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에 위치한 AI창업캠프. 창업캠프 입주기업이 2022년 107개에서 올해 84개로 20여개가 줄었다. 기업들은 임대료 할인 등의 혜택 외에 사무실 추가 확보, 기업 간 네트워킹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I 창업캠프 제공. |
광주시와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창업캠프 등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인력 확보 대책 마련과 실증 환경의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 ‘창업캠프’ 입주기업 선호도 낮아
광주시는 AI 창업을 지원하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광주 ‘AI 창업캠프’와 ‘아이플렉스’를 운영하고 있다. AI 창업캠프는 인공지능집적단지 완공 전까지 임시 운영되는 시설로, 기업들이 임대료와 관리비 부담 없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창업캠프에는 1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아이플렉스는 지식서비스 산업과 첨단 제조업, 연구개발 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을 위한 시설로, 시제품 제작이 가능한 3D 프린터 시설 ‘비즈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있으며 60여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시설에 대한 기업들의 선호도는 높지 않다.
창업캠프의 편의시설은 비즈니스 라운지와 회의실, AI협력프로젝트존 등을 갖추고 임대료 할인 등 혜택이 있지만 입주기업은 점점 줄고 있다. 2022년 107개사였던 입주기업은 지난해 96개사, 올해 84개사로 줄었다.
2020년 입주해 3년 뒤 창업캠프를 나왔다는 업체 A대표는 “AI를 개발하려면 고가의 GPU(Graphics Processing Unit)를 사용해야 되는데 창업캠프 입주기업은 경제적 여력이 없어 캠프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데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며 “회사가 커져서 직원이 10명으로 늘어나 사무실 등의 추가 임대가 필요했지만 ‘1기업 1사무실 제공’ 규정 탓에 이곳을 나와 따로 사무실을 얻었다”고 말했다.
광주시의 보조금 지원 조건이 스타트업 기업이 충족시키기엔 과도하게 높은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광주시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유치기업에 최대 3억 5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기본요건이 투자금액 1억원 이상에 상시 고용인원 5명 이상이어야 한다. 투자금액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시 고용인원을 맞추기가 어렵다. AI 관련 인재를 구하기 어렵고 인건비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분야 기업 대표 B씨는 “광주시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등은 스타트업 기업이 받기 힘든 조건이 많다. 인건비, 사무실 임대비, 투자비, 대출 이자 등 부담해야 되는 것들이 많은데, 수요를 파악해서 더 촘촘하게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시에서 기업들끼리 기술개발 정보 및 시장 상황 등에 대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을 해주는 것도 크지 않다보니 창업캠프에 있을 이유가 없어지고, 광주에서 기업할 이유도 사라진다. 솔직히 기업은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제품 판매하기도 훨씬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일부 창업캠프 입주기업들이 폐쇄한 것은 알고 있지만 기업 사정에 따라 일시적으로 문을 닫은 것”이라며 “2025년 예산에 AI기업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 만큼, 유치 기업에 대한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 인공지능사관학교는 2020년 첫 모집 이후 4년간 인공지능(AI) 교육과정을 통해 총 916명의 인력을 배출했다. AI기업들은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취업 위주 단기 교육과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광주 동구에 위치한 광주인공지능사관학교. |
AI기업들은 안정적인 인력이 확보돼야 광주에 정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AI 관련 기업은 프로그램 등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석·박사급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광주에는 AI전문인력을 키워내는 인공지능사관학교가 운영 중이다. 인공지능사관학교는 2020년 첫 모집 이후 4년간 탄탄한 인공지능 교육과정을 통해 총 916명의 우수 인력을 배출했다. 1~3기 졸업생 중 64%가 취·창업에 성공했으며, 4기는 졸업 전 14명이 조기 취업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1기에는 1045명이 지원한 가운데 180명이 선발됐고 55명(68.8%)이 취·창업했다. 2기는 609명 중 180명이 선발돼 49명(50%)이 취·창업했다. 3기는 772명 중 330명 선발 199명(72.9%) 취·창업, 4기는 119명 중 330명 선발 157명(57.1%) 취·창업했다. 5기는 712명 중 330명이 선발돼 현재 교육 중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사관학교 졸업자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 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석·박사급 인재를 원한다. 기업 입장에선 사관학교 출신 수료자들은 ‘단기 과정’을 이수한 인력에 불과하다. 산업 실정이나 잠재적 수요를 제대로 분석·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국비 교육과정만 늘렸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단기 과정’ 출신들을 뽑지 않는 현실에 사관학교 경쟁률도 하락하고 있다. 첫해였던 2020년 제1기가 5.8대 1을 기록한 이후 2021년 제2기 3.4대 1, 2022년 제3기 2.3대 1, 2023년 제4기 2.4대 1, 제5기 2.1대 1등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하락세는 3기(2022년)부터 모집생이 180명에서 330명으로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줬지만,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서는 경쟁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사관학교 수료생은 “경력, 전공자 입장에서는 수업 대부분이 기초적이다. 대부분 취업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어 창업 관련 특강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 기업 수요 못 따라가는 실증 실적
실증환경 인프라 부족도 기업들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실증 자료는 투자자나 파트너사를 설득하기 위해 중요한 근거가 된다. 실증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기업은 투자자에게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고, 이는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
광주에 자리잡은 기업들은 인력 확보와 실증 환경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고, 기업이 신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 인재 육성과정의 질적 향상, 실증 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광주시는 지난 2020년부터 445억8000만원을 들여 자동차, 에너지, 헬스케어 3가지 분야에 77종의 실증장비를 도입해 인프라를 조성했지만 기업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를 노출했다. 광주시의 연도별 실증 수요조사에 따르면 △2021년 86건 △2022년 62건 △2023년 58건의 기업 실증 요구가 있었지만 실제 실증은 △2021년 8건 △2022년 9건 △2023년 11건에 그쳤다.
광주시는 목표치였던 △2021년 6건 △2022년 9건 △2023년 9건을 초과 달성했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한 기업당 실증기간이 1년씩 걸리는 등 시간이 오래 걸려 단순히 실적 건수만 놓고 보면 많지 않을 수 있다”며 “기업들에게 실증 단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광주시도 인프라를 조성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록 광주연구원 첨단산업도시연구실장은 “AI 집적단지 1단계에서 인프라 조성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명확하다”며 “글로벌 전문가 영입을 통해 지역 내 스타트업 창업지원과 기업과의 선제적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증도 자동차, 에너지, 헬스케어 분야에 한정돼있다. 가전, 문화콘텐츠 등의 산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벤처기업, 투자자, 대학, 연구기관이 소통·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광주역 창업밸리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