면에 손상을 입었다. 품위에 손상이 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있다. 그 스타일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수단이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즉 한 개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스타일을 안다는 것. 또는 있다는 것은 나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타자와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독특함이다.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매스컴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로 넘쳐난다. 나라 안팎으로도 조용할 날이 없다. 특히 작금의 한국 사회는 극심한 이데올로기(ideology)와 정치적인 첨예한 갈등으로 양분되고 있다. 프로파간다(propaganda)식 접근법에는 내가 없는 것이다. 혼돈의 연속이다.

1300년 전, 단테는 혼돈의 시간에 필요한 새로운 이정표를 <신곡>(神曲)을 통해 제시했다. 지옥과 천국뿐 만아니라 혼돈의 시간을 연옥(Purgatorio)이라는 공간에 그려냈고 그 연옥은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지금이 연옥의 연속인 것이다.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꼭 거쳐야 하는 장소이자 통로이다. ‘푸르가토리오’를 흔히 정화(淨化)로 번역한다. 즉 다시 거듭나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며 노력이다. 새로운 나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며 나의 개성을, 나의 스타일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일정 형식과 과정이 필요로 하다. 자기 연민과 남을 배려하는 측은지심 그리고 문화인으로 살기 위한 스스로 변화 등을 예로들 수 있다. 이는 단테가 <신곡>에서 언급한 무절제와 폭력, 그리고 탐욕 등을 우리의 몸에서 제거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전제는 나의 본질 즉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각자의 스타일은 결국 인간이라는 본질로 귀착된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 즉 사람을 생각하는 태도, 생명에 대한 경외심,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봉사와 헌신 등 이러한 내용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본 조건이자 기초라 할 수 있겠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인정하는 지성 사회, 조화롭고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스타일’과 ‘품위’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