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제 감독 ‘보고타’.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성제 감독 ‘보고타’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지난 IMF 외환위기 때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크고 작은 기업들의 줄도산과 해직의 칼바람으로 온 나라에 회오리 바람이 불었던 때였다. 당시 필자의 동료교수에게 일어난 일이다. 밤늦게 서울에서 내려오던 Y교수가 고속도로에서 접촉사고를 냈다 한다. 앞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사업이 망해서 죽으려고 남쪽 바다로 향하던 길인데, 도대체 왜 내 차를 받아서 멈추게 해요!”라고 내지르더란다. 놀란 Y교수는 “아저씨, 대체 왜 죽으려 해요. 희망을 가지세요. 제발 죽지 마세요!!”를 수차례 당부하고서 헤어졌다 했다. 당시 시국의 한 단편이었다.
영화 ‘보고타’는 그때 그 시절 IMF 구제금융 위기로 온 나라가 흔들리던 1997년이 배경이다. 19세 국희(배우 송중기)는 사업에 망한 부모님 따라 지구 반대편 나라 남미의 콜롬비아로, 인구 1000만에 육박하는 수도 보고타로 이민을 오게 된다. 아버지(배우 김종수) 말로는 미국 이민 가기 전 경유지라 했다. 월남전 전우였던 박 병장(배우 권해효)이 지금은 성공한 보고타 한인회장이라서 자신에게 은혜를 갚을 거라며 호언장담도 했다. 그렇지만, 막상 만나 본 박 회장은 썩 달가워하지 않은 눈치다. 당시의 콜롬비아는 국희 가족에게 도착 첫날부터 신고식을 치르게 한다. 택시의 창을 깨고 아버지의 돈가방을 훔쳐가는 오토바이 강도가 비일비재하고 불법이 난무하는 후진국이라서 이들 가족의 미래는 난항이 예상되기만 한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인 상인회의 권력을 쥔 박 회장 밑에서 일을 시작한 국희. 한인들이 보고타 시장에서 한국 의류를 팔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데에는 한국으로부터의 불법 밀수를 부패한 세관원과의 결탁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 총책인 박 회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대뽀를 앞세우는 국희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인다. 빈촌인 1구역에서 부촌인 6구역으로의 점핑을 목표로 삼게 된 국희는 박 회장의 의류 밀수에 가담하게 되고, 콜롬비아 세관에게 걸릴 위기상황 속에서 목숨 걸고 박 회장의 물건을 지켜내며 강렬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대우자동차 파견직원이었다가 그룹이 도산하자 귀국하지 않고 보고타에 눌러 앉아 통관 브로커가 된 수영(배우 이희준). 그 역시 자신의 야망에 따라 국희에게 위험한 제안을 하고, 이를 눈치챈 박 회장 또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국희를 시험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보고타 한인 사회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음을 체감한 국희는 점점 더 큰 성공을 열망한다. 불법의 세계에 발을 디디며 밀수와 돈세탁을 배워가는 등 점점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국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는 법을 모를 정도로 흑화해 가는 인물이다.
감독은 대체 이 스토리와 인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 정도의 근성과 치열함이라면 제 아무리 IMF 치하라 해도 한국에서 뭔들 해결해 나가지 못할 일이 없었을 것 아니었겠는가 싶어서다. 짐작건대, 돈 때문에 총을 맞은 아버지, 19세 소년이 아름다운 청년기를 흑화로써 성장해 가는 ‘비극’을 강조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한국은 슬기로운 김대중 대통령의 ‘금 모으기 운동’ 덕에 그리고 국민들의 적극적 부응과 능동적 성원 덕에 최단기에 IMF 치하를 졸업하였다. 이로써 한국인의 국민성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국내에서야 그럴 만한 일이거늘 했겠지만, 세계인들은 “대체 저 조그마한 나라에서 국민들이 어떻게 저리도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지 놀라운 일”이라며 크게 감탄했다 한다. 1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북미나 유럽을 가면 ‘국민들의 금 모으기로 IMF 위기를 극복한 훌륭한 나라’라는 찬사를 듣곤 했다. 역시 한국인은 훌륭한 국민성을 지녔다. 지도자만 훌륭하면 될 터인데…. 새해가 되어도 매일이 걱정이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