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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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서부전선 이상없다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입력 : 2023. 01.03(화) 13:28
  • 박간재 기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총알이 떨어진 주인공은 프랑스 병사의 가슴팍에 칼을 꽂았다.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던 주인공이 돌연 연민을 느끼며 살려 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 병사는 결국 숨을 거둔다. 병사의 군복 안주머니를 뒤져보니 그의 아내와 자녀 사진이 나온다. 그가 인쇄공이었음도 알게 된다. 주인공은 허공에 대고 외친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1928)’가 최근 세번째 영화로 리메이크 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으로 고착되는 양상을 보인 독일군 서부전선의 참혹함을 그린 영화다. 서부전선이 ‘이상없다’고 했으니 평화가 이어졌을까. 영화속으로 들어가보면 섬뜩해진다. 전투가 벌어지고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전선엔 변동이 없었고 오히려 고착화 됐다. 후방 지휘관들 입장에서는 전선에 변동이 없으니 ‘이상없다’고 판단한 것. 그 지옥 속에서 싸우다 죽어간 병사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주인공 선임인 카트는 이렇게 읊조린다.

“여기 모든 건 열병 같아/…/우리도 원하지 않았고 저쪽도 원하지 않았어/그런데도 이러고 있잖아. 세계의 절반이 이러고 있어.”

전쟁과 승리를 탐하는 건 죽어가는 최전선의 병사들이 아닌 후방의 지휘관들이라는 진실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표현한 영화다.

1차대전 당시 독일의 권력도 비슷했다. 비스마르크와 함께 평화정책을 펼치던 아버지 빌헬름1세와는 달리 그의 아들 빌헬름2세는 세르비아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1차대전을 일으킨다. “여름에 시작했지만 낙엽 지는 가을 이전에 끝날거야” 그들은 전쟁을 낭만적으로 여겼다. 하지만 전쟁은 길어졌고 독일국민 수 백만명이 사망했다. 말로만 떠들던, 전쟁을 낭만적으로 묘사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은 무능한 황제를 개탄하며 책을 낸 학자가 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쓴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아프간 전쟁 등을 봐도 현대전의 승자는 없다.

최근 느닷없이 북한 무인기 5대(12대라는 말도 있음)가 5시간 넘게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는 일이 일어났다. 격추는 커녕 우왕좌왕 하다 놓치고 말았다. 그러자 군에서 기막힌 전술을 내놨다. “검독수리를 훈련시켜 무인기를 잡겠다.” 수천억 들여 만든 첨단무기는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말로 들린다. 어떤 이들은 “선제타격” “평양폭격” 등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후방에서 만찬을 즐기며 휴전협상을 할지 모르지만 전장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은 우리의 귀한 아들, 딸들임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새해가 됐어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이 부끄러움은 정녕 우리의 몫일까.
박간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