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의 음악세상>개인의 총기소유를 규제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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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음악세상
김기호의 음악세상>개인의 총기소유를 규제하려면..
영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 2007) / ||노래 Sarah McLachlan의 Answer(영화 ‘브레이브 원’ 주제가)
  • 입력 : 2019. 04.25(목) 12:54
  • 편집에디터

영화

20여 년 전의 일이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지 30여분 후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여보, 집에 강도 들었어. 어떡해."

운전대를 쥔 손이 후들거리고 눈앞이 흐릿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보니 아내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나가자마자 침입한 듯 했다.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내는 깜박 잠들었다가 이상한 낌새에 눈을 떠보니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갑을 내놓으라고 했고 순순히 따랐지만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급박한 나머지 우리 아이를 꼬집었고, 울음을 터뜨리자 도주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주위를 탐색했지만 범인을 붙잡지 못했다. 그들은 집 곳곳을 살펴본 후 수사에 착수하겠다며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경찰에 연락해 봤지만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례적인 답변뿐이었다. 한 달여 후 결국 우리는 이사를 했다.

브레이브 원

닐 조단 감독의 영화 <브레이브 원>에서, 라디오 쇼 '스트리트 워크'를 진행하는 에리카(조디 포스터)는 의사인 약혼자 데이브와의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저녁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괴한들과 맞닥뜨린다. 금품을 요구하던 그들은 에리카를 희롱하기 시작하고, 이에 저항하는 데이브와 에리카를 잔혹하게 구타한다.

3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에리카는 데이브가 이미 사망했음을 전해 듣고 절규한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에리카의 고통스런 기억만을 집요하게 들춰낼 뿐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날의 트라우마는 지속적으로 에리카를 괴롭히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담당형사와 연락이 닿지 않자 직접 경찰서를 찾은 에리카에게 창구의 경관은 건조한 말투로 사건번호를 묻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건 의뢰인들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경찰은 그들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힘드신 건 알지만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경찰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함을 알게 된 에리카는 총포상을 찾는다. 총기소지면허가 없는 그녀는 불법적인 경로로 총기를 구매한다. 두려움을 외면해왔던 에리카는 이제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을 향해 직접 총구를 겨누기 시작한다. 늦은 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남자,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 그리고 어린 소녀를 납치해서 끌고 다니는 남자를 사살한다. 연이어 발생하는 정체 불명의 살인사건은 뉴욕시 전체를 뒤흔든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정의를 지키는 옳은 행동이라는 주장과 재판 없는 단죄는 여느 살인과 다를 바 없다는 반론으로 엇갈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중 두 번째 영화인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속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강도의 총격으로 부모를 잃는다. 성인이 된 그는 낮에는 거대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밤에는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으로 활약한다. 시민들에게 정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주겠다는 선한 의도를 갖고 있지만 국가는 그에게 그러한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고담에는 이제 목적은 정의롭지만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는 배트맨의 '카피캣(Copy cat)'들이 출현한다. 배트맨이 '다크 나이트(어둠의 기사)'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이다.

이에 배트맨은 신임지방검사인 하비 덴트에게 기대를 건다. 그는 정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화이트 나이트(White Knight, 백기사)가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정의로운 경찰인 고든 반장과 함께 고담의 범죄와 불의에 맞서 싸운다.

