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4·끝> 현대미술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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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4·끝> 현대미술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모든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끌어안고 있다||작가의 삶과 경험 축적…때론 사회 문제 응시도||개인적인 삶과 미술적 실천 양 축으로 공감의 힘
  • 입력 : 2021. 04.11(일) 14:19
  • 편집에디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2010년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매일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장장 736시간 30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와 관람객은 작은 목재 테이블에 앉아 서로 말없이 마주보기만 한다. 그런데 정동의 수행성을 보이던 작가가 흔들리던 순간이 있었다. 한 때 옛 연인이자 작업 파트너였던 울레이(Ulay)가 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직 응시만 해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 작가의 내민 손을 울레이가 맞잡았다. 1975년 처음 만나 10여 년 넘게 함께 해온 커플은 1988년 봄날 3개월 간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이별 퍼포먼스 '연인-만리장성 걷기'를 기점으로 헤어졌다. 2,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절반씩 걸어 중간지점에서 이별을 고한 뒤 22년 동안 각자의 길을 갔던 그들이다.

여기 색색의 셀로판지로 개별 포장된 사탕 더미가 있다. 미술관 벽의 한 켠에 쌓인 사탕의 무게는 79㎏이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ÉLIX GONZÀLEZ-TORRES)는 1991년 에이즈로 죽어가던 동성연인 로스(Ross)를 추모와 애도하면서 '무제(LA의 로스 초상화)'를 제작했다. 작품무게는 건강했을 때 로스의 체중이다. 관람객들이 사탕을 집어갈수록 연인의 몸무게는 줄어든다.

2010년 테이트모던 터빈홀에는 1억 개의 해바라기 씨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도예로 유명한 중국 장시성 징더전 시의 도공 1,600명이 한 알 한 알 손으로 빚고 채색한 회백색 도자기 낱알들이다. 진짜 해바라기 씨처럼 특유의 결이 살아 있다.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설치작품 '해바라기 씨'이다.

과연 현대 미술은 무엇일까? 오직 바라만 보는 행위에서, 수북한 사탕 더미에서, 1억 개의 해바라기 씨 형태의 도자기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치밀하게 계산되어 한계를 체험하는 극한 물리적인 시공간에서 옛 연인과의 조우로 규칙이 깨졌던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가 여기 있다' 퍼포먼스 찰나가 어떻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쿠바 출신으로 동성애자였던 토레스는 죽음과 상실, 고통, 소멸의 은유에서 확장하여 그의 삶 자체를 통해 타자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시도한 건 아닐까. 중국 정부의 인권 유린 행위를 비판해오다가 2010년 자택 연금에 처해졌던 웨이웨이의 해바라기 씨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하층민의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 일지도.

이처럼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다매체적인 작품 이면에는 작가의 생애와 경험들이 축적되고 응축되어 있다. 나무가 형성한 나이테 무늬가 각양각색이듯 작품의 속살은 개별자들이 겪는 사랑, 그리움, 상실, 아픔, 고통, 불안, 좌절의 생채기인 사적 영역의 토대 위에 사회와 개입되는 공적인 영역이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미술가의 작품은 인간 경험 전체에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군 조종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보이스는 1944년 크리미아에서 공격 받아 비행기가 추락해 눈 속에 갇혔었다. 다행히 지역민 타타르족에게 발견되어 펠트 담요와 동물 지방으로 체온을 되찾고 건강을 회복했다. 이후 보이스는 지방과 펠트를 작품의 주요 매체로 활용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던 자전적 경험에 예술적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난해한 현대미술은 예술가의 삶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의 속살을 응시하며 공감하고, 그 노정을 함께 하는 관람자의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이다. 예술가의 삶과 관람자의 삶,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의 삶이 어우러져 미묘한 화학 작용이 생성되는 곳이 현대미술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며, 때로는 우리 감정의 어머니이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저서에서 인간의 감정과 시대적 맥락 속에서 교감하는 예술의 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문법은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환경, 빈부 격차 등 사회적·정치적으로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미술의 사회적 공간이 열리면서 '보는 미술'에서 '읽는 미술'로의 서술 구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작품 내피에 담긴 예술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해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예술적 감흥을 배가할 수 있다.

전남일보에 1년 간 연재해 온 '현대미술 산책'은 현대미술 태동인 19세기 말 인상주의에서 시작해서 입체주의, 야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을 거쳐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1960년대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모더니즘 사조를 날실 삼았으며, 포스트-프로덕션을 비롯해서 관계의 미학, 장소특정성, 아카이빙 전략, 비엔날레 제도 등 1990년대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씨실 삼아 현대미술의 지형을 다층위적으로 직조해나갔다.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현대미술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소변기 작품 '샘'을 내놓았을 때의 충격파에는 미칠 지 못할지언정, 지금 여기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미술 실험들이 발생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 융합과 혼성 등을 장착한 동시대 미술 경향과 실천들에서 '발상의 전환'을 체험하기를 바랐다.

미술의 언어는 온돌처럼 마른 감성에 온기를 지펴 주며, 한 잔의 에스프레소처럼 둔감해진 지성을 각성시킨다. 생의 회복과 자아 탄성력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일상적 삶을 벗어나게 하는 변화의 위력을 지닌 게 미술은 아닐까? 1년 간 동고동락한 독자들이 보통의 삶 속에서 은밀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길 바라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현대미술 산책'의 여정을 끝마친다.

예측 불가하고 정답이 없는 현대미술처럼 우리네 인생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무제(LA의 로스 초상화)', 1991,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재단

아이 웨이웨이, '해바라기 씨', 2010,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요셉 보이스, 'Felt Suit', 1970,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