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현진 수필가 |
먼저 대나무골 테마공원으로 향했다. 처음 가는 곳이다.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에 8만여㎡로 조성된 대숲이다. 담양읍에서 순창군 쪽으로 6㎞가량 떨어진 곳에 비밀의 화원처럼 숨겨져 있다. 언론인이자 사진작가였던 고(故)신복진 씨가 고향 땅을 사들인 뒤 20여 년 동안 대나무를 심고 가꿨다. 개인적으로도 같은 그룹사에서 근무했던 인연으로 평소에 존경한 선배다. 30년, 40년 자란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의 호젓함도 일품이다. 대숲과 연결된 소나무 숲길에서는 송림욕도 즐길 수 있다. 대숲 사이로 난 산책길도 멋스럽다. 길에 대 이파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대숲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솔향도 진하게 묻어난다. 솔숲에 춘란도 여기저기 보인다. 죽림욕과 송림욕을 번갈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 옆 정자도 운치가 있고 자판기의 음료커피에 땀을 식히는 멋과 맛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대숲과 솔숲, 다시 대숲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풍광 덕분에 일찍부터 영화나 광고 촬영지로 많이 이용됐다. ‘여름향기’나 ‘청풍명월’ ‘흑수선’ ‘전설의 고향’ 등을 여기서 찍었다. 눈과 귀가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며 마음까지 청아해 진다. 죽(竹)여 주는 대밭이다.
대나무 숲 테마공원에서 나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걸었다. 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어 시원스럽다. 흡사 숲속의 동굴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파리를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초록물이 묻어날 것 같다. 아스콘 포장을 걷어내고 흙을 깐 것도 반갑다. 자전거도 다니지 않아 맘 놓고 거닐 수 있다. 마음의 찌든 때와 눈의 피로를 씻기에 그만이다. 이곳은 산림청이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환경보전을 위해 지난해부터 1000원씩 유료화 했음에도 올해 6월까지 16만명 넘게 다녀갔다고 한다. 노점에서 식사대용으로 먹는 손 찐빵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관방제림 숲길로 이어진다. 관방제림은 풍수피해를 막기 위해 천변에 늘어선 고목들의 고즈넉한 모습은 메타세쿼이아와는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조선인조 28년인 1648년 담양 부사 성이성이 담양천 북쪽천변에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시초다. 담양 읍내를 가로지르는 1.2㎞ 구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있다. 천변 숲길은 사철 아름답다. 봄엔 신록으로, 가을이면 낙엽으로, 겨울에는 적막감 도는 호젓함으로 유혹한다. 이맘때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선사한다.
관방제림에서 죽녹원으로 가서 대숲 길을 걸었다. 지친 삶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는 대숲이다. 너른 땅에 꼿꼿이 선 대숲은 한 여름에도 상쾌하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운수 대통길 등 색다른 이름의 산책로도 정겹다. 대숲에서 뿜어내는 인공 분수의 물줄기도 시원하다. 한 낮의 뙤약볕이 맥을 못추고 사라진다. 기념품 가게에서 부채를 하나 샀다. 요즘처럼 무더울땐 부채는 좋은 길벗이 된다. 부채에도 재밌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여죽이상혼(紙與竹而相婚)” 하니 “생기자왈청풍(生基子曰淸風)”이라. 이는 ‘종이와 대나무가 혼인’을 해서 ‘태어난 자식은 맑은 바람’이다는 말이다.
관방제림 주변 천명에는 이곳의 명물인 막국수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담양의 떡갈비, 대통밥도 유명하지만 멸치 삶은 국물에 칼국수 가락을 말아 먹는 맛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국수 먹기 전에 찐 계란을 먹는 맛도 그만이다. 우리 땅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명품 숲길의 종합세트다. 꿈결처럼 보드랍고 황홀하다. ‘그 대(竹)’ 생각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감미로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