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오페라단의 ‘잔니 스끼끼’에서 시모네역으로 출연한 필자. 필자 제공 |
현대인에게 ‘돈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두말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 일어나는 전쟁도, 권력도,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가 돈의 흐름과 관련있다고 언론을 비롯한 미디어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를 잘 반영하듯 드라마나 영화에서 금수저의 대물림 수단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유산’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현대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욕망 역시 과거 세대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푸치니와 극작가 포르차노는 700년전 단테 가문에서 일어난 유산 상속에 얽힌 희대의 사기꾼을 소환해 작품을 만들었다.
201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잔니 스끼끼’ 공연 중 유산을 가로챈 잔니(플라시도 도밍고)를 부오조 친척들이 비난하는 장면. 출처 캔 하워드/MET OPERA |
푸치니의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잔니 스끼끼’는 푸치니가 만든 마지막 완성작으로 유일한 희극 오페라다. 명랑하고, 해학적이며, 동시에 사실적이고 예리한 묘사가 특징인 이 작품은 그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을 거둔 오페라로 정평이 나 있다. 명쾌함과 모티브 중심적 진행, 불협화음과 리듬의 교묘한 처리가 한층 돋보이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희극의 특성뿐만 아니라 베리즈모적 표현도 뛰어난 작품으로, 작곡가 푸치니는 웃음과 해학 속에서도 인간의 물질에 관한 욕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201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잔니 스끼끼’ 공연 중 부오조 친척들이 유언장을 읽는 장면. 출처 캔 하워드/MET OPERA |
오페라 ‘잔니 스끼끼’는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가 배경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지역의 부호인 도나티 가문의 부오조가 죽었는데, 침대 위에 누워있는 고인을 두고 몇몇 사람이 애도하고 있다. 그들은 부오조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모여든 친척들로 거짓 슬픔으로 애도를 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 회장의 유서에 관심을 보이는 그의 가족들이 연상된다.
친척 중 요즘 사랑에 빠진 청년인 리누치오가 부오조의 유언장을 찾아냈다. 유언장의 내용은 수도원에 모든 재산을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부오조에게 조금이라도 상속받길 원했던 친척들은 낙심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이때 리누치오는 유언장에 대한 해결사로 잔니 스끼끼를 생각해낸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연인 라우레따의 아버지인 잔니 스끼끼를 친척들에게 소개하고 데려오게 한다.
드디어 이 오페라의 주인공, 희대의 사기꾼 잔니 스끼끼가 그의 딸 라우레따를 데리고 등장한다. 평소에 잔니 스끼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던 부오조의 친척들은 한국의 양가 집안 간 혼수 다툼처럼 리누치오와 라우레따의 결혼 지참금으로 인해 잔니 스끼끼와 다툼을 벌인다.
잔니 스끼끼는 탐욕에 눈이 어두운 이들의 마음을 읽고 새로운 유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로 등장하는 머리 좋은 사기꾼들이 생각난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 박사
친척들은 잔니를 인정하고 그에게 이번 일을 맡긴다. 그리고 잔니는 이러한 문서조작의 공범자들 역시 손목을 잘리고 피렌체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벌을 받는다는 사실까지 친척들에게 알려주며 죽기 전의 부오조로 변장하고 공증인 앞에서 새 유언장을 만들 계획을 이야기한다.
부오조로 변장한 잔니 스끼끼는 부오조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공증인과 증인을 속이고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유산인 저택과 암말 그리고 씨냐의 방앗간의 유산 상속을 잔니 스끼끼에게 한다는 것이다.
유산을 잔니 스끼끼에게 빼앗긴 시모네를 비롯한 도나티 일기는 공증인과 증인 앞에서 피렌체의 무서운 처벌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증인이 나가자 거세게 소리를 지르며 항의를 한다. 그러나 이미 부오조의 유산이 잔니 스끼끼 것임을 천명하면서, 잔니 스끼끼는 친척들을 모두 쫓아낸다. 그리고 딸과 딸의 애인인 리누치오는 기쁨을 속삭인다.
주인공 잔니 스끼끼는 관객석을 향해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부오조의 돈이 이보다 더 잘 쓰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상한 일 때문에 그들은 저를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위대하신 아버지 단테의 허락으로 오늘 저녁에 즐거우셨다면, 여러분께서 정상참작을 해 주십시오”라고 대사를 한 후 막이 내린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초연 오페라 ‘잔니 스끼끼’ 포스터. |
호남오페라단의 ‘잔니 스끼끼’에서 시모네역으로 출연한 필자. 필자 제공 |
푸치니는 ‘삼부작’을 ‘슬픈 출발에 이은 행복한 결말’이라고 이야기했다. ‘외투’가 어둡고 끔찍한 치정 살인이면 지옥편은 슬픈 출발이고, ‘수녀 안젤리카가’는 구원의 연옥에 해당한다. 그리고 즐겁고 유쾌한 결말의 ‘잔니 스끼끼’가 천국에 해당한다. ‘삼부작’ 중 행복한 결말의 ‘잔니 스끼끼’는 우리에게 슬픈 출발일지언정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힘든 우리 삶의 여정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청년 세대에게 ‘헬 조선’이라 불리는 현재의 대한민국, 작금의 삶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유럽 문학의 신성 단테와 대 작곡가 푸치니는 말한다. 하지만 행복한 결말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오늘도 지옥을 걷는 여러분! 재미있는 희극 한 편 보면서 좌절과 고됨을 씻어내 봅시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함께 들어봐야 할 명곡으로 ‘O mio babbino caro’(‘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음반 데카/미렐라 프레니, 피렌체 오월 음악제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91년 녹음)를 추천한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잔니 스끼끼’ 중 라우레따가 부르는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잔니 스끼끼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리누치오와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베끼오 다리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릴 거예요”라며 결혼을 허락해주라는 내용의 아리아다.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