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의정단상·강수훈>영혼 없는 현수막 정치, 이대로 둘 수 없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의정단상·강수훈>영혼 없는 현수막 정치, 이대로 둘 수 없다!
강수훈 광주시의원
  • 입력 : 2023. 08.17(목) 17:00
강수훈 광주시의원
수량과 장소의 제한 없이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게 한 옥외광고물법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 중이다. 게첨 기간만 15일로 제한했을 뿐, 별도의 허가나 신고가 필요 없다. 얼마든지 어디든지 게시할 수 있게 됐다. 법안 발의 당시부터 현수막 난립의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법안은 통과됐다. 법 시행 중인 지금에 와서 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며,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켰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을 위해서였을까? 관심은 잠시일 뿐, 되려 정치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법 시행 전 3개월 동안 6415건이었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1만4197건으로 2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곳곳에서 현수막에 걸려 넘어지고,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고,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 전도로 차량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정당 현수막 덕분에 안전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 및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할 목적이었을까? 물론 여야 정당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런데 각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거리 곳곳에 내건 현수막 내용을 보면 귀한 정보도 없고, 기쁜 정책도 없고, 빛나는 비전도 없고, 특별한 감동도 없다. 서로에 대한 거친 표현과 원색적 비난으로 네거티브 구호 일색이다.

심지어 게시한 장소를 보면 예의도 없다. 아끼고 보존해야 할 보호수를 현수막 게시대로 전락시키고 있고, 교통안전과 보행 안전을 유지해야 할 횡단 구역 내에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정당 정치인들이 ‘영혼 없는 현수막 정치’로 도시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영혼 없는 정당 현수막’은 정치인들의 특권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민낯이기도 하다. 정당 활동 보장을 이유로 마음대로 장소와 수량 상관없이 정당 현수막을 내걸 수 있게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사전 허가나 신고를 거쳐 지정 게시대에만 게첨해야한다. 가게 홍보를 위해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관할 지자체에 사전 신청을 하는 번거로움을 경험한 자영업자들, 동네 지정게시대에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 수수료를 냈거나 이를 어겼다는 이유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낸 경험이 있는 소상공인 처지에서는 특권도 이런 특권이 없다. 시민의 관점에서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다.

환경 관련 문제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작된 현수막은 12만8000여 매라고 한다. 이를 한 줄로 이으면 서울에서 도쿄까지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하는데 작금의 상황과 내년 총선까지 난립할 현수막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현수막은 합성섬유와 특수용액 등으로 제작돼 재활용마저 어렵다. 대부분 소각하거나 매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날로 증가하는 폐현수막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 실로 걱정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해 불편을 초래한다면 과감히 바꿔내야 한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옥외광고물법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 광주시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 차원에서 정당 현수막에 제동을 걸 조례안이 발의되고 있다. 20~30대 변호사 모임인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은 옥외광고물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국회의 몫이다. 옥외광고물법 시행 이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도출되고 있지만, 관련 법안 개정은 뒷전이다. 참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더 이상 시민의 삶과 안전에 괴리된 정치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 지금이 정당 현수막 문제를 해결할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