경찰의 부정부패는 조직 전체에 뿌리깊이 퍼져있었다. 영화 속 빌런인 조커에게 매수된 그들은 하비 검사를 위험에 빠뜨리고, 이 과정에서 화염에 휩싸인 그는 한 쪽 얼굴을 완전히 잃게 된다. 절망한 하비 덴트는 정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분노한다. 그는 법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적 보복으로 부패한 경찰과 범죄자들을 응징하기 시작한다. 고든은 하비 덴트의 좌절로 인해 고담이 다시 부정과 부패와 범죄 앞에 굴복할거라며 절망한다. 그는 정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희망 역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미국은 민간의 총기소유를 허용하는 국가 중 하나다. 빈번한 사고로 인해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입법화되지 않고 있다. 거대한 총기시장을 유지하려는 미국총기협회의 전방위 로비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개개인에게 있다고 믿는 전통적 가치관 역시 걸림돌이다.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면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총기를 물려주며 가족의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법치국가에서는 민간의 총기소유 자체를 규제한다. 사적응징이나 보복 역시 엄격히 금지된다. 이른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조정하고 이로 인한 혼란을 막을 권한과 책임을 전적으로 국가에 위임하는 것이다. 오직 국가만이 독점적이고 합법적으로 총기를 비롯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개인이 범죄로 인한 원한이 있고 이를 응징할 힘을 갖고 있더라도 악인을 사적으로 징벌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김윤석, 주지훈 주연의 우리 영화 <암수살인(暗數殺人)> 속 경찰인 김형민 경사는 미결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제목인 '암수살인'은 피해자들이 단순 실종이나 스스로 행적을 감추었다고 판단되어서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즉 '인지하지조차 못한 살인사건'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암수살인 피해자가 한 해에 2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형민 형사는 왜 상부에서도 만류하는 사건에 사비를 써가며 매달리고 욕을 먹느냐는 동료에게 말한다.

"나는 십 년 후면 퇴직한다. 하지만 연쇄살인마 강태오(주지훈 분)는 또다시 나와서 사람을 죽일 것이다. 이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실제 영화 속 연쇄살인범의 모티브가 되는 범인은 자살했다. 그를 극형에 처했다고 한들 피해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영화 <브레이브 원>의 주제가 'Answer'는 가수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이 불렀다. 에리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아픔과 고통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총을 들었다. 행복했던 시간의 추억과 함께 집요하게 떠오르는 사건 당시의 처참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에리카의 모습 뒤로 주제가가 흐른다. 범인들을 단죄한들 다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에리카의 현실이 아프게 전해진다.

법과 정의에 대한 신념

많은 국민들은 우리의 치안 수준이 비교적 양호하다는데 동의한다. 영화 <암수살인> 속 김형민 형사처럼 어려운 현실에도 최선을 다하는 경찰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일부의 일탈과 부정부패로 야기되는 불신은 여전하다. 온갖 편법영업과 불법행위로 얼룩진 '버닝선'과 강남의 클럽들이 경찰의 비호 없이 이런 행위를 지속했을 거라고 믿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이들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아 온 경찰이 입건 직전까지 '버닝선' 수사를 담당하고 있었다는 소식에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가수 승리를 비롯한 관련 피의자들은 윤모 총경으로 알려진 '경찰총장'의 비호를 공공연히 과시하며 버젓이 불법행위를 자행해왔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의 권한을 확대함으로써 검찰과의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김학의 사건'을 비롯해서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에 이르기까지 배후에 오직 검찰 권력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국민이 있을까? 사법부도 검찰도 경찰도 믿을 수 없는 우리 스스로가 딱할 뿐이다.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주민들은 이웃과 자주 마찰을 빚어 온 용의자에 대해서 앞서 일곱 차례나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사건을 막지 못했다. 부자동네였다면 이랬겠느냐는 유족들의 절규가 뼈아프다. 범인을 극형에 처한들 피해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범죄를 막았어야 했고, 기회가 있었지만 경찰은 외면했다. 노모와 어린 딸을 잃은 가장의 시간은 그날 새벽 멈춰버렸다.

법과 정의에 대한 신뢰와 신념이 무너지면 공동체는 붕괴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던, 영화 <다크나이트>속 배트맨은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라졌다. 우리는 이런 영웅이라도 나타나 주길 바라야 하는가? 국가권력의 대한 신뢰가 무너진 국민들이 자위권 확보를 위해서 총기소유를 요구한들 무슨 명분으로 이에 반대할 것인가?

<김기호 문화평론가>

영화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