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은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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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음악세상
누구에게나 삶은 아름다운가
영화 <로마(Roma)> /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한다) 노래 메르세데스 소사
  • 입력 : 2019. 03.28(목) 14:04
  • 편집에디터
1492년, 한 달이 넘도록 망망대해를 헤매던 한 무리의 남자들이 뭍에 다다른다. 그들의 리더인 콜럼버스는 감격에 겨워 땅에 입을 맞추고 깃발을 세운 후 중얼거렸다.

"이제 이 땅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귀속된다."

인류의 탐욕이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마저 뒤덮은 순간이었다. 콜럼버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곳이 중국이나 인도 혹은 아시아의 어느 지역이라고 믿었다.

20여년 후인 1511년, 카리브해의 한 섬인 과아바 지역 타이노 부족의 추장은 부족을 이끌고 지금의 아이티를 탈출하여 쿠바 동쪽의 산 속 동굴에 숨었다.

추장은 황금이 가득한 바구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백인들이 모시는 신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를 핍박하고 부모형제를 죽였다. 우리 모두 이 신을 위해 춤을 추자. 이 신을 즐겁게 하자. 그러면 더 이상 우리를 핍박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령할 것이다."

얼마 후 붙잡힌 추장은 화형장 통나무에 묶여 있었다. 그에게 다가간 한 신부는 세례를 받으면 환희와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추장은 천국에도 기독교인들이 있는지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결코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그는 결국 화형되었다. (에두아르노 갈레아노 저 중)

콜로니아(Colonia,식민지) 로마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등을 석권한 멕시코 출신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속 '로마'는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라는 지역 이름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 등 상류층 거주 지역이었지만 1985년 멕시코시티 지진 이후 부자들이 빠져 나가면서 중산층 지역으로 바뀌었다.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지배적 상류계층은 백인, 피지배 하층민은 원주민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분)는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의 한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이며 이른바 '인디언계 원주민'이다.

이른 아침, 알람소리에 일어난 클레오는 아이들을 깨워서 옷을 입히고 아침을 챙겨준 후 학교에 보낸다. 집안의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며 침실을 정리한 뒤 마당의 물청소를 마치고 빨래를 시작한다.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서 주인집 막내를 데려온 후 음식을 준비한다. 나머지 세 아이와 할머니 그리고 이 집의 안주인인 소피아가 돌아오면 저녁을 차린 후 주인아저씨의 양복을 세탁소에 맡겨야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가족들의 차와 간식을 챙기고, 잠자리에 든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준 후 나머지 설거지를 마치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늦게까지 전등을 켜두면 사모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에 일찍 불을 꺼야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도 클레오는 힘든 내색을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모처럼 쉬는 날에는 남자친구인 페르민과 데이트를 즐긴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모와 빈민촌에서 살았다는 페르민 역시 중남미계 원주민 출신이다. 클레오는 남자답고 믿음직스러운 그를 사랑한다. 클레오는 페르민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되고,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페르민은 영화가 끝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캐나다로 출장을 떠났던 주인아저씨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에게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 이 집의 안주인인 소피아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남편은 수개월째 생활비조차 끊어버리고 아내는 절망한다.

클레오는 수소문 끝에 페르민의 고향마을을 찾아간다. 그는 클레오를 모욕하며 다시 찾아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출산이 가까워오자 아기침대를 사러 나간 클레오는 총을 들고 있는 페르민과 마주친다. 그는 멕시코 정부의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은 1971년 6월 성체축일 대학살(The Corpus Christi Massacre)을 통해 120여명의 시위대를 살해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은 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게 한다. 공포에 질린 클레오는 결국 아기를 사산한다.

삶에 감사하며

소피아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가겠다는 남편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바닷가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슬픔과 절망으로 힘겨워하며 동행을 '사양'하는 클레오를 앞에 두고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말한다."클레오도 휴가니까 일시키면 안 돼. 알겠지?"

소피아는 임신으로 인한 해고를 염려하는 클레오를 위로하며 격려했다. 그들의 관용과 이해는 제한적이었다. 소피아의 남편은 종종 집안이 지저분하다고 불평했고,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화풀이를 했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술에 취해 운전해 들어오며 긁어놓은 벽은 클레오가 복구해야 했다. 선 채로 양수가 터진 클레오를 데리고 병원에 간 주인집 할머니는 클레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거센 파도에 휩쓸린다. 클레오는 망설임없이 거친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클레오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전 그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지 않았어요."

클레오는 주인집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왔다. 아침이 되면 품에 안아서 잠에서 깨우고 밤에는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웠다. 수영을 하지 못하지만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구해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 아이 역시 힘겹고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백인인 안주인의 관용과 배려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신분과 계급이 엄연함을 클레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노래 'Gracias A La Vida(삶에 감사하며)'는 '남미의 목소리'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대표곡이다. 아르헨티나의 민속 음악을 복원 발굴하는데 앞장섰고,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 운동인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의 발전에 기여했다. 삶을 예찬하고 있음에도 가슴이 먹먹한 한(恨)의 정서가 우리의 민중 음악과 맥이 닿아 있다.

삶에 감사합니다 /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 두 눈을 주셨습니다 / 흑과 백을 구분하고 드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도록 /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내도록 / 두 귀를 주셨습니다 / 숱한 소리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중략)

웃음과 눈물로 나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이고 /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입니다

약소국 여성들의 고통

16세기 초,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소수의 스페인 원정대가 유카탄 반도의 서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들은 총과 대포를 쏴 대며 아즈텍 제국의 도시를 초토화했고 주민들을 살육했다. 놀란 그 지방의 우두머리가 화친을 표시하기 위해 보낸 선물에는 스무 명의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사장들은 사신단과 죄수를 보내 인신공양 의식을 하기도 했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521년 8월 13일, 멕시코-테노츠티틀란은 완전히 함락되었다.

힘의 논리에 의해 고통 받은 민족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피신 갔다가 붙잡힌 부녀자들이 겁탈을 피해 자결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머릿수건이 낙엽처럼 바다 위에 떠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나라 병사들의 성노리개로 끌려간 여인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초를 견뎌야 했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온 이후로도 '환향녀(還鄕女)'로 손가락질 받으며 외면당했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다. 1941년 한 해에만 조선인 여성 2000~3000명을 동원한 것이 확인된다.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고발한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뿐이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는 친일파 출신들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와 경찰의 방해공작으로 결국 와해되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는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 고유의 땅이라는 등 영토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교육을 심화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교실에서부터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의 제1야당과 아베정부의 우경화 정책이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다는 비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