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허세와 위선 가득한 ‘불편한 진실’과 맞서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허세와 위선 가득한 ‘불편한 진실’과 맞서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뒤마 피스 ‘춘희’에 공감… 1853년 초연
18세기 파리 사교계, 화려한 무대 연출
‘이기적 통념’ 프랑스 사회 신랄한 비판
당대 풍경·철학·시대정신 작품에 담아내
  • 입력 : 2023. 03.23(목) 13:48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1막 중 비올레타의 거실 파티 장면.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홈페이지
문학에서 비극적 결말을 품은 작품 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이러한 비극적 사랑의 원인은 내부적 요인보다는 신분 차이나 정략적 희생으로 인한 아픔, 빈곤, 그리고 사회의 이중적 윤리관 등이 이유가 된다.

소설 ‘삼총사’로 유명했던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는 사교계의 매력적인 여인, 실존 인물 마리 뒤플레스(Marie Duplessis)의 이야기로 통렬하게 프랑스 사회를 비판한 소설 ‘춘희-La Dame aux camelias’를 썼다.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던진 이 소설은 사회 안에 자리 잡은 이기적 통념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소설을 접한 가극의 왕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자신이 찾던 ‘진실’에 대한 갈망을 풀어줄 세련된 주제로 크게 공감해 오페라로 제작을 결심하게 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2막 중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만남 장면.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홈페이지
베르디는 이 작품에 매료돼 45일 만에 작곡을 완성하고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춘희’를 초연했다.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야 할 뚱뚱한 여주인공 비올레타와 이탈리아 사회와는 다소 이질적이었던 동시대의 프랑스 사교계라는 소재는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었으며 베르디는 이로 인해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래서 재공연 때, 실제 원작의 인물과 같은 날씬한 미인을 여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연출과 시대적 배경도 1700년대로 바꿔서 올리게 됐다. 이러한 변화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거듭나게 된다.

‘La Traviata’를 직역하면 원작의 ‘춘희’ 또는 ‘동백꽃 아가씨’가 아니라 ‘길을 헤매는 여자’란 뜻이다. 우리가 아는 고급 창녀 비올레타를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모든 이가 다루기 꺼리는 동시대의 사건이었으며 베르디는 이를 통해 사회 안에서 통념화된 잘못된 시각을 날카롭게 비난하고 싶은 의도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더 공고화되고 유지하려는 사회의 부조리에 경종을 울리며, 시대의 변화를 이끌려는 예술가 베르디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3막 피날레 중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비올레타.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홈페이지
1700년대 후기 파리가 무대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애수에 넘치는 전주로 막이 오른다. 무대는 파리 사교계에서 밤의 여왕이라 불리는 비올레타의 살롱이 보인다. 사교계 사람들 사이로 가스통 자작의 안내로 알프레도 제르몽이 들어온다. 옆방에서 왈츠가 들려오고 모두 춤을 추러 건너가고 얼마 전부터 폐렴을 앓아 쓰러지려 했던 비올레타를 염려해 알프레도가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는 비올레타의 방종한 생활에 대해 충고하면서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사랑을 고백한다, 비올레타는 순박한 청년의 말을 비웃으며 가슴에 꽂았던 동백꽃을 건네주며 자신은 이런 분방한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비올레타의 가슴에는 알프레도가 남아있었으며 그녀는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파리 교외의 작은 별장에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비올레타가 가진 것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알프레도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고, 그 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찾아온다. 제르몽은 비올레타의 순수한 사랑에 놀라지만, 그녀에게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부탁한다. 굳은 결심을 한 비올레타는 제르몽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청하고 알프레도에게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파리에서 돌아온 알프레도는 새삼스럽게 애정을 확인하고 나가는 비올레타를 보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때 알프레도에게 하인이 편지를 전해준다. 편지를 읽은 알프레도는 절망에 빠져 한탄한다. 이때 아버지 제르몽이 들어와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뿌리치고 비올레타를 오해하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그녀에게 향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3막 피날레 중 비올레타의 의사역을 맡아 공연한 필자(사진 왼쪽). 호남오페라단 재공
비올레타 친구 플로라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화려한 가면무도회가 한창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알프레도가 들어오고, 이어 비올레타가 늙은 친구 남작과 등장하며 불편한 만남이 시작된다. 알프레도는 사람들 앞에서 “사랑에는 졌지만, 도박은 이긴다. 돈을 따고 여자를 사서 고향으로 돌아갈테다”라고 들으라는 듯 비올레타를 조롱하고 손님들이 식당으로 물러난 뒤 힘들어하는 비올레타에게 배신을 추궁한다. 비올레타는 제르몽과의 약속 때문에 늙은 두폴 남작을 사랑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로 그를 단념시키려고 하지만 이 말에 더욱 분노한 알프레도는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불러 비올레타를 조소하고는 도박에서 딴 돈을 그녀에게 던진다. 사람들이 알프레도의 비신사적인 행동을 비난하는 가운데 비올레타가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때 제르몽이 들어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위해 일부러 떠났다고 얘기하면서 아들을 책망한다. 알프레도는 자신이 벌인 추태를 뉘우친다. 한편 비올레타는 저주스럽기만 한 자신의 처지를 애통해한다.

비올레타의 병실로 무대가 바뀌고 등장한 의사는 하녀에게 비올레타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귀띔해준다. 오해를 풀고 진실을 알게 된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등장한다. 비올레타를 안은 알프레도, 두 사람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두 사람은 새로운 행복을 상상해 보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의 가슴 안에서 숨을 거둔다. 죽음을 알리는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와 운명의 사랑을 닫는 듯한 막이 내려오며, 감동한 청중들은 애절한 비극적인 사랑에 눈물지으며 차마 박수를 보내지 못한다. 3초의 시간이 지난 후, 엄청난 환호와 박수 소리와 함께 이 비극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베르디의 승리를 경축한다.

‘라 트라비아타’는 주옥같은 음악으로 가득차 있으며 곁들어진 무희의 멋진 춤과 18세기 프랑스 사교계의 풍경 안에서 관객은 어느새 멋진 파티에 참석한 일원이 된다. 사회가 가지는 편견에 희생됐던 비올레타, 그녀를 통해 사회가 가지는 인간을 향한 가식된 잣대의 결말에 대해 베르디는 비판적 시각으로 예술을 통해 이야기한다. 베르디는 당대의 풍경과 철학,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은 오페라로 감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다. 독자들도 예술 안에 담긴 작은 혁명의 주역이 되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예술의 현장을 찾아라! 그곳에서 당신은 이미 세상을 바꾸어가려는 예술의 동조자로 혁명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추천하는 명곡 : ‘축배의 노래(Brindisi)’<라 트라비아타>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파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부르는 이중창으로 내용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이탈리아어판이라 할 수 있다. (EMI, 지휘 리카르도 무티, 비올레타 역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트, 알프레도 역 알프레도 크라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