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달라진 설날의 의미… 전통도 '재구성'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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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달라진 설날의 의미… 전통도 '재구성' 된다
431. 설날 묵상
  • 입력 : 2025. 01.23(목) 17:52
월출산 천황봉 일출.
을사년을 푸른뱀의 해라고 하니 푸른색이 어쩌고 뱀이 어쩌고 호들갑을 떨었다. 예외 없이 질문이 들어온다. 그거 음력 설날 기점 아닌가? 맞다. 갑오개혁 이후 태양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본래 음력 설날이 육십갑자 구성의 기점 아닌가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025년 시작되던 날 본 칼럼을 통해서 을사년과 뱀의 의미를 말한 바 있다. 설날이라는 기점이 동짓날, 양력 설날, 음력 설날, 입춘, 심지어 삼월삼짇날까지 변화해 왔다. 설날이 고정되어 있던 게 아니다. 물론 오랫동안 음력을 사용해 왔으니 그중 음력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문제 삼을 것은, 음력이건 양력이건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이다. 신원, 신일, 원일, 원정, 정일 등의 호명이 그렇다. ‘설’이라는 낱말 자체가 ‘낯설다’에서 온 말이다. 민속예능에 ‘설쇠’, ‘설장구’, ‘설소리’ 따위의 으뜸을 말하는 용례가 있다. ‘설’은 한 해의 가장 으뜸 날이라는 의미이며 나이 ‘살’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춘절(春節)이라는 어의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로 거슬러 오를수록 하루가 아닌 기간이라는 의미를 포괄한다. 내가 마한 소도의 오월제 즉 씨뿌리는 시즌을 새해의 기점으로 추정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설날은 4월13일 송끄란(물축제 하는 날)이다. 중국의 춘절을 비롯한 우리나라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였다. 1896년 양력으로 바뀌었다. 양력설을 일본설이라 했다. 그렇다고 음력설의 전통이 무너져버린 것은 아니다. 구정과 신정으로 바꾸어 부르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공휴일로 지정됐다. 1999년부터 3일간 연휴가 되면서 음력설이 복원됐다. 그러다 보니 양력설과 음력설을 쇠는 집안으로 나뉘기도 하고 양력과 음력 휴가를 선택하는 등 새로운 풍속이 펼쳐지게 됐다.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다. 양력과 음력으로 설을 두 번 쇤다는 뜻이다. 이는 근대 문화와 전통문화의 병존 혹은 충돌이라는 함의를 지닌다. 마치 전통적인 나이 셈법을 없애고 만 나이로 통일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나이 셈법을 고집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혹은 결혼식 끝난 후 반드시 폐백이라는 전통적인 의례를 갖추고자 하는 심리와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양력설을 쇠지만 음력설을 인정한다든지 음력설을 쇠지만 양력설을 포기할 수 없다든지 하는 태도나 시선이 그것이다. 이 심리가 적어도 2025년 설날을 맞이하는 우리 심중에 넓고도 깊게 포진해 있다.



