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산 선유도 망주봉-사진 이윤선 |
고군산 선유도 오룡당 내부 나주 임씨 신위-사진 이윤선 |
고군산 선유도 오룡묘 내부 신도-사진 이윤선 |
고군산 선유도 오룡묘 표지판-사진 이윤선 |
고군산 선유도 오룡묘(앞쪽), 오룡당(뒤쪽)-사진 이윤선 |
오룡당(五龍堂)의 국가 및 민간의례와 대중국 항로
민간에서 진행하였던 별신제(別神祭)는 선주들이 마련한 경비로 운영되었던 것 같다. 사흘 동안 연속했으며 무당과 남사당패 등의 연희패들이 초청되었다. 제의 때마다 반드시 소 한 마리를 바치는 고군산군도의 가장 큰 축제로 보고되고 있다. 관련한 의례로 ‘조구(조기)심리’가 있다. 주지하듯이 서해안의 대표 어종은 조기이고, 이 문화권에서는 제사에 반드시 조기를 바친다. 상대적으로 동해안은 명태다. 경칩사리, 춘분사리, 한식사리(이를 ‘초사리’라 한다)에 조기잡이를 나가서 첫 번째 잡은 조기 중 가장 큰 것으로 일곱 마리 정도 골라 오룡당에 바치는 의례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남도 내륙(충청, 경상, 전라 삼남 지방)에서 행했던 ‘올벼심리’와 맥락이 같다. 이에 관해서는 백중 즈음에 따로 풀어 소개하겠다. 오룡당에 전하는 이야기가 서로 다르고 대상 신격도 서로 다르다. 시대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신격들이 서남해안 무속 현장의 일반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무당이 주재하거나 참여하는 의례였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주신격으로 거론되는 임씨 아가씨는 훗날에는 임씨 할머니로 격상된다. 대개 우리나라의 마을 제사에 나타나는 당산할머니라는 호명은 실제 할머니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여성 신격에 대한 존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 다산(多産)과 풍어(豐漁) 등의 기복 함의가 들어 있다. 망주대감, 팔부신장, 수문장 등은 고려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적 성격이 중심이었다.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이 선유도까지 와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앞쪽에 중건되어있는 오룡묘는 중국의 사신들이 예를 갖추던 곳이었다. 뒤쪽의 오룡당은 고려 이후 민간의례가 활성화되면서 스토리텔링된 장소였다. 이게 언제부터인가 오룡당으로 합해지고 민간중심의 당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오룡묘에 청기와 전설도 있다. “나라에서 대궐을 짓는데 청색의 기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청기와를 싣고 가다가 풍랑이 일어 이곳 선유도에 머물게 되었다. 혹은 마파람을 뒤쪽에서부터 받아 가는데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버전도 있다. 몇 날 며칠 풍랑이 일어 배가 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사공(오늘날의 선장)의 꿈에 오룡묘 산신이 나타나 청기와 석 장, 혹은 청기와 1,000장을 바치고 떠나라 했다. 잠에서 깬 뒤 꿈에서 일러준 대로 하였더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서 수도(개경)로 떠나게 되었다.” 이 설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비교적 명백하다. 고군산군도가 대중국 항로라는 점, 망주봉을 중심으로 하는 선유도가 그 항로의 기점이자 관문이라는 점 말이다. 훗날 개작되었겠지만, 청기와는 마치 지금의 청와대처럼 고려나 조선을 대표하는 혹은 그 관문이라는 맥락을 상징한다. 지면상 생략하지만, 고대의 이야기를 넘어 동아시아의 물골과 바닷길이 말해주는 것들은 사실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앞선 임씨 처녀설화를 중국의 마조 설화나 다른 이야기에 비교해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국 항로뿐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가 어려움에 봉착한 지금 오히려 고군산의 설화들을 주목하고 장차 재개될 대중국 교류의 물꼬를 인문학적으로 먼저 터보고 싶은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연육되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새만금과 고군산군도의 대중국 활성화를 위해서 말이다. 서긍이 900년 전 고려를 왕래하며 고군산을 거쳤듯이, 누군가는 고군산의 설화를 들어 중국과 비교해보고 장차 재개될 교류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남도인문학팁
중국 ‘마조(媽祖)’ 임묵(林黙)과 오룡당 임씨(林氏) 할머니는 관련 없을까?
망주봉 오룡묘가 중국 사신들이 예를 갖추는 성소였다고 한다면 그 대상 신격이 무엇이었을까? 임씨 처녀설화가 만들어지고 오룡묘 뒤쪽 당집에 모셔지게 된 내력에 대한 하나의 상상이랄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중국의 마조(媽祖) 신화와 화교들의 활동이다. 우리식으로 풀어 말하면 마씨(媽氏) 할머니다. 임씨 할머니는 중국식으로 임조(林祖)라고나 할까. 사전적으로는 중국의 남부와 중부의 바닷가 일대 및 대만 지방의 민간에서 믿고 있는 바다의 여신이다. 하지만 복건성 미주섬(湄洲嶼)에서 태어났던 임묵(林黙)이라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며 실제 아시아뿐만 아니라 구미, 아프리카까지 진출해있는 화교 자본의 선봉이기도 하다. 마조의 탄생은 960년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가 세계로 진출할 때 교회를 앞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교자본들은 마조를 앞세워 무역, 금융, 경제, 교육 등을 총괄하는 커뮤니티를 강화해왔다. 지금은 중국보다 대만이 훨씬 활성화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 마조궁(媽祖宮)만 5,000여 개가 넘는다. 마조를 천후, 천상성모, 천비, 미주낭마, 천비낭낭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중 일부는 1123년 북송 조정이 마조에게 하사한 칭호이다. 중국의 황제가 각종 신(神)들에게 벼슬을 내리는 맥락은 지면을 따로 하여 소개한다. 마조는 해상 수호신이라는 점에서 불교의 관음(觀音)신앙과 흡사하다. 실존 인물임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선유도의 임씨 처녀를 닮았다. 어쩌면 나주 임씨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고려 왕조 대장군 임비(林庇)를 고군산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오룡당 신위에 나주임씨를 배향한 것이나 마조 임묵의 이름 등이 예사롭지 않으니 분석결과를 다듬어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국 항로로 선유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고군산군도 선유도의 망주봉 기슭 임씨 처자와 복건성 및 대만해협의 임묵(林黙) 처자를 우선 만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