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3주년이 되는 18일 5·18 당시 행방불면된 이창현군의 어머니 김말임씨가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아들의 가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혜인 기자 |
●“내 새끼 잘 있니”
“지금은 50살이나 됐을 거예요. 그래도 제 품에서 떠났을 때 아가였으니까 평생 나한테는 아가죠.”
5·18 기념식이 끝나고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에 위치한 이창현(7)군의 가묘 위에 과일맛 젤리 4통과 샌드위치가 놓여있다. 7살 아이가 좋아할만한 달콤새콤한 간식을 가져왔다는 이군의 어머니 김말임(77)씨는 매년 이날이 되면 빠짐없이 창현이를 보러온다.
김씨는 “어렸을 적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카스텔라 같은 간식도 제대로 못 먹였다. 그것이 한이 돼 아들을 보러올 때 마다 제일 맛있어 보이는 과자나 음식을 가져온다”며 “작년까지도 엄청 울어서 오늘만큼은 울지 않으려 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군은 1980년 5월26일 시위와 항쟁으로 시끌벅적했던 집 밖 세상이 궁금해 현관을 나선 뒤 실종됐다. 이후 27일 상무대로 연행되는 시민들 사이에서 이군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최근 프랑스 사진가 패트릭 쇼벨이 창현이 버스에 오르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기증하면서 묘역 사진도 교체됐다.
●세월호 유가족 “내 아들과 이름 같네요”
이날 또 다른 창현이를 떠나보낸 세월호 유가족도 묘역을 방문하면서 이군 가족과의 애통한 만남이 성사됐다. 단원고 2학년 5반 故 이창현군의 부모인 최순화(65)·이남석(59)씨 부부가 5·18 행불자 이군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최씨는 “세월호 유족단체에서도 종종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데 4~5년 전에 행불자 묘역에서 우리 아이와 같은 이름을 발견하게 됐다”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겪어본 사람이 제일 잘 안다. 특히 행불자 창현군이 정말 어린 나이라 그 안타까움이 배가 돼 꼭 만나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빠! 아빠!” 70대 딸의 눈물
5·18 43주기 기념행사로 국립5·18민주묘지에 일부 유족들의 출입이 통제되자 불편을 겪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를 뵙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경호대에 가로막혀 성을 내며 집에 그냥 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되돌린 윤옥진(72)씨는 출입제한이 풀리자 세 송이의 국화를 손에 쥐고 천천히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윤씨는 아버지의 사진과 묘비가 보이자 “아빠!, 아빠!”를 연신 외쳐대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윤씨의 아버지 윤용관씨는 평소 불의를 보면 참지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5·18 당시 친구의 아들이 시위를 하다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백운동 자택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군인들의 총격에 쇄골이 빠지고, 눈꺼플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등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려 술에 의존하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가 지난 2009년 작고했다.
●“주먹밥 드시고 가세요”
민주묘지 밖에서는 광주 지역 봉사 단체들이 5·18 기념일을 맞아 ‘오월 대표 음식’ 주먹밥 나눔에 한창이었다.
솔잎쉼터봉사단·빛고을사랑·청년봉사단 등 광주시자원봉사센터 소속 약 40명의 봉사단원들은 아침 일찍 민주묘지 민주의문 입구에 모여, 2000인 분의 주먹밥을 준비했다.
홍명준 빛고을청년봉사단원은 “친구들과 함께 뜻깊은 경험하러 왔다. 첫 참여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머님들이 잘 대해주셔서 즐겁게 봉사했다”며 “비가 오는 궂은 날씨다. 좋은 일을 해서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추후 있을 주먹밥 행사에도 또 참여할 계획이다”고 활짝 웃었다.
임광숙 광주시자원봉사센터 총무는 “오월은 광주민에게 일상 아닌가. 시민으로서 ‘주먹밥 만들기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고 전했다.
● "민주주의 가치 지켜야" 분노 목소리
민주묘지 정문에서는 시민단체의 강경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국건설노동조합 등 시민단체는 피켓을 높이 들어 올리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가감 없이 내비쳤다.
'윤석열 퇴진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던 장재환(55)씨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대통령 의전 차량이 지나는 길목으로 뛰어나가기도 했다. 경찰들은 그를 막기 위해 몇 분간의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결국 경찰들에 의해 원래 자리로 돌아간 장씨는 “왜 참아야 하느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묘지 입구에 모인 시위대들은 윤 대통령의 추모사를 함께 시청했다. 길지 않은 추모사 낭독이 끝나자 현장 곳곳에선 ‘헌법 전문 수록 이야기도 없다’, ‘고작 5분이라니 성의없다’며 술렁였다.
이준상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윤 대통령 의전차량이 지나가자 “상직적인 노조활동을 펼친 양회동 열사가 정부의 노조탄압에 분노해 분신했다. 43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며 “80년 오월 억압당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던 것처럼 우리도 똑같다. 이런 형국에서 윤 대통령이 민주주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분노했다.
김혜인·정성현 기자·박소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