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3> 완주 인증… "걷는 것은 나를 단련 시키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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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3> 완주 인증… "걷는 것은 나를 단련 시키는 과정"
놀멍 쉬멍 걸으멍,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제주 올레길
  • 입력 : 2022. 03.24(목) 16:42
  • 편집에디터

제주여객터미널. 차노휘

제주의 시작이자 끝인 섬, 제주올레 18-1 추자도(18km) 걷기

추자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등 사람들이 사는 4개의 섬과 38개의 무인도가 모여 있는 군도이다. 1271년(고령 원종13)까지 후풍도(候風道)라고 불리었으며 제주로 갈 때 거센 바람을 피하던 섬이었다. 예전에는 전라남도에 속해 있다가 제주도 행정구역으로 들어온 것은 100년 정도 된다. 추자도 올레는 추자도의 가장 큰 두 섬,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지난다. 두 섬을 추자교가 연결한다.

추자도 여행자센터. 차노휘

올레의 마지막 여정

나는 바람이 강해서 파고가 높은 날 추자도에 도착했다. 2주일 전부터 추자도 행 배편을 예약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전날에도 상추자도로 가는 9시 30분 쾌속선을 타기 위해 제주여객터미널로 걸어가고 있을 때 출항할 수 없다는 문자를 받았다. 상추자로 들어가는 배는 쾌속선이라 결항될 확률이 높다. 그에 반해 하추자로 향하는 선박은 거의 3000톤급 대형이라 어지간해서는 배가 뜬다고 한다. 파고가 어찌나 높은지 평소보다 20분 늦게 하추자에 도착했다고 마중 나온 펜션 여주인이 말했다. 시계를 보니 3시 53분이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에 든 짐을 덜어내고는 상추자도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전에 우도를 걷다가 비바람과 땀으로 옷이 젖어 추자도로 오는 내내 한기와 눅눅함을 견뎌야 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일찍 오는 섬 밤을 느긋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막상 걸으니 또 힘이 솟았다.

추자대교 너머 추자등대가 보이는 풍경. 차노휘

추자도의 풍광은 제주도와 다르다. 제주도를 특징짓는 현무암이 없다. 산속 길을 걸으면 깊은 산중에 들어선 듯하다. 그래서 바다에 떠 있는 첩첩산중이라고 할까. 항구도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마을 형태도 육지 것을 닮아있다. 바쁠 것 없어 보이는 마을버스가 간간이 해안도로를 달린다.

상추자도에서 중간스탬프가 있는 묵리 슈퍼에 도착했다. 묵리는 마을의 앞과 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른 마을에 비해 해가 늦게 뜨는 고요한 마을이다. 스탬프 박스로 다가갔을 때 나보다 더 먼저 온 올레꾼인 듯한 사람이 슈퍼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슈퍼 유리문에 해물라면을 판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허기가 졌지만 나는 펜션 주인에게 횟감이 있으면 회 좀 떠달라고 이미 부탁해놓았다. 올레의 마지막 여정을 혼자라도 축하해야 했다. 나는 나머지 길은 내일 이어서 걷기로 하고, 대통령 후보들 사진이 붙어있는 담벼락 앞에서 픽업차량을 불렀다.

제주올레완주증서. 차노휘

반골기질-나를 단련시키는 과정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산방산이 있다. 산방산은 그야말로 제 홀로 평지에서 우뚝 솟았다. 그래서인지 그 아래 대정마을에 '반골' 기질 사람이 많다고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서 현기영 선생이 말했다. 또한 '몹쓸 바람'이 불어서 '모슬포'란 이름이 붙은, 모슬포에서 겨우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산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밴 성격인지도 모르겠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재수의 난의 이재수도 4·3사건의 주역이었던 김달삼(이승진)도 대정마을 출신이었다. 주민을 대신해 억압에 저항하다가 그 억압이 풀리면 한 목숨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장두'라는 신분. 하추자도의 묵었던 펜션 주인장은 그 후손이었다. 조촐하게 마련한 회와 한라산소주로 만든 소맥. 술은 마시지 않지만 맞은편에서 말동무해주던 여주인.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4·3으로 이어지자 여주인장이 그렇다면 우리 남편이 할 말이 많다고 하면서 남주인장을 자연스럽게 합석시켰다. 반골기질 조상을 둔 남주인장의 생생한 대화들. 모슬포보다 더 쌩쌩하게 불던 바람. 낯선 섬에서 유일한 객인 내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던 부부. 흡족한 사치였지만 나는 즐겼다. 술기운이 기분 좋게 잠과 함께 섞이는 동안 어둠속을 밤새 바람이 달렸다. 이중창문이 나대신 몸서리를 쳐줬다.

다음날 해 뜨기 전 돈대산(164m)에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하추자도 신양 항구는 지상의 별밭이었다. 돈대산에서 내려와 추석 때면 음식을 싸들고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빈다고 해서 추석산(155m)이라고 불리는, 그곳을 걷고 있을 때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다행히 바람은 거칠었지만 햇살은 순했다.

여행의 끝은 뭔가 액땜을 하듯 실수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신분증 분실이었다. 한일레드펄에 승선하려고 보니 신분증이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떠나기 싫어 '본체' 대신 그에 버금가는 '표식'이 추자도에 남았다고 생각했다. 무사한 떠남이었고 되돌아옴이었다.

늦은 시간 서귀포 올레센터에서 두 번째 제주올레 인증서를 받았다. 총 26개 코스였고 도상 거리 425km였다. 길을 잃고 헤맨 것을 생각하면 더 걸으면 걸었지 덜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S헬스거리는 합산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올레 명예의 전당에 나는 이런 문구를 남겼다. "걷는 것은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입니다."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은 편안함과 반한 것이기에 이 또한 반골기질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제주 올레 완주는 이상으로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뉴욕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