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불개(過而不改)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과이불개(過而不改)
  • 입력 : 2022. 12.13(화) 17:02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 부른다. 산업 재해 중상자 1명은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부상을 당할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1931년 미국 보험회사에서 감독관으로 일하던 하인리히가 그의 회사에 접수된 5만건의 사고 사고에 대해 자료를 분석, 통계적인 상관관계를 밝혀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서 소개했다. 이 법칙에 근거해 교통사고가 잦은 곳에선 머지않아 대형사고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예상할 수있다. 사고 위험성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산업, 교통,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이 법칙에 근거해 위험 사례를 줄여가는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수많은 대형 참사는 지속적인 경고음에도 이를 간과한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후폭풍은 뿌리깊게 자리잡은 이권 카르텔에 의해 두터운 부패의 사슬 구조와 함께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매뉴얼은 '힘없는 몇사람을 희생의 제단에 올리고 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익숙한 퍼포먼스로 마무리한다. 강화된 제도로 후속 대책을 내놨으니 당연히 똑같은 대형 참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웬걸, 어김없이 발생하는 참사앞에서 법과 제도만으로는 완벽하게 '소잃은 외양간'을 고칠수 없음을 목격한다.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금융기관의 회계 부정 사고도 하인리히 법칙이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되고 있지만 현실은 씁쓸하다. 우리들의 도덕성 역시 그 한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갑질, 성희롱 등 마초적 사고에 갇혀 망신살을 뻗치는 불상사를 연출하곤 한다.

최근 교수신문이 올해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추천했다. '잘못을 했는데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라는 뜻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것같아 수긍하면서도, 손뼉을 쳐야 하는 상황이 마냥 유쾌하지는 않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에 등장하는 말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고 했다. 과이불개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데, 연산군이 소인을 쓰는 것에 대해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고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도 언급된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 여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잘보여주는 말"이라면서 "잘못을 고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은 지금 우리는 어떻게 진노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20~30대 158명이 서울 도심 한복판인 이태원을 걸어가다 황망하게 죽었는데,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삿대질만 하는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작태앞에서 맥이 빠진다. 잘못을 고친 사례가 우리 역사속에 있었는지 궁금해 과이불개를 제시한 또 다른 이유였다는 박 교수는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 역시 잘못해서 후회한다고 말한 기록이 10여차례나 나온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단체장들이 모든 잘못과 꼬여가는 사안에 대해 전 정부, 전임 탓만 하는 정형화된 언행부터 '바로 고침'으로 들어갈때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