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9> 락 페스티벌 시초이자 미국 시대문화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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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9> 락 페스티벌 시초이자 미국 시대문화의 아이콘
뉴욕, 뉴욕, 뉴욕-밥 딜런 그리고 우드스탁페스티벌(Woodstock Art and Music Fair)
  • 입력 : 2022. 11.17(목) 16:56
  • 편집에디터
우드스탁. 차노휘

오래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의도치 않게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된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마침내 온 대지를 점령해버린 날이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거장으로 향할 때였다. 종아리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을 밟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야 했던 그 밤 나는 Pink Floyd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앨범을 통째로 영화화한 앨런 파커(Alan Parker)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을 비디오로 보게 되었고 CD를 소유하게 되면서부터는 닳도록 반복해서 보고 들었다. 지금도 《Wish You were Here》을 들을 때면 그 밤의 백색 어둠이 떠오른다. 백색 어둠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불안보다는 아늑한 새장에 기분 좋게 갇힌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일까. 나는 핑크 플로이드 LP앨범을 보면 무조건 사고 싶어진다. 우드스탁에서도 다른 뮤지션 앨범보다 몇 배나 비싸게 파는 LP 앨범 세 장을 음반 상점과 벼룩시장에서 간신히 찾아서 구매한 것은 핑크 플로이드와의 강렬한 첫만남을 잊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드스탁. 차노휘

우드스탁은 미국 뉴욕주(州) 남동부에 있는 도시이다. 음반 상점뿐만 아니라 갤러리, 예술가 레지던스 공간 등 그야말로 예술인들의 둥지라고 할 수 있다. 지형 조건 또한 축복받았다. 낮은 구릉과 저수지, 잘 가꾼 숲은 팬시처럼 정겨움을 자아내는 오밀조밀하게 모인 상점과 잘 어우러졌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사계절 내내 휴식처와 같은 공간을 제공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곳을 방문한 날은 햇살마저도 어린 아이의 정수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자비로웠다. 상점 앞에 전시된 재치 있는 캐릭터 형상들, 집 뜰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 북적거리는 벼룩시장, 자신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인상 좋은 화가. 그녀가 내게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명함을 건넸다. 또한 우드스탁은 핑크 플로이드 못지않게 기존 음악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시도하는 등 실험을 즐겼던 뮤지션인 밥 딜런의 고향이기도 했다.

우드스탁. 차노휘

밥 딜런(Bob Dylan, Robert Allen Zimmerman, 1941~)은 대중가수 최초로 노벨문학상(2016)을 수상했다. 그의 노래가사는 시적인 표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해하기까지 하다. 1970년대부터 영문학계에서는 그의 노랫말을 텍스트로 하는 학위 논문이 나왔다. 대학교에서 그에 관한 강의까지 개설되었다. 그는 대중적이면서도 학문적이고 학문적이면서 대중적이었다. 뮤지션이자 시인이며 화가였다. 또한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였다. 밥 딜런의 재능을 기리기 위해서인 듯 1969년 8월 15일, 그의 고향인 우드스탁에서 음악회(Woodstock Art and Music Fair)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196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전환기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동서로 분할되고,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각축장이 되어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두 제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어디에도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한 곳이 미국이었다. 설상가상 1969년에는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반전시위 등의 여러 사회문제들이 곪을 대로 곪아 터진 해이기도 했다. 그 당시 미국의 현실을 가장 적확하게 노래한 사람이 바로 밥 딜런이었다. 그는 대중가요에 부재했던 사회비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불렀다.

핑크 플로이드 앨범 사기. 차노휘

길거리 아티스트. 차노휘

주민의 반대로 비록 우드스탁에서 약 70km 떨어진 베델(Bethel) 평원에서 열렸지만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산타나, 조앤 바에즈, 더 후, 그레이트풀 데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하여 전 세계 팝 역사를 뒤흔드는 전대미문의 음악 축제, 아니 음악 사건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정신을 음악으로 표출했다. 물론, 당시 기성세대와 정부가 그 행사를 곱게 볼 리 없었다. 언론의 힘이 컸던 시대였던 만큼 여론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악천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별다른 사고 없이 그들은 맘껏 그들의 열린 세상을 즐겼다. 뉴욕의 광활한 평야에서 3일 동안 50만 명의 젊은이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했지만 158명이라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한 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드스탁페스티벌은 모든 락 페스티벌의 시초이자 미국 시대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저항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골목 어디에선가 한번쯤은 맞닥뜨려봤을 우드스탁이라는 간판에서처럼 어느 사이 한국 사회의 한 시대와도 깊숙이 연결되었다. 2023년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을 맞아 마침내 한국에서 개최된다고 하니 말이다. 이 땅에서 3일 동안 열릴 축제 기간 동안 50만 명이 모일지, 그 이상·이하가 될 지 확실치 않지만 확실한 것은 안전 페스티벌을 위해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벼룩시장에서 핑크 플로이드 앨범 사기. 차노휘

핑크 플로이드 초기 앨범 160달러. 차노휘

우드스탁 음반가게. 차노휘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