이중과세(二重過歲), 음력설과 양력설의 충돌과 병존

일제강점기 이중과세의 충돌이 빈번하게 지적되었다. 서울에 한정된 연구이긴 하지만, 안주영의 ‘일제강점기 경성의 음력설과 양력설-북촌과 남촌을 중심으로(비교민속학, 2010)’가 흥미롭다. 당시 조선총독부와 언론에서 양력설을 강조하고 이중과세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력설 만이 우리의 설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게 요지다. 많은 세시풍속 중에서 유독 ‘설’만을 두고 일제강점기 내내 논란이 지속된 이유는 양력설을 내세운 일본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식민시기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음력설이 조선 명절이라는 정체성을 경성의 조선인들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보통 음력설 억압 전통이 지속된 데는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 김문겸이 ‘설날 이중과세에 내포된 사회학적 함의(문화와 사회, 2019)’에서 주장하는 바가 그렇다. “1894년부터 시행된 갑오개혁 때 폐지된 과거제도는 전통적인 한학 지식인을 일거에 몰아내고 일본과 서구의 문물에 경사된 신지식인층을 한국의 지배층으로 부상시킨다. 이들은 근대성과 전통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전통적인 세시풍습이나 생활풍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특히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는 우리의 전통적인 세시풍속과 크게 마찰을 일으킨다(우상인 조상신에게 절을 안 한다는 등).” 이후 1985년 민속의 날 지정까지 이중과세의 충돌과 교섭 양상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지금까지 양력설과 음력설을 번갈아 쇠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할까? 표인주는 ‘시간 민속의 체험주의적 이해(민속학연구, 2020)’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시행사는 기본적으로 생업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 약화되거나 바뀌기 마련이다. 생업구조는 자연환경의 변화를 비롯해 사회적 구조, 역사적 사건 등에 영향을 받는다.(중략) 따라서 세시행사의 지속과 변화에 어떠한 요인이 작용하고, 세시행사의 본질적인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그리고 어떠한 세시행사가 새롭게 정착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다. 설날을 포함한 명절의 의미가 지금처럼 분화된 적도 없었던 듯하다. 본질적인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MZ세대들은 음력설의 의미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거나 이해한다. 고향과 조상 묘를 찾거나 부모님 계시던 곳을 찾던 기성세대들과는 다르다. 휴가라는 정도의 인식이 그나마 같지 않을까 싶다. 2025년 음력 설날을 맞이하며 민속학자로서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난감하다. 뻔한 전통타령으로는 동시대인들의 공명을 이끌 수 없다. 농업을 기반 삼던 음력설의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돌아와 버린 것일까? 이중과세 음력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어찌 재영토화할지 다만 묵상할 따름이다.



남도인문학팁

설날은 나를 성찰하는 귀성(歸省)의 날

설날 역귀성이 일어난 지 이미 오래됐다. 자녀들이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자녀를 찾아 상경하는 풍속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향 마을에서 연행하던 설빔(歲粧), 차례(茶禮), 세배(歲拜), 덕담(德談), 문안비(問安婢), 세화(歲畫), 소발(燒髮), 볏가릿대(禾竿), 부럼(嚼癤), 엿치기(齒較), 귀밝이술(耳明酒), 나무 시집보내기(稼樹), 오곡밥(五穀飯), 약밥(藥食), 안택(安宅) 등의 세시의례가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연행되던 풍속이니 이름이라도 잊지 말자고 기록해 둘 따름이다. 양력설이 한 해 시작이라는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음력설의 의미를 도드라지게 하기도 쉽지 않다. 2022년 기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5%인 750만에 달한다는 점도 귀성의 발길을 저해한다. 귀성하기를 꺼리는 비율이 높아진다. 명절의 의미가 본질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목도한다. 지금은 과도기다. 일제강점기 이래 충돌하거나 병존해 온 이중과세를 벗어나는 아이디어가 긴요해 보인다. 한해의 출발점으로 삼는 날은 양력설로 족하다. 문제는 음력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영토화할 것인가이다. 귀성은 막연히 귀향한다는 게 아니다. 돌아와(歸) 살핀다는(省) 뜻이다. 어디로 돌아와 누구를 살핀다는 것인가? 내 근원의 자리로 돌아와 나를 살핀다는 뜻이다. 이것이 귀성(歸省)의 본뜻이다. 고향마을이어도 좋고 도시의 자식들 집이어도 좋다. 해외나 관광지여도 무방하다. 지치고 힘든 지난해의 자신을 돌아보고, 양력설에 이미 세운 계획을 가다듬는 그런 장소면 족하다. 성찰에 대한 아이디어나 프로그램은 차차 말하기로 한다. 더불어 시간의 매듭에 이름을 붙인다는 명절(名節)의 어의를 상고할 수 있다면 장차 새로운 설날 풍경이 정착되지 않겠는가.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네 조상들이 이중과세로 전전반측했듯 MZ세대는 또한 설날의 재영토화를 전전긍긍한다. 과거를 답습하는 것을 인습(因習)이라 한다. 전통(傳統)은 전(傳)해서 합한다는(統) 뜻으로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