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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만개의 꽃들 속에 은닉된 참음과 기다림 혹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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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만개의 꽃들 속에 은닉된 참음과 기다림 혹은 용서

인동초(忍冬草)
설중매며 수선화며 난초들이
풍설 견디는 것은 한가지지만
오로지 인동만이 숱한 봄날을
더 보내고 꽃을 피우지 않는가
마치 우리네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이 오만 풍설 다 겪고
수백 수천 날 주름살 더하고도
제대로 못 피우는 처지라고 할까

게재 2022-06-09 14:42:46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의 시, 인동차(忍冬茶)이다. 다 타지 않은 덩그럭 불, 물에 삶아 우려낸 인동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윽하다 못해 간절하다. 김 서린 흙냄새를 맡으며 바깥을 내다보니 눈바람 가득하다. 달력도 없는 어느 골짝 산중일 것이기에, 시간의 들고남이 무슨 상관이랴. 한겨울 내내 따닥따닥 타들어 가는 장작불이 무심할 뿐이다. 노인으로 표현된 화자는 탈속한 승려일까 오랜 병에 시달린 환자일까. 적어도 지천명은 넘은 나이일 것이다. 인동 삶은 따뜻한 차가 창자의 깊은 어딘가로, 아니 모세혈관의 깊디깊은 어딘가로 흘러든다. 냉온의 격차가 끌어당기고 밀어낸다. 생동하는 기운이 몸 안과 몸 밖을 공전(公轉)한다. 어디 몸뿐이겠는가. 맘 밖과 맘 안 또한 그러하니 어찌 음양이 다르겠는가. 수도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생불일여(生佛一如), 중생과 부처의 본성이 이와 다르지 않다. 흩날리는 눈발에 시선을 두고 참척(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골똘하게 쓴다는 뜻)할 따름이다. 다만 시선이 멈추는 곳은 파릇한 무순, 그늘 속에 솟는 양의 기운이다. 화자의 능청맞은 시선이다. 무심한 듯 하이얀 삼동의 그늘, 이것이 해탈의 경계 아래 은닉한 복선(伏線)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애오라지 겨울의 그늘에 가린, 안으로 눈을 떠야만 보이는 것을.

인동초(忍冬草), 겨울(冬)을 견뎌내야(忍) 피는 꽃이란 뜻이다. 비중으로 치자면 오히려 눈 속에 피어나는 설중매나 난초, 혹은 수선화 따위가 그러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 꽃에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나무에 속하기 때문에 인동덩굴이라 한다. 굳이 풀(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알지 못하겠다. 겨울을 견뎌냈으니 겨우살이덩굴이라는 이름이 일반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이 덩굴을 상징으로 삼았다. 당초문(唐草紋)이라 한다. 기와 등의 유물, 고분의 문양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노옹수(老翁鬚), 노사등(鷺鷥藤), 좌전등(左纏藤), 수양등(水楊藤), 밀보등(密補藤), 능박나무 등의 이름이 연관 있다. 재래종은 한자리 좌우로 두 가닥 꽃이 핀다. 흰색이었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금은화, 금은등(金銀藤), 은화동, 이포화(二苞花), 이보화(二寶花), 이화(二花), 쌍화(雙花), 다엽화(茶葉花) 등의 이름이 생겼다. (금차고(金次股) 등 재화의 의미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금은화(金銀花), 모두 겨우살이꽃으로 번역된다. 통령초(通靈草)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약이나 차로 마신다. 몸을 넘어 넋(靈)까지 다스린다는 뜻일까? 인동차로 앓아누운 세자의 피부를 고쳤다는 내용이<정조실록>에 나온다. 몸과 맘을 모두 다스리는 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겨울만 견디랴 숱한 봄날마저 견뎌야 하는 것을

