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으로 더 열심히 작품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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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상금으로 더 열심히 작품 만들어야죠”
제1회 박서보 예술상 엄정순 작가 수상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발표 영예
코없는 코끼리 통해 사회적 포용성 표현
조선시대 한반도 코끼리서 모티브 얻어
  • 입력 : 2023. 04.09(일) 18:40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제1회 박서보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 엄정순씨.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전혀 예상 못 했는데, 너무 기쁘고요. 상금으로 더 열심히 작품 만들어보렵니다.”

지난 6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제1회 박서보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엄정순(63) 작가가 7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재)광주비엔날레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주제에 부합한 작가에게 부여하는 박서보 예술상 첫 번째 영예의 수상자로 엄정순 작가를 선정했다.

엄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서 ‘코 없는 코끼리(2023)’를 비롯해 총 4개의 조형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다른 전시작과 달리 직접 만져볼 수 있어,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은 대형 코끼리 조형에다 다양한 소재의 천을 감싼 형태인데, 관객들은 천의 질감을 직접 만질 수 있다.

엄 작가는 조선 초기 인도네시아,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는 “당시 사료에 따르면, 조선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는 굉장히 모진 수난을 겪었다”며 “생김새가 특이하고 가축으로서 가치가 없어 당시 사람들은 코끼리는 배척한 것이다. 이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팽배한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첫 코끼리는 조선 태조 때 외교선물 용도로 들어왔다. 코끼리를 놀리던 한 관료가 있었는데, 화가 난 코끼리가 관료를 쳐버리는 사고가 일어났고 코끼리는 전남 장도라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엄 작가는 “한 생태학자는 코끼리를 보고 ‘위대한 종’이라고 했다. 그런데 코끼리는 조선에서 정치적 목적이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며 “실제 코끼리 지능은 인간 4세와 같은데, 코끼리가 살 수 없는 한반도 토양에서 갇힌 채 1년을 떠돌았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끼리는 엄청 먹는데, 가축으로 사용할 수는 없으니, 쓸모없다고 치부되기도 했다”며 “불만이 터져 나와 코끼리 유배를 담당한 지역에서는 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왕이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코끼리는 전라도, 충청도 등지를 떠돌았고 당시 왕이었던 세종은 ‘물과 풀이 좋은 곳에서 굶거나 병들지 못하게 하라’는 마지막 교지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엄 작가는 또 “코끼리를 포용하는 세종의 교지는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다”며 “다문화 가정, 성소수자, 장애인 등 우리가 가진 일부가 없거나, 우리가 가진 일부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사회에서 말이다. 과연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끼리 조형에서 코를 없애버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엄 작가는 “코가 없는 것이 핵심이다. 코끼리에게는 코가 가장 큰 엔진이자 권력이다. 모든 기능이 이곳에 집중돼 있다”며 “절대 없을 수도 없어서도 안 될 대표성을 가진 물건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불변의 신념, 그 뒤에 있는 가치를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작업과정에 함께 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과 촉각, 후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표현했고 엄 작가는 학생들의 표현을 조형물로 재해석해 실제 코끼리 크기로 대형화했다. 사회의 소수자가 함께한 과정은 작품의 의미를 살린다.

엄 작가는 “시각장애 학생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25년째 진행하고 있다”며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미술의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상성을 규정하고 정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밀어버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집단화해 취급한다. 마치 군인처럼 한 공간에 집합시킨다. 그들도 권리와 의무가 있는 국민의 한 사람인데 말이다”며 “어쩌면 내가 만난 시각장애 학생들과 한반도의 첫 코끼리는 오버랩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엄 작가는 “남들은 간혹 시각장애 학생들과의 작업에 대해 사회봉사활동 하냐고 묻는다. 장애인과 어떤 활동을 하면, 복지적 개념으로 치부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나와 감각이 다른 이들과의 작업을 통해 항상 경이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번 박서보 예술상 심사는 프란시스 모리스 테이트 모던 관장,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예프(Carolyn Christov-Bakargiev) 카스텔로 디 리볼리 현대미술관장, 마미 카타오카(Mami Kataoka) 모리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윤재갑 독립큐레이터 등 5인이 맡았다.

박서보 예술상은 지난해 대한민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후학 양성을 위해 100만달러 후원하면서 제정됐다. 올해 시작으로 2042년까지 비엔날레 시즌마다 운영되며 엄 작가에게 상금 10만 달러(약 1억3000만원)와 황금비둘기 상패가 수여됐다.
지난 6일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제1회 박서보 예술상 수상자로 엄정순 작가가 선정됐다.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