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현진 광주문인협회 이사·수필가·시인 |
3개월에 한 번씩 수술한 병원에 입원해 상태를 점검하고 수술부위를 진료하는데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모든 상태가 아주 좋고 건강하다고 판정하면 하늘을 날 듯 행복감이 솟구치는데 이때의 나의 행복지수는 100을 훨씬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머리가 그리 명석하지 못한 탓에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내려지는 해답들은 개운하지가 않다.
작은 사례를 들어 다른 사람도 행복에 공감 하련지 묻고 싶다. 어느 해 성당 신부님 강론 중에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행복에 대한 개념은 사람마다 생각하기가 모두 다를 것이다. 목포 유달산 부근 어느 성당에서 사목을 하신 친구 신부님께서 직접 체험하신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신부님은 교우들이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여가 선용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매일같이 석양 무렵 동네 곳곳을 살폈다고 한다. 그 중에 유달산 꼭대기 산동네의 한 가정은 저녁 늦게까지 두 부부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박장대소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그 시간에 반복된 즐거움이고 행복의 분위기였다.
연유가 궁금한 신부님께서는 마침 교우 집이고 해서 직접 집을 방문했다. 돌을 갓 넘겼을까 말까한 어린 아들의 손을 두 부부가 맞잡고 ‘선마 선마…섯다 섯다’를 연발하는 부부. 자식 사랑에 하루의 고달픔을 잊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 부부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행복이라는 게 신부님의 말씀이었다. 매일 같이 연탄을 배달하면서도 일이 끝나면 피곤함을 모르고 매일 같이 자식의 재롱에 빠져 드는 그들 부부야말로 그들만이 간직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행복이 ‘하나 더 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등식처럼 명확하고도 만인이 인정할 어떤 기준이 있다면 사람들은 ‘둘’이란 숫자에 도달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는 정답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이 맞출 수 있는 정답을 위해 노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유치환 시인은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에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네”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우체국 창문가에 앉아 3년간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는 시인. 그에게 사랑한 이가 있고 그 또한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는 의미일 게다.
최근 주변에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소소하더라도 확실한 행복’, ‘소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가 있어 행복한 사람, 진솔한 우정이 있어 행복한 사람, 권력과 명예가 있어 행복한 사람, 물질적 풍요가 있어 행복한 사람 등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지를 따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그 행복의 가치 또한 제각기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만족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도 같이 행복해 하는 행복이다. 그야말로 작더라도 확실한 행복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내게 있어서의 행복이란 어떠한 것일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곤란한 까닭에 나의 육체와 정신이 존재하고 내 작은 삶이 존재 한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글 쓰고, 나의 수고로 나와 내 이웃이 편안해지고 삶과 웃음과 희망과 용기를 얻는 것이라고. 행복은 결코 수치화 되고 공식화 될 수 있는 수학 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이 차라리 다행스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