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시인 곽재구와 화가 한희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오피니언

시인 곽재구와 화가 한희원

게재 2022-06-14 15:04:31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 사평역은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공간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곽시인의 등단작인 이 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긴 문학적 생명력을 보여준다. '사평역에서'의 풍경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담담하면서도 그림처럼 다가온다. 어느 눈보라치는 겨울밤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톱밥난로 곁에 쪼그리고 앉은 이들은 엄혹하고 처절했던 80년을 겪은 힘들지만 묵묵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이다. 임철우에 의해 소설 '사평역'으로 쓰여졌던 이 시는 화가 한희원에 의해 지난 2003년 광주 남구종합문화예술회관 개관 기념전에서 '사평역에서'의 13개연이 그림으로 묘사돼 선보였다.

곽재구 시인과 한희원 화가는 죽이 잘맞는 절친이다. 나이는 곽시인이 한 살 위이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지음(知音)같은 사이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성격인 두사람은 젊은 시절에 오월시 동인으로, 광주 미술인 공동체 회원으로 남도의 정서를 바탕으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시로 그림으로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되고 있는 풍부한 서정적 감성은 '시같은 그림', '그림같은 시'로, 많은 팬을 확보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1993년 한희원 화가의 첫 개인전 카다로그 글을 곽 시인이 쓴 것이 계기가 됐다. 곽 시인이 조대 미대를 졸업한 지 11년만에 데뷔전을 갖는 한희원 화가를 위한 글을 쓴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곽 시인이 그의 친구로부터 한희원 화가의 전시 글 청탁을 받고 들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느낌이 너무 좋아 하룻밤만에 원고지 60장의 칸을 꾹꾹 메워 전업작가의 출발을 축하하고 응원했다.

30년동안 우정을 이어온 이들이 순천에서 다시 의기투합했다. 이번에는 곽재구 시인이 한희원 초대전을 마련했다. 시인은 품격있는 화가라는 뜻의 '화사'(畵士)로 칭하며, 친구의 화필 열정을 예우해준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시인이 화가인 친구를 시인으로서, 대우해주는 무대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 작가가 지난 2019년 흑해 연안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1년동안 체류하며 그린 그림과 쓴 시가 선보인다. 1년간의 작업이 전성현 원장, 조덕선 SRB 미디어그룹회장, 이상철 화인테크 회장 등의 후원에 의한 자발적 고립이었음에도 아는 사람 한명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그가 감내한 외로움과 고독은 실로 컸다고 했다. 고립된 그곳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기처럼 써내려간 시와 그림속에는 치열한 예술혼으로 버텨낸 외로움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같다.

몇 년전 서울 명문대생이던 그의 아들이 성옥문화재단 장학금을 받는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곽 시인이 순천대 교수 퇴임후 문을 연 순천 창작의집 은하수 갤러리에서 한희원 초대전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지하 갤러리에 빨간색 여행캐리어 표면위에 있는 파란 사내가 맞는다. 트빌리시에서 이방인이었던 화가의 모습이다. '이방인의 소묘, 그리고 시'전시회는 6월 29일까지. 시와 그림으로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70대 청년'들의 우정이 빛난다. 이용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