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한 명 없는 빈 교실에는 저마다 교사들이 앉아있다. 낯익은 교실이지만, 교사들은 새내기 교생이라도 된 것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9일 사상 초유 '온라인 개학'이 이뤄졌다. 개학이 미뤄진 지 38일 만이다. 마이크며 조명까지 학교 곳곳에는 전문 '유튜버' 뺨치는 방송 장비가 즐비했다.
학생들은 각자 집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선생님을 맞이했고, 교사들은 학생 없는 교실에서 수업을 이끌었다. 코로나19로 바뀐 개학 첫날 풍경이다.
●사상 초유 온라인 개학
"in firm, solid 같은 표현입니다. 형용사로 '단호한'이라는 의미가 있죠."
이날 오전 10시 광주 서강고등학교.
2교시 영어 수업을 맡은 임승현 교사가 학생들과 영어 지문을 공유하면서 칠판에 필기하듯 모니터에 밑줄을 그었다. 그는 이번 수업을 위해 예정에도 없던 태블릿 PC까지 구입했다.
오랜기간 걸친 연습으로 수업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펼쳐둔 교재에는 빨간 형광펜과 밑줄 자국이 가득했다. 옆 자리에도 보조 교사가 같은 화면을 띄워두고 앉아 손발을 맞췄다. 보조 교사는 학생들의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채팅으로 답했다. 이렇게 2교시 50분이 채워졌다.
"분필이 아니다보니 글씨가 이렇습니다. 여러분 양해 부탁드려요." 삐뚤삐뚤 태블릿 PC에 필기하던 임 교사가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선생님 괜찮아요." 응원 댓글도 달렸다.
임 교사는 "아무리 연습해도 스마트기기로 수업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했다.
그는 "컴퓨터 활용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학생 없는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힘들고 적응하기가 힘들다"며 "대면수업을 하면 학급별로 진도를 조정할 수 있고 수업 도중 학생들의 참여도 유도할 수 있는데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수업 도중 방송이 잘 되고 있는지도 걱정됐다"고 덧붙였다.
●개학 첫날 방송사고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수업이 안 보여요." 채팅창에 불이 났다.
31분께 물 흐르듯 진행되던 수업이 갑자기 '뚝' 끊겼다. 누군가 방송 도중 같은 아이디로 로그인하자 수업도 '로그아웃'된 것이다. 보조교사가 교무실로 급하게 달려갔다. '방송사고'는 10여 분이 지나서 원인을 파악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임시 계정을 빌려 비로소 해결됐다. 녹초가 된 교사들이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이날 '방송사고'는 문성중학교에서도 터졌다.
문성중은 온라인 개학에 맞춰 모든 자료를 EBS 온라인 E-클래스에 올려놨지만, 개학 첫날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서버가 마비됐고 덩달아 학교 수업도 마비됐다.
학생 절반 이상이 '출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학교는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급한대로 모든 수업자료를 학교 홈페이지로 이전했다.
그러나 학교 홈페이지는 전교생의 접속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오전 10시께 학교 홈페이지마저 마비됐다. 결국 이 학교 학생들은 오후 1시께 E-클래스가 정상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개학'을 할 수 있었다.
●출석률 높아 집중도는 걱정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원격수업 출석률은 제법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광주시교육청은 온라인 개학 첫날 학생들의 원격수업 출석률이 98.81%라고 밝혔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광주지역 중3·고3 학생 2만8595명 중 2만8255명이 원격수업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석 학생은 340명이었다.
중3의 경우 1만3769명의 전체 학생 중 1만3651명이 참여해 출석률은 99.14%였고, 결석 학생은 118명이었다. 고3은 1만4826명의 전체 학생 중 1만4604명이 참여해 출석률은 98.50%, 결석 학생은 222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광주시내 대부분 학교가 학교 회선 등의 문제로 '실시간 쌍방향'으로 하지 않고 '단방향 콘텐츠·과제 제공형'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수업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생이 잠을 자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일일이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온라인 수업이 학생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중·고교 3학년 학생들의 개학을 시작으로 오는 16일에는 중·고교 1~2학년, 초등학교 4~6학년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1~3학년의 온라인 개학 일자는 오는 20일로, 가장 마지막에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