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19> 반복과 확산, 무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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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19> 반복과 확산, 무한의 세계
  • 입력 : 2021. 06.06(일) 17:08
  • 편집에디터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b.1969~) 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이 가진 치유의 능력을 강조하며 '예술은 마음의 단점을 교정하고, 우리의 허약한 상상력을 지탱해 준다.' 라는 인간의 능력 그리고 이상향을 향한 예술을 주목하는 메시지를 글로 전했다. 모든 시대의 다양한 예술의 의미와 그 안에 숨은 힘은 한계를 지을 수 없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예술가들의 행보와 작품을 통해 증명되는 무한적 과정으로 느껴졌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작업실에서 작가사진

" 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 -쿠사마 야요이

일본의 설치미술가이자 현존 여성 아티스트 중 역대 경매 낙찰가 1위(2014년 710만 달러), 미술분야 전시 세계 최다 관람객 동원 작가로 알려진 쿠사마 야요이(くさまやよい, Kusama Yayoi, b.1929~).

최근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은 헤더 렌즈(Heather Lenz) 감독의 영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원제: Kusama: Infinity), 다큐멘터리, 미국, 2018년>가 국내에 개봉해 많은 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영화는 한 예술가가 온 몸으로 직면했던 세상의 편견과 인종차별, 성차별을 넘어 어떻게 작품이 구현되고 최고의 거장이 되는지를 총77분 동안 작가 인터뷰 및 작품이미지 그리고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시대별 작품들은 유년시절 안에 불온했던 내면의 고통과 상처는 끝없는 자아실현을 향한 독자적인 작업으로 펼쳐졌고, 삶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사이 알 수 없는 유한과 무한의 모호한 경계를 허무는 예술의 시선을 거울처럼 끊임없이 투영시켰다.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집착이 강한 어머니와 방탕한 아버지 아래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 겪었던 학대로 인해 신경 강박증, 정신착란과 분열, 환각증, 편집증 등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을 겪으며 성장했다. 환청에서 시작된 정신분열 현상은 결국 환영으로 나타났고, 어느 날부터 눈 앞에 온통 동그란 물방울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경험한 쿠사마는 10살 때부터 그것을 종이에 그리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서 일본화를 공부했고 1957년 28세 때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이 시기 쿠사마는 지난 제18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양인 여성이 낯선 뉴욕 화단에서 거침없이 자신을 표출했고 파티에선 기모노를 입은 채 후원자를 끌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당대의 다양한 분야 천재들과 어울리며 바디 페인팅, 반전 시위 등 강도 높은 사회운동 및 행위예술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_A-Pumpkin(CHA)_Acrylic on Canvas_145.5×112cm_2011_ⓒSotheby's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_노란 호박(Yellow pumpkin)_Naoshima(Japan) 베네세하우스뮤지엄 예술단지_가변설치_1994_ⓒKusama Infinity

1966년 제33회 베니스비엔날레(이탈리아)에 초대받지는 못했던 쿠사마는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플라스틱 은 공(Plastic Silver Ball) 물방울 작업 1500여개를 만들어 금색 기모노의상을 입고 비엔날레 전시장 근처 잔디밭에 깔아놓고 1개당 2달러에 판매를 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거대한 국제미술행사의 시스템을 공격하는 행위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물방울들은 그렇게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고, 그녀가 세계무대에 자발적인 데뷔를 한 작품이기도 하다.(이후 쿠사마 야요이는 1993년에 일본의 대표작가로 공식 초청을 받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_나르시스의 정원(Narcissus Garden)_베니스비엔날레 야외퍼포먼스_1966_ⓒKusama Infinity

이때 이미 평생의 테마가 된 '무한 반복'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초기 작업은 유기적으로 이어진 망(net)과 점(dot)을 작품의 주 모티프로 활용하여 회화장르로 시작했지만 설치작업으로 확장되어 점점 소재와 규모가 '파격'으로 치달았다. 창작의 증폭이 이루어졌던 시기 그를 좌절시킨 예술적 아이디어와 작품 표절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앤디 워홀 관련 사건이 대표적이다. 쿠사마는 1963년 12월 거트루드 스타인 갤러리(Gertrude Stein Gallery) 전시에서 '집적: 1000척의 배'라는 작품과 이 작품의 사진을 벽에 도배하는 독특한 반복 패턴 예술을 선보였다. 당시 세계 정상의 현대미술작가로서 그와 친분이 있었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전시회에 찾아와 그의 작품에 극찬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워홀은 자신의 전시회에서 소의 이미지로 벽을 뒤덮는 유사한 패턴의 작품 를 선보였다. 쿠사마는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 자신의 작품을 알리려 노력하지만 거듭 실패를 했고, 1973년 모든 것을 단념하듯 고향 일본으로 돌아온 뒤 다시금 좌절한 그녀는 두 번째 자살 시도에 이르게 된다. 이후 76년(48세) 정신병원에 자진 입원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낮엔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밤엔 병원에서 생활하는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_무한 거울의 방(Infinity Mirror Room)_1960년대 후반_ⓒKusama Infinity

인생의 많은 좌절의 터널을 통과 한 쿠사마 야요이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로 인정받았고, 93세가 된 현재에도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삶의 많은 순간을 상처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쿠사마는 끝내 자신의 꿈이었던 모두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예술가가 되었다. 자신의 예술로 세상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술을 펼쳐나가는 일 만큼 기쁘고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 쿠사마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을 바꾸길 원했고, 고백적 작품으로 무한의 예술을 실천하는 개척자가 되었다.

그녀가 코로나로 지친 전 세계인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시'를 공유하며...

" 지구에서 사라지거라.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이 끔찍한 괴물과 싸울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각자의 이야기와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위해

지금은 우리 영혼의 찬송가를 찾아야 할 때,

이 기록적인 위협 가운데서 짧게 터지는 빛이 미래를 가르킨다.

이 화려한 미래의 노래를 즐거이 노래하다 가자. "

- 쿠사마 야요이, 2020년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