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은 다중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
전쟁은 여성, 아동, 장애인과 같은 소외 계층에게 불균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젠더(gender)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많은 남성이 실직 상태가 되어 주로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여성은 잃어버린 가족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역할과 여러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남성 부재 등으로 여성의 무급 돌봄 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에서는 남성이 징집되면서 여성이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여성은 가정과 지역의 인도주의적 필요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일을 한다. 그들은 운전하고, 병원과 지역 주민들에게 약과 음식을 제공하고, 장애인과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성평등에 대한 역행은 현재 진행 중인 위기에서 이미 분명하다. 전쟁은 전체 인구의 실업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여성을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또한 여성과 소녀,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GBV) 생존자, 임산부, 산모들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낮고 생계에 대해 두려움, 인도적 지원의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여성의 약 50%는 전쟁으로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포함해 여성과 소녀의 다양한 필요를 고려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난민 위기 때도 다양한 형태의 성적 및 젠더 기반 폭력을 포함하여 난민 여성에게 다양한 형태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야기했었다.
이처럼 수백만 명의 난민 여성은 건강, 안전, 그리고 생계 및 돌봄과 관련하여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전쟁으로 여성들은 보호되지 않는 비공식 경제 부문으로 계속 빠져들고 있다. 특히 여성 가장 가구의 증가에 따라 빈곤과 사회적 지불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피란 국가에 도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가 있는 여성이며 매우 취약해서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 있다.
국내에도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2021년 12월 기준 남자 6,916명, 여 5,795명이다.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2023년 1월 31일 기준 3,452명이다.
피란 고려인 여성은 피란민과 여성이라는 다중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들은 생계와 자립에 있어서 취약하다. 우크라이나 피란 여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전쟁으로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피란을 왔기 때문에 생계를 위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다. 이들은 한국의 새로운 삶에 전혀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피란 여성에게는 적게는 1명부터 많게는 9명까지 동반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식구가 많은 대가족이 자립하여 살아가는 것은 단시일 내에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의 사회 복지 지원에 대한 접근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 위원회는 2월 24일부터 10월 20일까지 약 8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민간인을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에 5억 2,300만 유로를 할당했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거대한 난민 지원에 폴란드에만 1억 4,460만 유로(약 6억 9,500만 즐로티)를 제공했다. 또한 헝가리의 경우는 성인 난민 1인당 월 할당액을 61유로, 슬로바키아의 경우 68.8유로, 독일의 경우 360유로를 지원했다. 이러한 사회 보호 개입은 먼저 사회 지원을 통한 비상 및 기본 요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둘째, 아동 돌봄과 교육을 하는 여성은 취약하다. 아동에게는 피해와 방치에 대한 취약성 외에도 자율 발달에 대한 취약성이 있다. 이것들은 아동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생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신체적, 지적, 정서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보살핌이 필요하다.
취학 아동을 가진 고려인 여성들은 자녀 돌봄의 문제가 그렇게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취학 아동 돌봄은 당장 삶의 주요 순위는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취학 전 아동의 돌봄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다. 또한 저렴한 유아 교육 및 돌봄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가족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저렴한 보육 서비스의 부재는 한부모 가정이 일자리를 찾는 데 상당한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들은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있어서 지금 큰 문제는 한국어 사용능력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 특히 자녀의 과제물이나 학습 해결을 부모가 책임질 수 없기에 부모에 대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셋째, 부모 돌봄을 하는 여성은 취약하다. 대부분의 난민 정책에서 소외된 특정 조건을 지닌 여성 난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 난민에 대한 더 나은 보호와 권한 부여는 아동과 부모를 돌봐야 하는 도덕적 의무와 함께 자신의 조건과 필요로 인해 시급히 필요해 보인다. 부모를 돌보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가족이고, 특히 남편 없는 여성에게 부모 돌봄은 어려움을 넘어 고통이 되고 있다. 아동과 부모 돌봄 문제는 여성들이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와 더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넷째,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의료에 대한 접근성의 취약이다. 분쟁 관련 폭력, 트라우마 및 합병증으로 인해 난민의 의료 요구는 수혜국의 일반 시민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난민 수용 국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쟁을 피해 온 우크라이나인에게 전반적으로 의료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다. 우크라이나 피난 고려인에게 트라우마도 확인되었다. 난민들은 정서적으로 힘들어했다.
마리아(남, 46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병이 있다. 아버지가 건강 진단을 하기 위해 무료진료센터에 왔다. 치료도 해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하는데 문제다. 아버지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심리적인 압박감도 조금 있다. 어머니는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치료와 진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당뇨, 고혈압, 허리 등 많은 곳이 불편하다. 건강보험이 없으니 일반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비용은 매우 비싸다. 건강보험 가입은 우리에게는 매우 비싸며 바로 가입하더라도 6개월 후에나 혜택을 볼 수 있다. 의료 지원은 건강보험에 가입하면 바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긴급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섯째, 장애인 돌봄을 하는 여성은 취약하다. 장애 자녀 돌봄도 남편 없는 여성에게는 어려움을 넘어 고통이 되고 있다. 장애가 있는 난민은 여성, 장애, 실향민이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취약성의 위험이 큰 경향이 있다.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자신을 돌보는 것 외에도 장애 자녀를 돌봐야 한다.
엘레나(여, 40세)는 “딸은 장애가 있다. 딸은 이번 전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 딸은 지금 진료를 받고, 앞으로 수술을 할 예정이다. 의사 선생님이 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회복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난 고려인 여성들은 고려인이라는 에스닉 정체성으로 인해 한국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보호는 없었다. 하지만 국내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들의 취약성은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으로 인해 취약성의 경험은 더 심했다. 피란 여성은 자신의 상황과 동반 자녀 및 부모를 돌보는 책임에 따라 취약성이 달랐다. 특히 취약성은 피란 여성의 동반 자녀가 아동인 경우, 가족 장애 유무, 남편이 없고 여성이 가장인 경우, 취업하기가 어려운 나이든 여성, 그리고 트라우마 및 건강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은 불안정성이 높아 훨씬 컸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피란민이 되면 훨씬 더 어렵다. 피란민 여성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여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아동, 장애인 또는 노년층 여성을 돌보는 특정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며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취약성과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온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이 인권차원에서 규범·정책·제도적 수준에서 지원과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이주 공간에서 고려인 에스닉 여성이 아닌 이주자로서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글로벌 이주로 형성되는 다문화 현상쯤으로 보는 한국이라는 로컬리티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인식의 지평과 고려인이라는 에스닉 정체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이 내포한 경험공간이 교차할 때 나타나는 취약성의 경험은 여느 난민과 같이 일반적이지만 보호를 받지 못해서 역사적 조국 대한민국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인권적 과제로 남아 있다.
물론 피란 여성들의 취약성 감소를 위해서는 회복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약성을 생성하는 사회적 과정과 취약성의 위험과 결과를 줄이는 데 있어 국가와 국가 기관의 책임과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입국 후 피란민 여성으로서 삶의 재구성 과정에서 회복력과 자율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입국한 피란민에게 회복력 프로그램 같은 것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고 회복되어 생존하는 것은 미래의 한국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