"숙종 26년(1700)의 과거 시험에서 별도로 피봉(겉봉)을 만들어, 입격(합격)한 다른 사람의 시권과 몰래 합하게 하고 이름을 바꾸어 함부로 합격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하였다(중략). 송성 같은 거간꾼의 무리야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출방하던 처음에 이런 동요가 있었다. '어사화(御賜花)냐 금은화(金銀花)냐?' 이때에 이르러 백금의 말이 여러 공초에 어지럽게 있었으니 그 말이 과연 맞게 되었다." <숙종실록> 34권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주지하듯이 어사화는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이다. 이 기사에서 인용한 민요는 부정으로 합격한 자를 민중들이 놀리며 부른 노래다.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라서 참요(讖謠)라 한다. 금은화(겨우살이덩굴)는 댓구로 쓰였으므로, 격조의 낮음을 비유한 것이다. 들녘에 피는 '하찮은 꽃'이라는 뉘앙스다. 그래서일까. 우리네 선조들은 설중매며 국화며 난초 등 차고 넘치는 노래들을 지었는데, 인동에 대한 노래는 희소하다. 고대로부터 부귀와 공명의 상징으로 차용되었던 당초문(唐草紋)이라면 이율배반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인동초가 당초문양의 모티프라는 해석이 틀린 것이다. 숙종연간 어사화와 금은화를 노래한 참요가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부정으로 얻은 어사화와 들판의 하찮은 인동초의 댓구 말이다.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 초의는 두륜산 중턱에 못을 파고 초가를 지었는데, 나는 초의가 난 자리로 돌아와 인동초 몇 줌을 심었다. 옛 인연의 정승이 있겠는가. 달 비치는 연못이 있겠는가. 그저 이름도 빛도 없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죽고 또 태어나는 산자락일 뿐이다. 보아하니 장독대 주면 인동초가 만개하였다. 지난겨울 잘 견뎌낸 덕분이기도 하지만 모진 봄 가뭄을 잘 견뎌낸 까닭도 있으리라. 흙냄새 훈훈한 인동의 향을 맡노라니 비로소 알겠다. 발에 밟히도록 흔한 덩굴에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 말이다. 설중매며 수선화며 난초들이 풍설 견디는 것은 한가지지만, 오로지 인동만이 숱한 봄날을 더 보내고서야 꽃을 피우지 않는가. 마치 우리네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이 오만 풍설 다 겪고 수백 수천 날 주름살 더하고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처지라고나 할까. 더구나 꽃(花)도 아니고 나무(木)도 아닌 풀(草)이라니.

그래서 김대중에게 인동초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그에 비유하자면 인동초야말로 개천에서 난 꽃이고 용이다. 다들 나고 자라 생장하는데도 웅크리고 있다가, 따스한 날 모두 보내고서야 만개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노래했듯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 애오라지 잠룡(潛龍)이다. 진정한 인고(忍苦)란 그런 것 아닐까? 눈에 보이는 풍설 뿐만 아니라, 만개의 꽃들 속에 은닉된 참음과 기다림과 혹은 용서와 화해 같은 것 말이다. 새로 이름을 지어야겠다. 인동춘초(忍冬春草), 곧 겨울과 봄을 다 견뎌내야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어사화인가 금은화인가,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당의 인동초가 유난히 깊다.

남도인문학팁

김대중과 인동초

일반적으로 인동초 하면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린다. 명실상부한 김대중 별칭이다. 1987년 9월, 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동트는 민주와 민중의 새벽을 앞장서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의 삶이 암살과 사형의 위기를 넘고 갖은 풍상을 견디며 이룩해낸 인고의 꽃이었다는 점에서 비유는 적절하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이 꽃 중의 꽃일 것이다. 김귀옥은 <김대중 평화사상의 형성과 정치적 실천>(통일과 평화, 2020)에서 이렇게 말한다. "많은 정치가가 최고의 권력을 갖게 되면 받은 만큼 돌려주는 함무라비식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를 실천해왔다면, 김대중은 평화의 관점에서 피해회복을 목표로 두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개념을 포함한 창조적 정의(creative justice)를 통해 새로운 정의와 화해의 길을 제시했다." 여름의 초입 내 마당에 핀 인동초를 보며 묵상하는 마음 심히 무겁다. 기껏 쌓아왔던 평화와 화해의 성과들을 내동댕이치고 성차별과 계급차별 등 어떤 편력에 기대 퇴행을 거듭하는 정치권의 행보 때문일까. 그저 벽에 대고 욕설 내뱉는 내 처지가 곤궁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