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광주 서구의 한 만화방에 에어컨 대신 수십대의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소파 위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다. |
낮 최고기온 32℃를 찍었던 지난 21일 광주 서구의 한 만화방.
최근 유행하고 있는 깔끔한 인테리어, 정갈한 음식과 음료,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만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닌 이곳은 오래된 옛 스타일의 만화방이다. 광주에 몇군데 남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끈한 열기와 함께 벽을 따라 낡은 책장 수십개가 쭉 늘어선 이곳에는 에어컨 대신 수십대의 선풍기가 ‘탈탈탈’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날까지 광주 전역에 장맛비가 쏟아진 탓에 실내가 습해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소파 위에 누워 만화책을 보는 사람들도 선풍기 바람이 부족했는지 연신 부채질을 했다.
선풍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등을 기대 열을 식히지만 그래도 더운건 마찬가지다. 만화방이 지하에 위치해 열기를 온전히 내보내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빗물은 새어 들어왔다. 역대급 장맛비에 차단막을 설치해도 만화방까지 흘러온 빗물은 실내를 더욱 습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화방은 후끈한 열기와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70대 이웅철(가명)씨도 있었다.
이씨는 일년째 이곳을 집 삼아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낮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 관공서, 무더위 쉼터 등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이곳에 와서 잠을 청한다. 비록 몸을 구겨넣어야 겨우 누울 수 있을만큼 좁은 소파 위지만, 하루 5000원이면 숙박을 해결할 수 있어 얼추 수지타산에 맞는다.
![]() 만화방 화장실 입구에 ‘빨래 가능’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있다. |
그는 “여기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에어컨은 더울 때만 튼다”며 “대신 자리 당 선풍기가 한대 씩 있어서 버틸만 하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종종 밤에도 에어컨을 튼다. 실내 온도, 습도가 높으면 책이 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 여인숙과 여관, 하루 1만원씩 내는 찜질방에서 생활했다. 그마저도 마련하지 못해 결국 거리 노숙으로 나앉았다. 바깥에서 일년여간 떠돌다가 ‘이러다 객사하겠다’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
그는 “밥은 무료급식소에서 먹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라면으로 때우기도 한다”며 “라면을 먹으면 2시간이 무료다. 더워서 찾았지만 만화책도 보고 쉴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이씨처럼 숙식을 해결하는 이들이 10여명 정도 있었다.
대부분 같은 노숙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숙박 외에도 이곳에서 씻고, 옷 빨래도 한다. 1만2000원인 종일권을 끊으면 만화방 안에 있는 세탁실과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제와 몸을 씻을 수 있는 비누도 함께 지급된다. 한달 정액권을 끊으면 10만원대로 더 저렴하기까지 하다.
이름만 만화방일뿐 사실상 노숙인들의 쉼터인 셈이다.
물론 더위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전기세가 가파르게 오른 탓에 에어컨은 가장 더운 오후 시간대에 잠깐 튼다.
만화방 주인 김모씨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계속 에어컨을 틀었다. 전기세가 거의 두배 가까이 나오면서 최근부터 줄이기 시작했다”며 “우리도 안올리고 싶은데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이번달부터는 사용료까지 올렸다”고 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