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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홀쭉한 다리 내놓고 다리세기 하는 풍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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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홀쭉한 다리 내놓고 다리세기 하는 풍경이 그립다

한다리 두다리 거청 대청
죽은 시인의 사회 언설처럼
학문과 문학마저 추악한
기형이 되어버린 흉한시대
나는 이제 어떤 동무들과
다리 엇갈리게 붙이고
한다리 두다리 거청 대청
다리세기 할 수 있을 것인가

게재 2021-11-18 16:14:46
나주 동강 옥룡마을 할머니들의 한다리만다리. 이윤선
나주 동강 옥룡마을 할머니들의 한다리만다리. 이윤선

"한다리 두다리 거청대청/ 어록저록 막대 짚고 건네가/ 느그 삼촌 어디가 지장밭에 총 노로가/ 까투리 한나 투드렁 퉁 땡" 2002년 한 해 동안 목포대학교신문에 내가 연재했던 '영산강 민중생활사' 중 한 꼭지다. 명산나루 건너고 잿빛 물비늘 따라 영산강을 치올라 가면 강이 막힌 듯 다시 이어지는 곳, 곡강의 끄트머리 봉추와 옥정리, 장동리, 그리고 더 멀리 곡천리 등이 크게 에워싸고 있는 곳이 있다. 그 가운데 마을 몽송리에 들렸다. 90이 훨씬 넘거나 혹은 80객, 아니면 70객이다. 여기서 60객은 그야말로 청춘이다. 당시 영암댁으로 불리던 박청명(78세)씨, 가장 총(聰)이 좋은(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때때로 기억나는 옛노래들을 부르며 유년의 창을 두드리곤 했다. 그녀에게 노래는 타임머신이었을까. 열여덟에 강 건너 영암 시종에서 시집오기 전만 해도 못 부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노래를 잘했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했던 강강술래판에서도 단골 메김소리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니 내가 취재하던 당시 78세 박청명 영암댁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지금 98세가 되셨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그리운 이름들이다.

다리헤기 놀이 혹은 다리세기 노래

발 헤기, 다리 헤기, 다리 세기, 다리셈, 하날때놀이, 평양감사놀이, 군수놀이, 행경놀이 등으로 불린다. 주로 겨울철 방안에서 어린이들이 하는 놀이이자 노래이기 때문에 동요로 분류한다. 남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두 명 이상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다리를 뻗고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엇갈리게 다리를 넣는다. 가지런한 다리를 세어가며 노래한다. 두 가지 놀이 방법이 보고되어 있다.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차례로 짚어 가다가 마지막 구절인 '땡' 또는 '뽕' 혹은 '콩' 할 때 짚은 다리의 주인공이 다리를 오므린다. 미처 오므리지 못하면 진다. 재빨리 오므리면 다음 차례 어린이가 진다. 또 하나는 다리를 세어가다가 '땡'에 해당하는 어린이가 다리를 오므리면 그다음 다리부터 다시 짚어 가며 노래를 한다. 반복하여 노래하다가 두 다리를 먼저 오므리게 되는 아이가 이긴다. 마지막 다리가 하나 남았을 때는 방바닥과 다리를 번갈아서 노래하다가 방바닥이 '땡'에 해당되면 그 게임을 무효로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도둑놀이'라고도 한다. 첫 번째 두 다리를 오므린 아이를 '순경', 두 번째를 '닭', 세 번째를 '개' 등으로 부르고 꼴찌가 된 아이를 '도둑'이라고 부른다. 평양감사놀이, 군수놀이 등도 이와 비슷하다. 꼴찌가 된 아이에게 부과하는 벌칙이 있다.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개다리춤을 추게 하는 등 간단한 장기자랑을 하게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훨씬 후에도 남자 여자아이들이 같이 모여 이 놀이를 하였다. 겨울철이니 찐고구마를 가져오게 하거나 배추 서리를 시키기도 한다. 강강술래의 청어영기나 꼬리따기, 쥔쥐새끼 놀이처럼 스킨십을 유발하여 연대감을 높이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천사만사 다만사/ 조리김치 장독간/ 총채 비파리 딱

한다리 두다리 세다리/ 인사만사 주머니끈/ 칠팔월에 무서리/ 동지섣달 대서리

한다리 두다리 세다리/ 너희 삼촌 어디갔니/ 자전거를 고치러/ 오꽁조꽁 부지 깽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천사만사 두만사/ 돌아간 장두칼 /여땅개 저땅깨/ 쇠머리땅깨 끝바끔

