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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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 전통주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입력 : 2023. 01.16(월) 10:25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황금주, 백자주, 송주, 예주, 죽엽주, 이화주, 오가피주, 앵무잔 호박배에 가득 부어 술을 권해 올리는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

고려시대 경기체가 ‘한림별곡’ 중 한 대목이다.

고려 고종2년(1215년) 한림의 유생들이 무신집권 하에서 향락적, 유흥적 풍류를 뽐내며 생활감정을 읊은 내용이다.

4장에 나온 내용으로 술 이름도 7개나 된다.

한림별곡 이전까지 술은 단지 ‘맛좋은 술’ ‘달콤한 막걸리’ ‘신라의 술’ 등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림별곡 이후 술의 캐릭터를 유추할 수있게 됐다. 고려시대 문헌에는 48개의 술이 기록돼 있다.

고려시대 술 문화를 유추해보는 기록이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나온다. 그는 “고려의 술은 맛이 독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서민들은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잔치 때 마시는 술은 맛이 달고 빛깔이 짙으며 마셔도 별로 취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당시에도 선진문물인 고급술이 널리 퍼져 있었던 듯하다. 증류식 소주다. 막걸리나 약주, 청주를 끓여 증류한 술을 말한다. 고려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는 몽골군이 침입한 1231년 이후다. 당시 몽골군은 말 안장에 소주가 든 호리병을 서너개씩 달고 다녔다고 한다.

몽골군은 일본정벌을 위해 개성과 경북 안동, 제주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곳에서 몽골군을 위한 소주를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고려민중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우리나라 3대 소주는 개성소주(문배주), 안동소주, 제주도 고소리술을 꼽는다.

그 소주를 ‘이슬’로 표현한 성리학자가 있다. 정몽주·정도전·길재의 스승이자 이성계의 친구였던 목은 이색(1328~1396)이다. 친구가 조선건국 동참을 제안했지만 거부했으며 두번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그의 소주사랑은 유별났다. 그가 쓴 ‘목은시고’에도 나온다. 제목이 길다. ‘서린(西隣)의 조 판사(趙判事)가 아자길(阿刺吉)을 가지고 왔는데, 그 이름을 천길(天吉)이라 하였다’

‘형체에 기대지 않게 하는 술 속의 영특한 기운이여/가을 이슬로 둥글게 맺혀 밤 되면 톰방거리는 소리/생각하면 우스워라 청주의 늙으신 종사님이/하늘의 별과 맞먹도록 뻐기게 해 주시다니/연명이 이 술 얻고 나면 깊이 고개 숙일 터/정칙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표범 가죽 보료 위에 금병풍 기댄 기분일세’

이 중 ‘연명’은 진나라 도연명으로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시인이다. 정칙(正則)은 전국 시대 초나라 굴원(屈原)을 말한다. 그가 지은 ‘어부사’에 “사람들 모두 취해 있는 속에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구절을 빗대 읊었다. 표범가죽은 임금만 사용하는 담요로 술한잔 마시고 취하니 임금조차 부럽지 않다는 의미다.

그 전통주 명맥이 전남지역에도 이어지고 있다. 진도홍주(백주), 해남 진양주, 영광 톡한잔소주, 강진 병영소주, 장성 불로문·첨내린42, 곡성 토란소주 도란도란, 담양 죽향41·담양죽력고, 광양 별헤주1941, 완도 장보고의꿈황칠증류주 등이다.

설 명절 전남 대표 전통주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