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희대의 살인사건과 계엄의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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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박재항>희대의 살인사건과 계엄의 닮은 꼴
서경대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 입력 : 2025. 04.01(화) 17:46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12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미국 LA 한 고급 주택가에서 개 한 마리가 불안한 티를 감추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산책 나온 동네 주민이 집을 찾아주려고 다가가자 반려견이 한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 집의 개인가 싶어 따라가자 소름 끼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보도의 끝인 현관 앞에 까만색 짧은 치마 원피스를 입고 한 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여성의 목은 거의 참수당한 듯, 깊게 칼로 베어져 있었다. 여성의 시신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살해된 젊은 남성이 역시나 칼로 난자 당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1994년 6월12일 밤이었다.

그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 살인 용의자의 이후 생애 등을 철저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4부작을 봤다. 지난 4개월 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계속 겹쳐졌다. 두 사건 모두 처음 생각과 다르게 법적 처리가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명백한 수습 방안이 미루어지고, 사회가 분열되어 대립하는 양태가 벌어졌다. 사건들의 기묘한 전개 상황을 쫓아가 보자.

시신이 발견된 저택의 입구에서 현관까지의 보도 위에는 핏덩어리가 뚝뚝 떨어져 있었고,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자국이 선연했다. 범인이 꼈던 걸로 보이는 가죽장갑이 한 짝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고, 피부터 머리카락, 살점 등 DNA 감식을 위한 증거물, 장갑을 포함한 주변 물품 등을 수집했다.

피살된 여성의 신원은 곧 밝혀졌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의 슈퍼스타에서 은퇴 후에 연예계로 입성하여 역시나 최고의 예능인으로 활동하며, 허츠 렌터카를 비롯한 광고 모델로도 최상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오제이 심슨(O.J.Simpson)의 전 부인이었다. 피살자의 신원이 알려지며 오제이 심슨을 그날 밤에 시신이 발견된 전처의 집 주변에서 봤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나왔다. 다른 운전자에게 비키라며 위협하는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차를 몰고갔다고 했다. 심슨의 집 주차장까지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세워진 차에서도 혈흔이 곳곳에 있었다. 모든 증거물들이 오제이 심슨이 살해자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증거가 차고 넘쳤다. 나중에 심슨의 변호를 맡은 이들 중 하나가, 자신이 맡았던 사건 중에 증거물이 가장 많았던 사건이라고 할 정도였다.

오제이 심슨은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이용하여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을 일컬었던 ‘드림팀’이라고 부르며, 변호인단의 발언을 부각시키는 언론들이 나타났다. 변호인단의 조언을 받아 심슨은 LA경찰서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들은 현행범과 다를 바가 없으니 즉각 체포를 주장했으나, 경찰과 검찰 상층부에서 심슨의 명성과 지위를 고려하자는 방침에 밀렸다.

출두하겠다고 한 당일에 심슨은 머물던 변호사의 집에서 빠져나와 경찰과 2시간 이상 고속도로 규정 속도 이하로 달리는 기묘한 자동차 추격전을 벌였다. 심슨은 차 안에서 총을 들고, 자해 위협을 했다. 거의 모든 TV방송이 추격전을 생중계했다. 당시 미국 프로농구 결승 시리즈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중계를 끊고 추격전을 보여줄 정도였다. 미국인 9천5백만 명 이상이 시청했고, 나중에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군중들이 구경을 나왔다. 종착점이 된 심슨의 집 앞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경찰차에 태우고 나오는 광경은 중계는 물론이고 현장에서 수천 명이 지켜보았다. 심슨을 경찰의 폭력에 당하는 흑인 피해자로 그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큰 그릇에 듬뿍 담긴 스파게티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어쩌겠는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못 먹고, 모두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슨 사건의 증거를 두고,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 중에 가장 증거가 많다고 한 변호사가 이런 비유를 했다. 그가 바퀴벌레로 지적한 사항들이다. 증거물 처리 과정에서 맨손으로 만진 것들이 있다. 수집 날짜가 지연된 것들이 있다. 증거물을 채취한 경찰 중 한 명이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는, ‘자신은 지난 5년 동안에 흑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특히 위증으로 몰아붙이고, 체포 장면이 반복하여 노출되면서 흑백 갈등이 전면에 대두되었다.

유무죄를 주장하는 이들로 여론이 갈렸다. 양쪽에서 시위를 조직하고 대립했다. 오제이 심슨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면 폭동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갈등 사태라는 이른바 LA폭동의 기억이 선명한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재판이었다. 단순한 위협처럼 들리지 않았다. 순번으로 거의 자동으로 하던 배심원 선정에도 인종, 성별 등의 안배를 한다고 며칠이 걸렸다. 모든 과정이 그렇게 지연되면서 양쪽 진영의 갈등은 격화되고, 재판은 질질 늘어졌다. 법정으로 TV카메라가 들어오고, 재판 중계방송의 시청률이 CNN을 훨씬 상회했다. 재판에 관련된 이들의 신상이 털렸고, 무어라도 사건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내서 돈벌이를 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작년 12월 3일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선포한 계엄은 마치 1990년의 1차 걸프전처럼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었다. 방송사의 카메라 몇 대에 의존한 것과 달리, 개인이 미디어로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을 모든 국민이 보았다. 헌법에 위배되는 지시와 불법 행위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기록되었다. 위법 증거들이 영상으로 조사 결과로 넘쳐난다. 대치, 체포, 기각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판결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탄핵 반대와 찬성의 양쪽 대립은 첨예해지고 있다. 계엄의 위법성보다 당파적 이득을 따지며 본질과 벗어난 말과 행동을 두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 오제이 심슨 사건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심슨은 형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았다. 바로 집으로 와서 축하 파티를 벌였다. 이후 민사에서는 유죄를 받아서 살해된 이들에게 3500만 달러 상당의 배상금을 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되고, 막 살아가던 심슨은 강도 행각까지 벌여 10년 가까이 감옥 생활을 했다. 가석방 후에 과거의 명성에 기대어 SNS 인플루언서가 되려고 까지 했던 그는 작년에 76세의 나이로 어쨌든 자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