교과서에 실려있는 '전래동요'는 대개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로 시작된다. "한콩 두콩/ 연질 녹두/ 가매 꼭지/ 섬에 딱 콩"으로 놀이하는 지역도 있다. 전국적인 분포이다 보니 매우 다양한 가사들이 보고되어 있다. 경기도에서는 "한알대 알대 삼사 나그네/ 영남 거지 탈대 장군/ 구드레 뻥 똥기 땡"이라고도 한다. 머릿가사를 보면, '이거리 저거리', '오거리 저거리', '콩하나 팥하나', '한알대 두알대', '한발대 두발대', '한알깨 두알깨', '한알캉 두알캉', '한알이 두알이', '한알랑 두알랑', '한커리 두커리', '한마리 두이똥', '아랫방 잿방', '잇단지 놋단지', '아재비 까재비' '까치달래 온달래', '찌부도 찌부도' '일득이 이득이' '앵기 땡기' '고모집에 갔더니'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왜 이 놀이를 하였을까? 이 놀이의 유래나 기능에 대해서 딱히 연구된 바는 없다. 그저 온돌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 매섭고 찬 겨울바람을 피해 따끈한 쇠죽방에 모여든 동무들, 이불 하나에 삼삼오오 발끝을 넣고 찐 고구마나 알밤을 까먹는 풍경들이 아스라할 뿐이다. 이 풍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군수놀이, 도둑놀이의 이름이 있는 것처럼 위계서열을 미리 연습하고 조장하는 놀이였을까. 아니면 '달강달강', '쥐엄쥐엄'처럼 아이들에게 부여한 어떤 기능성 놀이였을까. 혹은 이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오징어게임처럼 차례차례 술래들을 제거시키는 놀이였을까. 영산강 곡강 언저리의 노인당 풍경을 상고해보니 여러 해석이 주마등이다. 할머니들은 왜 아이들이나 하는 다리세기 놀이를 하였을까. 무릎이 펴지지 않아 가지런하게 뻗을 수도 없고 서로 마주 앉아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넣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옛일을 상고(尙古)하는 것은 문물이나 사상, 제도 따위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전례에 비추어 조례(照例)한다는 뜻이다. 요한 하위징아가 말했던 놀이하는 인간 곧 호모루덴스의 놀이에는 게임과 스포츠는 물론 전쟁과 종교 따위가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 재구성된 해석들이다. 경제적 정의는 말할 것도 없고 시궁창에 처박힌 정치, 마치 영화 오징어게임을 실행하는 듯한 현실을 보는 심정이 말이 아니다. 오래된 사진을 뒤적여 영산의 곡강 노인당 다리세기를 상고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언설처럼 학문과 문학마저 추악한 기형이 되어버린 흉한 시대, 삭고 병들어 예쁠 것도 없는 이들이, 세월이 앗아간 홀쭉한 다리를 드러내놓고 다리세기 하는 풍경을 묵상한다. 나는 이제 어떤 동무들과 다리 엇갈리게 붙이고 한다리 두다리 거청 대청 다리세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쇠죽 끓는 한겨울의 쇠죽방이 그리운 시절이다.

쇠죽솥-윤여정. 나주문화원 제공
쇠죽솥-윤여정. 나주문화원 제공

남도인문학팁

다리세기 놀이의 행간

다리세기 놀이를 흔히 술래나 서열을 정하는 놀이로 해석한다. 원님놀이, 장군놀이, 군수놀이, 도둑놀이 등의 이름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고해봐야 할 게 있다. 드러난 것들 말고 숨겨진 의미라고나 할까. 다리세기 놀이의 행간에는 머리와 꼴찌를 정해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벌칙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가랑이에 다리를 넣어 삼삼오오 연대하는 스킨십의 기능이 더 크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피부의 상호 접촉에 의한 애정과 연대의 기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겼던 것도, 나는 이 기능으로 해석하는 중이다. 서열을 정하는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짝을 찾는 술래잡기의 술래나 강강술래 여흥놀이에서의 수건놓기 놀이 등을 연계해보면 내 얘기가 좀 이해될 수 있으려나. 영화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화두가 된 이래,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폐해를 부각시키는 평자들이 많아서 하는 얘기다. 1864년 스펜서에 의해 고안된 적자생존이란 개념을 재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차제에 오징어놀이를 소개하며 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