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열 교수 |
북한을 바라보는 이러한 이중적 관점은 같은 민족으로서 협력과 통일의 대상이라는 민족주의적 시각과 전쟁의 상대방이자 공산 전체주의 체제로서 배제하고 이겨야 한다는 안보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 시작된남북한 관계는 ‘동족과 적, 협력과 대결’이라는 원초적 이중성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남북한 당국은 이런 이중성을 인식하여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한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고 명시하며 상호 실체를 인정하였다. 이는 북한이 반국가단체로서 활동하는 규범 영역에서는 헌법 제3조와 ‘국가보안법’ 등의 국내 법률이 적용되지만,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서 활동하는 규범 영역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 등 남북한 관계를 규율하는 법률과 남북합의서 그리고 국제법 원칙이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결국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평화로운 남북 관계를 지향하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북한 존재의 이중성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방향성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북한에 대해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와 변화를 압박하면서 국내적으로도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 조직을 축소시키고 북한 인권 담당 업무를 확대하는 등 자유민주체제 수호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는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고 있는 북한을 견제하고 배제하는 한편, 과거 정부가 북한의 인권 문제는 외면하면서 핵무기 체계 고도화를 사실상 허용하고 북한에 끌려다녔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긍되는 면이 있다. 다만, 북한의 이중적 지위에 비추어볼 때 교류와 협력 대상으로서 북한은 고려하지 않고 적으로서 배제와 갈등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치우친다는 우려를 낳는다. 많은 국민들은 북한을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인식하지만, 우리의 터전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울러 갖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러간 대립구도가 심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간 신냉전체제 형성과 함께 남북간 대립이 고착화될 것을 걱정하는 시각도 늘고 있다.
과거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 박정희 정부는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고 반공주의를 분명히 하면서도 북한과 이면 교섭을 벌여 1972년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군부 정권인 전두환, 노태우 정부 당시에도 북한과 대립, 대결하면서도 수해 지원 수용, 현재 남한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초안을 만드는 등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식하여 대화와 협력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분단국으로서 대북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북한을 잘 관리하여 평화로운 남북 관계를 정립하고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여 통일 한국을 이루는 것이다.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북한에 고개를 숙이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닫은 채 대결 국면을 지속하는 것도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조성에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협박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민들도 불안해할 수 있다. 정부는 공식적인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북한의 미묘한 변화의 시그널을 포착하면서 이면에서 대화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적이자 동족이라는 북한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균형감있는 정책 방향을 설정해 안보와 평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