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요? 전 '엄마'라 불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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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브로커요? 전 '엄마'라 불리고 싶어요"
광주 영아일시보호소 가보니|| 영화 ‘브로커’ 인기…미아에 관심 ||1976년 설립 결손가정 아동 보호 ||시대 변하면서 유기 사례 줄었지만 ||갈 곳 없는 아이 한해에만 40여명
  • 입력 : 2022. 07.04(월) 16:52
  • 도선인 기자

지난 27일 찾은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맡겨진 아이들이 지도원 선생님과 함께 머무르고 있다.

"공감 많이 되죠. 유기가 많을 때는 아침마다 보호소 문 앞에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있었어요. 겨울이면 추울까, 여름이면 더울까. 맘 졸였죠."

저마다 사정으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짧게 3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잠시만 지낼 수 있는 광주영아일시보호소.

아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가정과 만남을, 지도원 선생들은 헤어짐의 시간을 보낸다. 100% 엄마의 품과 같을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아이들은 부모의 부재를 이곳에서 잊을 수 있다.

칸 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는 가정에서 키울 형편이 안돼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를 둘러싼 이야기다. 극 중에서 송강호와 강동원은 아이의 양부모를 찾는 브로커로 등장하는데, 광주에서 영아일시보호소가 지난 1976년 개소한 이래 이러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브로커라는 말보다 아이들 엄마로 남고 싶어요."

1990년 광주영아일시보소호에 입사한 23살의 앳된 아가씨는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아이들의 엄마를 자처했다. 부모의 따뜻한 품을 모른채 질병을 앓는 아이들을 보며 정작 본인도 가슴을 졸이고 앓으면서 수많은 밤들을 지새웠고 어느새 원장이 됐다.

강춘심 원장은 "CCTV가 많이 생기고 인식이 바뀌면서 요즘 유기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도 "유기가 많을 때는 아침마다 문 앞에 포대기가 놓여 있었다. '꼭 데려오겠다'는 쪽지는 있지만 대부분 이곳에 맡겨지면 부모가 다시 아이를 찾는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강춘심 광주영아일시보호소 원장.

시대가 변하면서 유기 사례는 줄었지만,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사정은 더 가슴 아픈 경우가 많다. 학대 및 방치, 결손가정, 미혼부모가정, 빈곤, 실직 등의 이유로 매년 40여명의 아이들이 이곳에 맡겨진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여론은 두 가지 '최악의 선택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죄책감 없이 아이를 쉽게 버린다'로 나눠 논란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논쟁은 무의미할 정도로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영아는 보통 만 3세까지의 아이를 가리키는데, 5살이 될 때까지도 광주영아일시보호소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갈 곳이 없어서다. 코로나19 여파와 입양에 앞서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입양이 법원 허가제로 바뀌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입양을 희망하는 가정도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6~2019년 600~800명 수준을 유지하던 입양 아동 수는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492명으로 대폭 줄었다. 2021년 입양 아동 수는 415명까지 감소했다.

지난해 광주영아일시보호소를 퇴소한 38명의 아이 중에서도 입양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퇴소 아이들은 △귀가조치 4명 △양육시설, 그룹홈 등으로 시설전원 26명 △가정위탁 3명 △기타 5명으로 조치됐다.

2017년 출생인 정은별(가명) 양도 경기도 군포시의 한 베이비박스를 통해 맡겨졌으며 인근 지역에서 수용할 곳이 없어 광주까지 오게 됐다. 발견 당시 '제대 후 꼭 찾으러 오겠다'는 쪽지가 함께 있었지만,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네 살이 될 때까지 보호소에 머물렀다.

강 원장은 "데리러 오겠다는 말이 있으면 일단 임시 보호 개념으로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결국 귀가조치가 안되면 입양을 보내거나 양육시설로 보내야 한다"며 "특히 은별이는 신장 쪽에 문제가 있어 입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건강 문제가 있어 일반 양육시설로 보내기도 걱정돼 네 살이 될 때까지 돌보던 중 위탁가정 센터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맡겨진 아이들의 특성상 출산 여건이 안되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제대로 된 건강관리가 안 된 만큼 신생아 때부터 폐렴 증상이 있다거나 면역력이 취약하다거나 일반 가정의 아이들보다 건강이 좋지 않다.

현재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 37명 중 15명이 저마다 성장에 있어 건강상 문제가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들어온 유하민(가명) 군은 구개골이 파열된 채로 태어나 긴급 상황에서 관내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퇴원하고 성형수술 때까지 하민이를 전문적으로 간호할 인력이 없다.

이에 대해 강 원장은 "보호소에도 지도원 선생님들과 간호사, 영양사 등 전문 인력이 있지만, 특히 중증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영양, 간호, 재활 파트에서 일대일로 전담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며 "광주에 중증장애 영아들을 일시 보호할 수 있는 전담 시설이 필요하다. 이는 일반 양육시설과 다른 개념이다"고 간절한 바람을 피력했다.

지난해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아이들이 놀이 학습을 하고 있다. 광주영아일시보호소 제공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